스물 세 해 함께 산 고양이, 가다

오월 구일, 네가 떠난 날

by 창창한 날들


"그저께 토토 죽었대. 어제 들었어."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니? 제 외할머니 암으로 두 달 정도 남았다는 선고를 받았을 때도 '사실만큼 사셨다'는 말로 심드렁하게 말해서 내 원한을 산 아들 녀석답다.
"아빠가 애완동물 장례식 치러 줬대. 그 정도는 해 줘도 되지. 아까운 건 아니지."
X라면 돈 아끼지 않고 토토에게 그렇게 해 줄 사람이다.


토토는 스무 해 동안 우리 가족과 함께 산 고양이다. 며칠 전까지 X와 노란 줄무늬 고양이 모모와 살았으니 나이가 스물두 살이다.
병원을 무척이나 싫어해서 병이 나도 데려가기 어려웠던 녀석이다. 병원에 간 횟수가 20여 년 동안 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으니. 발톱을 깎아줄 때면 세 식구가 매달려야 했다. 우리 부부 헤어질 땐 남편의 섭생보다 토토의 건강 관리가 더 걱정됐을 정도였다.


작년에 그림책 '두 고양이의 우정'에 그린 그림


X는 토토를 끔찍이도 예뻐했다.

원룸으로 가면서 고양이들을 좀 더 큰 집에 사는 내게 맡기지 않고 자기가 키우겠다고 했을 정도였다.

아들과 한 직장에서 일하고 두 고양이도 키우는 그와 달리, 가족과 직장과 고양이를 모두 잃은 나는 상실감이 컸다. 버려진 기분에서 헤어 나오기 힘들었다.
"아빠 위로해 드려. 상실감이 크실 거야."
아들이 의아한 눈빛으로 보기에 고양이들과 이어온 우리의 역사를 말해줬다.
"엄마 아빠가 너랑 산 시간보다 토토랑 산 시간이 더 길었더라. 넌 초등학교 때 5년 동안 할머니랑 살았고, 고등학교 때는 기숙사, 대학교 때는 원룸 생활했잖아. 너랑 우리랑은 십오 년이 채 안 되는데, 토토는 이십 년이 넘어."
그제야 아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폰이 바뀌는 과정에서 동기화를 잘못해 고양이들의 어릴 때 사진이 남아 있지 않다. 빽빽거리는 소리로 울며 비칠거리던 조막만 할 때의 모습이 참 귀엽고 이뻤는데, 내 머릿속에만 남아있다.

아기 때 노란 고무줄을 씹어 먹어서 검지 크기의 링거를 맞으며 2박 3일 동안 동물 병원에 입원했을 때 모습, 아침 일찍 우리를 깨우곤 했는데 비닐뭉치를 던져 주면 주워다 누워있는 우리 이마 위에 얹어 놓고 다시 던져 달라 몸을 낮춰 기다리던 모습, 이사하기 삼일 전 열린 문으로 집을 나갔다 이틀 만에 늦은 밤 비바람 속을 뚫고 집을 찾아왔을 때의 모습, 삶은 고구마와 감자를 좋아해 가스레인지 아래서 울며 기다리던 모습이 줄줄이 떠오른다.
아기 때 고무줄을 삼킨 뒤 생긴 위장장애로 상습적인 구토를 하던 토토는 스무 해 동안 고생을 많이 했다.
내가 우울증을 앓던 즈음 토토가 열두 살이 되어 늙고 무기력했다. 거의 잠을 잤고, 삶의 유일한 에너지라고는 식탐뿐이었다. 토토의 무기력과 식탐이 나를 보는 것 같아 미워했다.

그때 나는 밤마다 하얗게 새우고 아침이 되면 몽롱한 머리로 밥 달라고 울어대는 토토가 미워서 공연히 성을 내며 말했다.

"너는 오늘도 살았니? 도대체 왜 살아 있는 거니?"


검은 줄무늬 고양이 토토


모모는 토토가 여덟 살쯤 됐을 때 키우게 된 길고양이였다.

차가운 십일월의 늦은 오후, 남편과 출근하다가 한 소녀가 울고 있는 걸 봤다. 그 애 품 안에서 아기 고양이도 울고 있었다. 엄마가 내다 버리라 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받아 안고 집에 데려와 키우게 됐다.

토토는 영리한 만큼 몹시 까탈스러운 성격인데 모모를 쉽게 받아줬다. 두 아이는 꼬박 십사 년을 함께 살았다.

토토가 보이지 않으니 모모는 한동안 토토를 찾으며 울 것이다.


토토와 노란 줄무늬 고양이 모모
혼자 남은 모모


토토가 죽어갈 때 어땠는지, 아들은 모르는 눈치였고, 더 묻지 않았다.

X 혼자서 병원에 데려가지는 못했을 것 같고, 죽어가는 과정을 지켜본 건지, 자고 일어나니 숨이 끊어져 있던 건지...

십 년 전 어린 조카들을 차가운 비가 내리는 깊은 산에 두고 온 뒤로 몇 년 동안이나 불 끄고 잠자지 못하던 사람인데, 지금 이 사람은 어쩌고 있는지, 괜찮지 않을 텐데...

그래서인가 어젯밤 이래저래 잠을 설쳤다.

토토에게 평안한 쉼을 주세요.

이 사람에게도 마음의 안식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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