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들 슬픔으로 기억되고 싶을까

단원고 2-2 정지아를 만나다

by 창창한 날들


시를 쓰는 친구가 언젠가 들려주었다.

"나의 버킷리스트는 아름답게 죽는 것이야."




며칠째 글이 써지지 않았다.

지난 일요일 역사 인권 기행을 다녀온 이후부터다.

시청 앞의 소녀상과 단원고 기억관, 고려인 마을로 이어지는 일정이었다.

단원고 기억관에서 2학년 교무실과 열 군데의 기억 교실을 돌아보는 동안 수많은 이름들이 눈에 들어왔지만 마음에 담기엔 너무 많은 이름들이었다.

그 이름들을 하나하나 기억할 수 없어서 보고 또 보고 가만히 소리 내어 불러보았다.

그러다가 만난 친구가 정지아였다.

글 쓰기를 사랑한 지아라서 더 마음에 들어왔다.



2-2반에 있는 지아의 책상


방명록을 펼치니 최근에 다녀간 지아의 엄마가 남긴 편지가 보였다.

엄마의 눈물을 헤아릴 수 있겠는가만. 하염없이 눈물을 떨구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지만.

지아와 엄마는 서로에게 서로밖에 없었다. 열여덟의 지아가 엄마에게 쓴 편지, 엄마가 지아에게 남긴 메모들, 지아가 쓴 시와 소설들, 지아가 친구들과 주고 받은 편지를 묶은 <사월의 편지>가 보였다.

박물관 큐레이터가 되고 싶었다는 지아에게 나도 편지를 쓰고 왔다.

정지아. 너의 이름 잊지 않을게.


지아가 쓴 '엄마' 연작시 중에서 - 책 <사월의 편지>(정지아/지영희)


아무 말 없이 안아드릴 수 있길
우리 엄마 새발의 피도 못 미칠 만큼 같이 힘들어해 줄 수 있기를


눈부신 햇살 같은 마음을 가진 지아.

다음 날 지아를 소개하는 글을 글쓰기 밴드에 올렸다.

세월호 관련 글을 올릴 때마다 난감해하던 글벗들의 불편한 마음이 이번에도 느껴졌다.

그 마음 안다.

몇 년 동안 나도 그들을 기억하는 모임에 들어가면 내 우울증이 재발할까 봐 두려웠고 그 핑계로 도망쳐왔으므로.

세월호라는 이름은 너무나 아프고, 아무런 진실도 길어 올리지 못하는 현실이 무거워서 피하고 싶은 이름임을.

수년의 시간 지나는 동안 등 돌리고 있다가 나는 왜 하필 지금 그들을 만나러 온 걸까.

어찌하여 이제 와서 그들이 궁금해진 걸까.

그들의 이야기를 쓰려고 할까.

그들과 함께 아프고 함께 울 수 있는 힘이 생긴 것일까.

내가 혼자가 되고 나서 어느 날 문득 돌아보니 나의 눈길과 발길이 그들을 향하고 있었다.

혼자가 되어 본 사람이 외로운 사람을 알아보았던 걸까.

내가 아프니까 너의 아픔이 보이는 것일까.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무거움과 불편함으로부터 달아나는 동안 어떠한 진실도 밝혀지지 않은 채 그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점점 더 외로워지고 있는 것 같아서다.

결코 다른 이들을 불편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누군들, 자신의 이름이 추하거나 슬프거나 무거운 것으로 기억되고 싶을까.

그래서 감히 바란다. 세월호 참사에 희생된 이들의 이름을, 그들의 삶의 흔적을 자꾸 이야기하자고.

모두를 불편하게 하니까 꺼내지 말아야 할 사람이라고 하지 않기를.


여덟, 아홉 살의 나이에 숨진 조카들의 이름을 우리 가족은 아직도 말하지 못한다.

그런데 나는 누군가와 자꾸 말하고 싶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고, 부끄러움을 타서 엄마의 허벅지 뒤에 숨어 인사했으며, 내 품에 쏙 들어와 나를 안고 도톰한 손으로 토닥토닥해 주는 아이였다는 것을 함께 이야기하고 싶다.

자꾸 말해서 그들이 우리 곁에 웃는 낯으로 머물 수 있기를, 우리가 그들을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하고 있음을, 오래도록 그들을 잊지 않으리라는 것을.

오 년 전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난 나의 엄마를 추억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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