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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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적할 때 어디론가 훌쩍 떠나는 버릇은, 요즘을 사는 현대인들에겐 만연하게 통용되는 버릇이라, 떠나기 전 짐을 챙기는 순간까지도 큰 잔여감을 머금고 있지는 않았다. 돌연 증발해 버리는 것보단 그 편이 낫지, 되뇌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따름이었다. 무작정 남쪽으로 가고 싶었다. 기왕 도망칠 거라면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곳까지 도달해 나를 숨겨버리는 것이 이번 여정의 의의라고 여겼다. 육지의 끝을 향하여, 생동감 넘치는 풀잎들의 장면을 찾아서, 봄에 남은 절기를 계산하며 때마다 할 수 있는 것들을 헤아려보기도 하면서, 긴 여로의 시작점에 발자국을 남기기로 마음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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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애는 답답할 때 주로 드라이브를 한다고 했다. 앞 차의 후미등을 계속 바라보는 일 따윈 없이, 텅 빈 새벽도로를 찾아 창문을 열고 좀 달리다 보면, 몸에 묵혀있던 것들이 시원하게 날아가면서 삶을 환기시키는 듯한 기분이 된다고. 그게 무엇이든 다시 활기차게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다고. 그럴 때마다 그 애가 보여주던 홀가분함은, 늘 침잠해 있던 내게 크고 작은 일렁임을 안겨주곤 했다. 어쩌면 동경이었다고 볼 수도 있는 감정들. 어떤 날은 하도 많이 달리고 오는 바람에, 헝클어진 머리칼로 나를 맞이할 때도 몇 번인가 있긴 했었지. 다 털어버린 다음 한껏 고양된 목소리로 나의 이름을 불러주던 순간들이, 이제는 좀처럼 낡은 기억이 되어 창가에 기댄 머리를 먹먹하게 잠그고 있다. 표백 제습 환기….. 내게 필요한 단어들이 그 애의 습관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 고요히 나를 가라앉힌다.
봄의 고속도로는 이질적일 만큼 넘치는 생명력을 가지고 있었다. 폐허 같았던 회색빛 풍경들도 절기를 따라 겉모습을 달리한다는 사실이 무릇 나를 안도케 했다. 차창에 기댄 채 생각한다. 기억을 더듬는 과정이 필요할 만큼 우리가 보던 풍경들도 많이 변했지만, 그럼에도 시간 변두리쯤에 남아있을 옛 흔적들이 못내 궁금해진 것이다. 그 애가 새벽도로에 날려버리려고 하는 것들 중 내가 남기고 간 것들이 지금도 있을까? 이를테면 그 애의 차 블루투스에 연결된 나의 플레이리스트 같은 거. 누군가에게 오래 기억되고 싶은 건 전생에서부터 이어진 오랜 천성 같은 거라, 좀처럼 그 애가 나를 오래도록 앓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상처에도 새살은 돋고 아픔은 치유될 것이라는 절대적 진리가 우리를 감싸고 있었으니까. 결코 무해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 적어도 그 애에게만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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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면 상처에도 새살이 돋고 아픔은 치유될 것이라는 세상의 이치처럼, 그 애가 할퀴고 간 자국도 언젠가는 괜찮아질 거란 믿음이 그때의 나에겐 있었다. 그러니 순리대로라면, 시간이 꽤 흐른 지금, 그 애를 떠올리거나 그리워하는 일 따위는 있어선 안 되는 거였다. 그러나 요즘 나의 세상을 관통하는 단어는 역행이다. 좀처럼 해소되지도, 납득되지도 않는 일련의 기억들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그 애의 기억은 가끔 서순을 뒤집는다. 그래서 영문도 모르고 울적했던 거였지. 언젠가, 먼 남쪽의 길에서 그 애와 함께 걷던 날을 떠올린다. 그때 같이 찍은 발자국의 행방이 묘연했다. 우리는 정말 같은 곳을 향해 걸었던 걸까. 행방을 알 수 없으니 그 애가 현재 도달한 곳을 이제는 정말 알 도리가 없다. 어느덧 시간은 흘렀고 우리는 어딘지도 모를 각자의 길에 우뚝 서있다. 그때 나는 도대체 어디로 걸었던 거였지? 내가 찍은 발자국이 거꾸로 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너무 오랫동안 모르고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