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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책방 Jun 02. 2019

내가 벌레인 줄도 몰랐다

영화 <기생충>을 보고 (스포일러)



  무계획이 가장 좋은 계획이다, 라고 말하는 아버지는 그렇게 밑바닥으로 기어들어가 기생충이기를 택한다. 나는 계획이 없다. 제발로 지하에 기어들어간 아버지는 그곳에서 연명한다. 왠만큼 살 것들이 갖춰져 있어 오래도록 살 수 있는 지하에서. 이전에 머물던 기생충을 몰아내고 새로운 벌레가 기생하기 시작한다. 집은 비어있거나 주인이 바뀌어도 밑바닥 벌레는 사라지지 않는다.



  돈을 많이 벌어서 이 집을 살게요, 라고 말하는 아들은 계획이 있다. 그러나 마지막은 처음과 같이 양말이 걸려있는 반지하 집이다. 계획은 항상 계획대로 되질 않는다.






  집주인이 돌아왔을 때, 바퀴벌레들은 재빨리 몸을 숨긴다. 탁자 밑으로, 벽 뒤로, 어둠 속으로 숨는다. 주인을 피해 도망간다. 이쯤 되면 많이 내려온 법도 한데 그들이 내려가야 할 길은 아직 멀었다. 가장 높은 곳에서부터 가장 낮은 곳으로 끝없이 내려간다.



  위에서부터 쏟아져 내린 빗물은 그들과 함께 밑으로 밑으로 내려와 맨 밑에 있는 집을 집어 삼킨다. 하수구 물이 솟구치고 빗물이 들이친다. 똥물에 잠긴 집에서 챙길 거라곤 담뱃갑에 숨겨둔 지폐 몇장이 전부이다. 미제 텐트는 물에 젖지도, 떠내려가지도 않고.







 계획은 늘 계획대로 되지를 않는다. 그러면 나는 다시 숨는다. 밑에서 기어다니고 있는 나는 결국 돌고 돌아 다시 기어들어가게 될 것인가?


 나는 계획이 없다. 나는 내가 기생충인 줄도, 바퀴벌레인 줄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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