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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책방 Jun 23. 2019

내가 꿈꾸는 주거의 모습은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를 읽고




1.

길어야 3-4년만 살 것 같았던 집에서 9년 가까이 살게 될 줄은 몰랐다.

임시로, 잠시 동안만 머무는 곳이라고 생각했기에

버릴 것도 못 버리고 고칠 것도 안고치고 새로운 것도 들이지 못했다.


아무리 집에서 잠만 자고 나간다고 하더라도

어수선하고 남의 집 같은 공간에서 수 년을 지내는 것은

러모로 지치게 만들었다.




이사 후에는

한시적으로 지낼 공간이라는 생각이 아니라

이제 오래도록 정붙이고 지내야 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가짐도 생활방식도 좀더 안정적이고 정갈해졌다.


잘 정돈된 집에서 자고 쉬고 읽고 쓰면서

더욱 가지런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찼다.









2.

누군가에게 행복은 빠다이고, 포장해서 냉장고에 넣어둔 해장국이고, 맛있는 스시를 먹는 일이다.



또 다른 이들에게 행복은

퇴근 후 노포집에서 도가니탕을 먹는 순간이고, 좋아하는 이들과 페스티벌을 갈 때이고, 잠들기 전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다.



나에게 행복은

선선한 바람을 맞으면서 좋은 향을 피워놓고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면서 공상에 빠지는 시간이다.







새로 이사간 집 내 방에서는 하늘이 넓게 보인다. 낮에는 구름이, 밤에는 달이. 이것은 나의 새로운 행복이다. 에스토니아에서 살 때 가장 행복했던 점이 집에서 보는 하늘이었는데, 인천에서도 이룰 수 있게 되어 감개무량하다. 요즘같이 미세먼지가 없다면.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의 저자 둘은 집을 구매하기 위해서 큰 액수의 대출을 받는다.

그리고 그 대출금을 갚기 위해서 닥치는 대로 일을 한다.


결과적으로 그것들은 경험과 경력이 되고, 쌓인 커리어를 토대로 또 새로운 일을 하게 되면서 점점 성장한다.



나도 대출금으로 말미암아 일에 대한 의지가 불끈불끈 솟았다.

내면의 동기만 가지고서는 끓을 듯 말 듯 했었는데, 돈이라는 강력한 동력은 나를 더 잘 끓게 만들어준다.



열심히 일해서 대출금을 모두 상환하고

그러고 나면 더 자유롭게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게 될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서

일이 재미없고 하기 싫을 때에도 해내겠다고.






4.

책을 덮고 나면 나는 누구와 어디에서 어떤 식으로 살기를 원하는가를 자문하게 된다.


새로운 집은 외갓집과 걸어서 10분 정도의 거리에 있어서

이사하는 날 중간중간 외할머니 댁에서 식사도 하고 쉬기도 했다.

그날따라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는 외출을 하셔서

비어있는 외할머니 댁에 혼자 있는 경험은 또 처음이었는데,

문득 외할머니댁 같은 집을 꾸리고 싶어졌다.



집안 곳곳에는 필요한 물건들만 있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지금까지도 그곳에는 변하지 않은 자개장이 있고, 똑같은 옷장, 침대와 책상, 식탁과 선반이 있다.

매일 집을 쓸고 닦으시는 까닭에 먼지 쌓인 모습을 볼 수 없고, 식물은 무성하게 자라고,

변해간 거라고는 사촌동생들이 태어나면서 조금 더 늘어난 사진들 정도이다.



나는 계속해서 변화하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어쩌면 오랫동안 변치 않고 그자리에 그대로 있는 집을 바라온 것 같다. 집은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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