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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책방 Jun 30. 2019

건조하지 않을 정도로만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를 읽고

1.

글을 읽을 때 제일 재미있는 순간 중 하나는 멋진 비유를 발견했을 때이다.

'정말 그렇다'고 생각이 드는 비유가 멋진 비유라고 생각한다.

신뢰가 가는 시인은 이런 부분에서 탁월하다.

그런 시인이 쓰는 글은 어찌나 섬세한지.


원하는 것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원할 줄 몰랐고, 슬픔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사용할 줄 몰랐다. 우리는 동물원의 동물들 같았다.  (33p)
눈물이 떨어졌습니다. 눈물이 다 쓴 나뭇잎처럼, 떨어졌어요.  (218p)


이런 표현을 발견하면 그곳에 잠시 머물러 본다.

그리고 그려본다.

동물원을 그리고, 동물원의 동물들을 그리고, 원할 줄 모르고 슬픔을 사용할 줄 모르는 동물들을 그리고, 그런 동물들 같았던 사람들을 그린다.

그러면 그 사람은 내가 되고 나와 내 사람들이 된다.

우리도 동물원의 동물들 같았던 사람들이다.



다 쓴 나뭇잎처럼, 떨어지는 눈물을 그려본다.

다 쓴 나뭇잎뿐만 아니라 쉼표(,)도 그린다.

커다란 나무에서 툭 떨어져버린 아련한 나뭇잎을 가지고 시를 쓴 적이 있었다.

더 파고들지 못하고 흩날리기만 했던 나의 다 쓴 나뭇잎은 그렇게 날아가버렸는데

어떤 사람에게는 그것이 눈물로 남았다. 쉼표처럼 떨어졌다.







2.

내가 발레를 배우는 곳 아래층엔 은빛요양원, 그 아래층엔 심청이요양원이 있다. 내가 토실한 몸으로 다리를 찢고, 팔을 들어 올리고, 빙글빙글 턴을 하는 동안 내 아래, 내 아래아래, 그곳에서는 어떤 노인들이 누워 있을 것이다.
은빛요양원 창문은 두꺼운 커튼으로 반 이상 가려져 있고 심청이요양원 창가엔 늘어난 속바지와 팬티, 1인용 침대 시트가 널려 있다.
늘어난 속바지, 저 힘없는 면직물을 누군가 입을 거라고 생각하면 슬퍼진다.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 (155p)


거의 같은 공간에서 너무나도 다른 일상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떠올린다.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것은 아련하다. 안타깝고 안쓰럽다.

그러다가 슬퍼지기도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슬픈 일상에 빠져있다가는 자칫 내 일상도 슬퍼진다.

눈가가 너무 건조하지 않을 정도로만 생각해보자.

내가 그려보는 타인의 삶은 어디까지나 가짜에 불과하다. 





3.

다른 사람들로 둘러싸인 길을 지나 결국에 다시 나로 돌아온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가? 지금은 어떠하고, 훗날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나를 둘러싼 다른 사람들에 물들기만 하다가 탁한 사람이 될 것인가,

내 색깔을 나누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인가?

나는 어떤 색깔을 칠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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