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날씨 어때요 2

내덕동 어린이 실종 사건

by 지진진

24개월 즈음부터 엄마 없이 한두 시간가량 혼자 집에 스스로 있겠다고 한 것만 봐도 나의 타고난 성향을 알만하다. 어린애를 몹시도 귀여워하는 엄마는 특히 첫 애인 지라 너무 예뻐서 밤마다 꼭 끌어안고 자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난 그렇게 태어나지 않았다.



"첫 애라 너무 이뻐가지고 그렇게 안고 잘라고 해도 니가 삐질삐질 도망가는 거야 글쎄. 딱 백일이 지났거든? 그랬더니 내가 안으면 삐질삐질 밑으로 내려와서 저쪽 장롱으로 도르륵 굴러가서 탁 자더라? 기가 막혀. 하여간 너는 예나 지금이나 내 품에 안 있어. 나중에 애 셋 생겨서 그때는 제발 좀 혼자 자고 싶은데 니 동생은 그렇게 죽도록 매달려요 또. 난 쫌 떨어져서 자고 싶어서 팔을 빼면 십오 분, 딱 십오 분이야. 귀신같이 알고 지랄 맞게 우는 거야. 니 동생은 만 이년을 찰거머리같이 내 살 냄새를 맡아야 잤어. 아이고 세상에나."


엄마가 제일 끔찍스러워하는 것은 15개월이 지나 걸음마를 시작한 이후에 겪은 몇 번의 실종 사건이다. 한 대여섯 차례 되는데 삼 남매 중 모두 내가 저질렀다. 엄마는 그때를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며 하늘이 도우셨다고 감사 기도를 드린다.


"처음 없어진 게 내덕동 고모할머니 댁 갔을 때야. 내가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까 니가 맘 속으로 다 꼬누고 있었던 거지. 고모할머니 댁 갈 때 율량천 따라 둑방길 걸어서 다니던 길을 나한테 업혀서 유심히 봤나 보지? 그날도 너 업고 고모네 집에 갔는데 도착해서 포대기 풀고 어쩌구 하는데 순식간에 니가 없어진 거야! 하늘이 노래 가지고 진수랑 동수랑 다 너 찾으려고 뛰쳐나가고 나도 다리가 후들거리고 그 자리에서 주저앉을라다가 정신을 똑바로 차렸지. 그랬더니 동수가 널 둑방길에서 찾았는데 '진진아~ 진진아~ 아무리 불러도 니가 안 멈추더래. 지랄하고 낄낄 거리면서 더 달아나더라는 거야. 동수가 간신히 잡았지."


이십 년 가까이 흐르고 그때 내가 내달렸던 둑방길 위에 놓인 다리를 거의 매일같이 버스를 타고 지났다. 그때마다 차창밖으로 그 길을 쳐다보곤 했다. 그러면 개나리가 핀 둑방길에 쪼끄만 공 같은 애가 굴러가는 모습이 언뜻 보여 웃음이 나왔다.


"너는 웃지? 참 나 내가 기가 막혀서. 한두 번이 아니야. 니네 아빠 술 마시다가 기어이 피를 토하고 위에 구녕이 뚫려서 대수술을 받는다는데, 그 전에도 남궁병원에 몇 번 입원했었거든. 자식은 셋이나 있는데, 애 아버지라는 사람이 사나 죽나 하고 있고 내가 그때도 미칠뻔 했는데 정신을 다잡고. 하여간 너네 아빠가 수술 전에 링거 꽂고 답답했는지 비상계단으로 몰래 빠져나와서 진로백화점에 간 거야. 그때 진로백화점이 청주에 처음 생겼거든. 그때는 청주 플라자? 이름이 진로백화점도 아니었어, 그건 나중에 붙인 거고. 그게 지하에 처음 문을 연다고 청주 사람들이 다 쏟아져 나와서 도떼기시장 같은데 병원에서 간병하느라 정신이 없는데 니가 없어진 거야. 니네 아빠가 몰래 나가서 풍선을 주워다 널 줬는데 니가 그때 비상계단 쪽 뒷문이 열리는 걸 봐 뒀는 모양이지? 내가 그때 상황판단을 재빨리 했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넌 지금 어디 잡혀 갔던가 차에 치어 죽었을지도 몰라. 들어봐, 내가 그때 니가 건물 안에 있으면 어떻게든 찾는다, 그런데 밖에 나가면 이건 죽는 거다 싶어서 얼른 밖부터 찾아봤어. 그랬더니 백화점 입구에 니가 쭈그리고 앉아서 울지도 않고 쫑알쫑알 뭐라 뭐라고 하면서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인사하고 풍선 몇 개를 손에 들고 나부락 싸부락하는겨."


청주 시내의 오래된 상권은 육거리 시장이다. 이 길을 중심으로 금천동, 용암동, 분평동, 율량동으로 가는 방향이 갈린다. 그 육거리 시장 바로 옆에 있던 꽤나 큰 병원이 남궁병원이었다. 오래된 도시들이 늘 그렇듯 남궁병원도 도심공동화가 진행되며 문을 닫았다. 몇 년 동안 병원 건물은 비워져 있었지만 나는 그곳을 지날 때마다 풍선을 든 나와 환자복을 입고 링거를 달고 폴대를 미는 아빠를 떠올렸다. 지금 그 건물에는 여러 종류의 병원이 진료 중이다.


그 남궁병원에서 (우리 엄마 표현으로는) 몇 발짝 안 되는 곳에 청주 원플라자가 있었다. 원플라자는 진로백화점으로 다시 청주백화점으로 그리고 롯데 영플라자로 이름을 몇 번 바꾼 뒤 잠들었다.


엄마의 기억은 다시 육거리 시장으로 뛴다. 나는 이 얘기는 언제 나오나 기다렸다는 듯이 자세를 고쳐 앉고 엄마의 어린이 실종 레퍼토리를 들을 준비를 한다.


"니 남동생 태어나기 전인데 살 게 있어서 육거리를 들렸지. 그러다 신발 가게를 들린겨. 그때 니가 하도 험하게 놀아서 내 딴에는 좀 튼튼하고 오래 신을 걸 사고 싶었거든. 가게 주인이 베이지색 튼튼한 신발이랑 빨간색 얇은 신발이랑 내미는데 니가 빨간 걸 집더라고. 근데 내가 그냥 무시하고 베이지색을 사 신겼지. 그래야 동생들도 물려주고 하니까. 그때 니가 티~티~ 하면서 투덜대는 걸 내가 잘 들었어야 하는 건데. 며칠 있다가 육거리를 다시 갔는데 순식간에 니가 없어진 거야. 배는 남산만 하지, 애는 없어졌지, 하필 또 니가 좀 쪼끄맣고 빨라? 공 굴러가듯이 틀림없이 어딜 또 쪼르르 굴러갔겠지. 하늘이 노래져가지고 숨이 탁 막히고 쓰러질 뻔한 걸 옆에 나물 팔던 할머니들이 잡아줘서 갠신히 일어났네. 정신없이 니 이름을 부르면서 주변을 찾다가 문득 혹시나 해서 그 신발가게를 다시 가본겨. 혹시 해서 말야. 아이고야~ 세상에~ 니가 신발가게 앞 진열장을 붙들고 녜녜녜 하면서 뭐라고 종알거리고 거기 있는겨. 그 빨간 신발을 가리키면서 말야. 내가 미쳐. 어쩌겠어. 엉덩짝을 한 대 후리갈기구 결국 그 신발 사줬지. 튼튼하지도 않고 금방 헤질 것 같이 생겨서 안 사준건데, 돈 몇 푼 아끼겠다고 나도 참. 나중에 니 여동생도 신겼다 그거."


사진에도 여러 장 남아 있는 그 신발. 엄마는 없어진 나를 찾느라 얼마나 가슴을 졸였을까. 딸아이를 낳아 키워보니 잠시만 눈에 보이지 않아도 하늘이 노래지고 숨이 턱 막히는 그 기분을 알겠다. 내 딸은 엄마 껌딱지에 자기 엄마가 조금만 눈에 보이지 않아도 불안해서 이렇게나 우는데, 난 도대체 왜 그랬을까.


보통은 아이가 부모 손을 놓쳐 운다는데, 나는 반대로 엄마 손을 스스로 뿌리치고 도망을 갔으니.



배경 사진 photo by @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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