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 자이언티
왜 그렇게 말이 없으세요?
간혹 나는 이런 말을 듣는다. 특히나 감정적으로 힘이 들어 사람들과의 만남이 힘들 때, 신기하게도 통장잔고가 0원으로 수렴하고 있을 때 나는 말이 줄어든다(내게 통장잔고와 자신감, 자존감은 비례관계가 있는 것 같다). '호랑이기운'이라는 나의 정체성으로 인해 그럴 때조차 활기찬 척 오버할 때가 있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아무런 리액션도 하지 않고, 침묵하고 싶을 때가 있다. 잘 지내고 있다는 걸 증명하려는 거짓말조차도 버거울 때, 나는 말이 없어진다.
근데 아이러니 한 건, "왜 그렇게 말이 없으세요?"라는 말이 두려워서, 그 말이 나의 가슴을 철렁거리게 만들어서 일부러 활기찬 척을 할 때도 있다는 거다. 만들어진 호랑이기운, 나를 들키지 않기 위해 나오는 리액션과 대답은 사람들이 눈치를 잘 챈다. 그래서 내게 "가식적이다", "기계적이다", "영혼이 없다"라는 말을 장난처럼, 혹은 나를 잘 파악하고 있다는 눈빛으로 누군가 지적을 할 때가 있다(특히나 친하지도 않은데, 안 지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그렇게 말하는 무례한 사람들이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상처를 받곤 했다. 애써 웃으면서, 그러냐면서, 괜찮은 척 미소 지었던 적이 있다.
그런 상처가 나의 입을 더 다물게 했다. 혹은 더 기계적이고, 더 가식적이고, 더 활기찬 척, 더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게 했다. 친절하고 좋은 사람이라는 가면을 쓰게 했고, 어떤 좋은 수식어로 나를 치장하려 했으며, 무언가 그럴싸한 사람이라는 걸 끊임없이 증명하려고 했다. 힘이 많이 들었다. 그런 연기가 너무나도 힘들어서, 어떨 때는 정말이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적도 있다. 그래도 여전히 두려웠다. "왜 그렇게 말이 없으세요?"라는 말을 들을까 봐. 그땐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하는 그 시선이 더 중요했다. 남들에게 대하는 것처럼 나를 따뜻하게, 친절하게 대하지 못했다. '왜 나는 그렇지 못할까'하는 비판과 비난, 쓴소리, 자책, 자기학 대만이 나를 괴롭히고, 나를 휘 감싸고 있었다.
그 시기 때, 우연히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한 노래를 듣게 됐다. 순간 멍해졌다.
창가에 서 있네
밖에 비 오네
계속 잡음 같은 게
들려서 귀가 피곤해
타박타박 타박
어린아이들이 뛰노네
물웅덩이를 파고
그 안에서 수영해
손잡고 다니던
우리 동네 기억해
난 요즘 시도 때도 없이 걱정해
가끔 보면 나는 어리석고 멍청해
너처럼 나도 겉만 봐선 멀쩡해
저 사람들은
내가 노래하길 바라
뭐든 이야기하길 바라
나는 나는 할 말이 없어 없는데
위로되어주길 바라
내가 뭔가가 되어주길 바라
나는 나는
아무것도 아닌 놈인데
입술을 모으고 휘파람을 불려해
어떤 멜로디를 원하는지 궁금해
노래하길 바라
뭐든 이야기하길 바라
나는 나는 할 말이 없어 없는데
위로되어주길 바라
내가 뭔가가 되어주길 바라
나는 나는
아무것도 아닌 놈인데
아무것도 아닌데
- 바람, 자이언티 [OO] 7번 트랙
수십 번, 수백 번 같은 노래를 들어본 사람은 안다.
이 사람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알게 된다. 그리고 귀로 들려오는 이 노래는 나에게 하는 이야기이자, 내가 스스로에게 이야기하는 말이라는 걸.
나는 시도 때도 없이 걱정하고, 가끔 보면, 아니 자주 어리석고 멍청하고, 겉만 멀쩡한 사람이다. 계속 멀쩡해 보이고 싶어서, 멀쩡해지지 않는 노력들을 하게 되고, 속은 까맣게 곪아가게 된다. 아무에게도 속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아무런 말이라도 하기 위해, 애써 밝은 척하기 위해 치장하고, 거짓말하고, 그리고 또 거짓 미소를 짓고 하하호호 별로 웃기지도 않는데 박수 치며 크게 웃는다. 근데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내 주변 이들이 그랬고, 유명한 작가도 그랬고, 유명한 가수도 그랬다. 일상에서 마주치는 사람들도 그랬다. 우린 모두, 모두를 속이고 있었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있었다.
세상은 어두웠다. 사람들은 믿기 힘들었다. 아무도 내 마음을 알아주지 못할 것만 같았다. 근데 한 뮤지션이 나는 멀쩡하지 않다고 고백하는 걸 들었을 때 나는 안도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서. 할 말이 없는 데, 무언가 할 말을 바라는 사람들이 있을 때, 그걸 부담스러워하고 힘들어하는 게 나뿐만이 아니라서.
"어렸을 적 내가 원했던 난... 그저 마냥 행복한 사람이길 바랬는데 커가면서 남의 시선에 맞춰 살게 됐고, 그게 내 꿈인 줄 알고 착각하며 살아왔고, 항상 난 완벽한 사람, 성공한 사람이어야 해서 내내 긴장하며 살아왔는데... 이 노래를 아이처럼 멍~하니 들으며 생각했다. 사실은 많이 서툴고 어설픈 내가, 이 나이 먹도록 휘파람 하나 잘 못 부르는 내가, 너무나도 애틋하다고."
한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의 댓글에서도 위로받았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우리 중 대부분이 그랬다. 하지만 서로를 너무나도 잘 속이는 나머지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가장 크게 웃는 사람이 요즘 가장 힘들고, 슬픔에 가득 찬 사람일 수도 있다는 걸. 그 웃음에 슬픔을 멀리 날려 보내려 하지만, 날아가지 않고 잠시 잊힐 뿐이라는 걸. 좀 더 솔직하게 서로가 서로를 대하고,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