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해, 남을 위해 감정을 숨기다

유재석-빈첸

by 범준쌤

감정을 드러내면, 더 약해지는 줄 알았다. 내가 좋아하는 누군가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는 이 사람의 말을 잘 듣고, 그에게 웃음을 선사하고,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게만 해줘야 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감정을 숨기고, 내 마음속 깊은 상자 속에 진짜 감정을 놔두고, 그 당시 좋은 감정이라고 생각하는 것들만 타인들에게 내비치곤 했다. 근데 돌이켜보니 감정에는 좋은 감정, 나쁜 감정은 없었다. 모두 나에게 필요한 감정들이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나의 솔직한 모습을 드러내고, 취약함을 고백하니 조금은 나아진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극적인 변화는 없었다. 오히려, 처음에는 더 불안했다. 이들이 나의 솔직함을, 고백을 부담스러워하거나, 나를 싫어하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던 적이 많다. 하지만 나를 드러내었을 때, 그들은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많이 힘들었겠다면서 진심으로 공감해주었다. 참 고마웠다.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자신의 찌질함을 고백하고, 누군가가 누군가를 단정 짓지 않고, 잘 들어주면서 조용한 곳에서 서로 대화 나누는 그 시간들이 나를 회복시켰다.


그 이후 극적인 변화, 삶이 180도 변화하는 놀라운 기적은 없었지만, 작은 변화는 있었다. 180도가 아닌 0.180도 정도의 변화, 타인의 시선과 자의식에 집중하지 않고, 그저 현재에 존재하고,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최선을 다하는 태도가 내게 조금씩 생겨났다. 그래도 여전히 감정적으로 힘들 땐, 이 노래를 자주 들었다.



그대가 받은 박수

그대가 받은 찬사

그대 어깨 위에는 벽돌 혹은 금괴

둘 중 하나가 그대를 짓누르고 있겠죠

그대도 가끔 시선이라는 게 조금 무겁겠죠

난 티끌의 명성을 얻고서도 겁먹어

빈첸 사회악이라 근절되어야 한대요

손가락질받죠 나도 희망차고 싶죠

웃음을 건네주고 싶죠 그래요


그대도 카메라 뒤 울어본 적 있나요

그대도 남을 위해 감정을 숨긴 적 있나요

그대도 카메라 뒤 울어본 적 있나요

그대도 남을 위해 감정을 숨긴 적 있나요

우리 눈에 완벽하게만 보이는 그대도

결함과 고민이 존재하고 불완전한가요

영향력에 대한 책임감이 그대 힘들진 않나요

그대 오늘 어떤 기분이신가요


어릴 적 거실에 누워서

생각 없이 티비 볼 땐 몰랐어

마냥 좋아 보였어 행복해만 보였어

돌 던지는 사람도 난 못 봤어

조약돌 몇 번 맞고 나서

나만 아는 멍들이 늘어나서

나만 이리 아파했나 해서

Tv 속 그분들이 존경스러워졌어


부럽다 야 앉아서

손가락 몇 번 까닥하면

그 사람이 너보다 아래가 되니까

부럽다 야 넌 애인과 밥 먹을 때

옆 테이블 귓속말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까

부럽다 야 온갖 욕을 해도

랜선 밖에서 널 마주쳐도

난 아무것도 모를 테니까

부럽다 야 연어 팔도 내 꼴 났던데

넌 그것도 모르고 웃으면서만 살 테니까


이것도 배부른 놈 복통

호소할 자격 없데 나의 고통

티 내는 건 애야 어린 티 좀 내지 말어

난 너보다 더했다 말하는 그대는

참된 어른이신지 아니면

간섭이 취미인 부류 속에 속하는지

이런 생각하는 것도 이제 진절머리 나서

이어펀 볼륨을 만땅으로 높여

아까 봤던 글을 잊으려고 눈을 감고

좋아하는 노랠 귀가 터지도록 크게 틀어


그대도 모난 말에 상처 받아봤나요

그대도 그 말이 무엇보다 커 보였나요

그대도 모난 말에 상처 받아봤나요

그대도 그 말이 무엇보다 커 보였나요

경청에 대해 표본 같은 그대도

가끔은 모든 얘기 털어놓고 기댈 곳이 있나요

영향력에 대한 책임감이

그대 힘들진 않나요

그대 오늘 어떤 기분이신가요


어릴 적 거실에 누워서

생각 없이 티비 볼 땐 몰랐어

마냥 좋아 보였어 행복해만 보였어

돌 던지는 사람도 난 못 봤어

조약돌 몇 번 맞고 나서

나만 아는 멍들이 늘어나서

나만 이리 아파했나 해서

Tv 속 그분들이 존경스러워졌어


-유재석, 빈첸



가사 하나하나가 마음이 아팠다. 어린 나이에 한 프로그램을 나와서 자신의 이야기를 랩으로 보여준 빈첸은 그 후 조약돌 여러 번 맞았다. 말이 조약돌이지 아마도 엄청나게 큰 바위와 같았을 것이다. 나를 짓누르고, 억압하는 그들의 말과 눈빛은 스스로를 힘들게 만든다. 더 힘든 건, 나를 힘들게 하는 생각들과 말을 자신이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한다는 것. 빈첸에게는 음악이 치유제였다. 이어폰 볼륨을 만땅으로 높여 좋아하는 노래를 귀가 터지도록 크게 틀었다. 그는 알까. 그의 음악이 누군가에게 치유제가 되었다는 걸. 힘들 때면 그가 담담히 부른 이 노래를, 그가 지닌 이야기를 이어폰으로 듣는다. 귀의 건강을 위해 만땅으로 듣지는 않지만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모른다. 내 기분을 체크한다. 오늘 하루 어땠어? 오늘 어떤 기분이야? 하며 나에게 말을 건다.


그리고 글을 쓰게 됐다. 음악과 글쓰기는 나에게 효과 좋은 치유제이자, 병들어진 마음을 건강하게 만드는 약이다. 마음의 감기를 낫게 하는 데 음악과 글쓰기만 한 걸 아직 찾지 못했다. 아 하나 더 있다. 나를 신뢰하고, 어떤 말을 하더라도 들어주고 나를 공감해줄 수 있는 사람들과 깊은 대화다. 그 대화를 위해서는 믿을만한 사람들에게 스스로에게조차 하기 힘든 말을 내뱉어야 한다. 때론 침묵할 때도 있어야 하지만, 침묵만 하고 있다면 우리에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나를 위해서 감정을 숨겨야 할 때도 있지만, 우리가 믿을 수 있는 이들에게, 소중한 이들에게는 감정을 표현해야 할 때가 있다. 취약함을 드러내면 취약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더 강해질 것이다. 인간은 혼자서 살 수 있는 존재이지만, 혼자서만 살아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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