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그릇>. 김윤나
우리는 살면서 여러 불편함을 마주한다. 내가 마주해야 하는 불편함도 있고, 피해야 할 불편함도 있다. 근데 그 두가지를 분간하기란 여간 쉽지 않다. 스스로를 합리화하기 쉽기에 마주해야 하는 불편함을 피해야 할 불편함으로 여기고 도망치곤 했다. 아직도 이 불편함에 대해 명확한 나만의 기준이 생긴 것은 아니지만, 약간의 기준은 생겼다. 바로 나의 성장과 행복에 도움이 될만한 불편함이라면 그것을 마주하려고 노력한다.
내게 그런 불편함이 있다. 이는 예전부터 있던 불편함이었다. 꽤 오래된 친구다. 이 친구는 지금도 가끔 찾아온다. 머무르다가 훌쩍 떠나기도 한다. 바로 내가 평온하지 못할 때, 타인과 대화를 할 때 느끼는 불편함과 두려움이다. 나에게 자신이 없고, 삶이 지치고 희망이 없다고 여겨져 힘들 때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은 기쁨이 아닌 부담이다. 그 부담은 솔직하게 힘들다고 이야기를 잘 못하는 나의 성향으로 배가 되곤 한다.
누구에게나 유쾌하고, 친절하고, 볼 때마다 호랑이기운이 넘치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나였기에, 취약성을 드러내기란 매우 힘들었다. 인정받기 위해 멋진 모습을 부각해서 나를 포장하기에 바빴다. 하지만 삶의 위기는 늘 찾아왔고, 그럴 때마다 그런 가면을 쓰고 괜찮은 척을 하는 건 너무나도 벅찼다. 그래서 그 가면을 조금씩 벗기 시작했다. 쉽지 않았다. 가면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가면을 벗는 게 불편해지는 아이러니를 느꼈다. 그래서 다시 가면을 쓰곤 했다. 조금씩 나만의 속도로, 내가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어두움과 민낯을 보여줬다. 그게 연습이 됐던 것인지 이젠 함께 있으면 편안하고, 안전한 이들에게 취약성을 잘 드러냈다. 불완전하고, 불안하고, 상처받은 내면 아이를 그때부터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p309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한 말 대신 진짜 나다운 말이 무엇일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깨달은 것은 말을 비워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시간동안 나와 내 감정과 마음을 더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을 깨닫고 나자 시간이 지날수록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자연스러워지고 생각에 유연함이 생겼다. 예전처럼 과장하는 대신 내게 어울리는 편안한 말을 갖게 되었다.
내게 어울리는 편안한 말을 나는 찾아가고 있는 중이었던 것이다. 과장되고 치장하는 말은 더 이상 내게 어울리지 않았다. 오히려 불편함을 더 큰 불편함으로 만들 뿐이었다. 타인의 감정과 마음을 배려하는 것만큼 중요한 건 나의 감정과 마음을 바라봐야 한다는 걸 잊고 있었다. 타인과 관계를 잘 맺기 위해서는, 타인을 돌보기 위해서는 내가 바로 서는 것이 먼저였다.
p306
당신이 하는 말이 누군가를 일으키고, 다시 달리게 할 수 있기를, 누군가를 위로하고, 사랑할 수 있기를, 무엇보다 당신의 소중한 사람을 지킬 수 있는 힘을 가지길 응원한다.
나는 그런 사람이고 싶다. 나를 바로 세우고, 나의 말그릇을 키워서 누군가를 일으키고 다시 달리게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이제는 필요한 불편함을 피하지 않으려 한다. 물론 불완전하기에 피하는 경우도 생길 것이다. 그런 나를, 상처받은 내면아이를 보듬어주련다. 이번 트레바리 말잘러도 나에게는 그런 불편함이다. 설렘도 있지만, 불편함도 분명히 있다. 이 불편함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가 가진 '말'에 대한 고민과 힘듬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나눌 시간들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