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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이사의 하루공부 Sep 19. 2019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하면 안되는 이유


군대에서 장교로 복무할 때, 나는 적응도가 높은 장교는 아니었다. 대학에서 극한의 자유(?)를 누리다 상명하복의 산실로 꼽히는 군대에 가니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적응만 못했으면 다행인데, 더욱 문제가 되었던 것은 '군대에 잘못된 것이 많다', '모두 변해야 한다'고 동료 장교들과 상사들에게 목청을 높였던 것이다.


당시 군부대의 문제점들을 조목조목 정리하여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고 여기저기에 말하고 다녔다. (여기서의 문제점은 윤리적인 것보다는 조직의 비효율적인 문제임)



나의 충언(?)에 군대가 바뀌었을까? 당연히 NO다.


꾸사리(?) 정말 많이 당했다. 3년이라는 시간이 10년처럼 느껴졌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러한 깨달음에 이르렀다.


나의 뇌활동을 20%만 가동하기


무슨 의미냐면, 활발한 뇌활동으로 인해 나의 눈에 10가지의 문제점이 들어왔을 때, 10가지 전부가 다 바뀌어야 한다고 외부로 표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중에 가장 중요한 1~2가지만(최대 20%) 선택하고, 그것만의 개선을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때의 나는 미숙했다. 과거의 습관으로 회귀하여 1~2개의 우선순위를 정하기는 커녕 8~9개에 대해 다시 떠벌리고 있었다. 그 때는 그게 100% 맞는 줄 알았다.



그 후로 인생을 더 살아오면서, 다양한 사회생활을 겪으면서 '변화'란 복잡한 것이고 어려운 것이라는 사실을 뼈저리하게 알게 되었다.


한 가지를 더 깨닫게 된다. 내가 문제라고 여기고 자신있게 변화를 부르짖었던 그 10가지 중에서 절반 이상은 내가 생각했던 것 만큼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 이것을 인정해야 했다.


그것은 결코 본질이 아니었다. 당시의 좁은 식견과 어줍잖은 경험체계에서 비롯된 것으로, 그것을 적용했다면 당시 상황을 오히려 더 악화시킬 수 있는 책임성 없는 허무한 아무말 대잔치에 가까운 것이었다.



경영학에서 말하길, 어떤 조직이든 두 가지 형태의 지식을 필수로 가지고 있다고 한다. '형식지'와 '암묵지'다.


형식지는 언어로 표현되는 지식이다. 매뉴얼, 보고서와 같이 특정 형식으로 깔끔하게 정리하여 공유될 수 있다. 형식지는 딱히 조직에 깊이 몸을 담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 조직이 어떠한지 대강 파악할 수 있게 해 준다.


이에 반해 암묵지는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 지식이다. 매뉴얼, 보고서와 같이 시각적으로 정리될 수 없다. 조직 문화, 전통, 관례, 노하우 등이 이에 해당된다. 이런 암묵지는 해당 조직의 실제 일원이 되지 않고서는 공유되기 어렵다.


이 형식지와 암묵지라는 렌즈를 갖고 과거 나의 군대생활을 돌이켜 보니 내가 참 경솔했구나, 참 표피적인 처방를 떠벌리고 다녔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더 깊이, 더 전체적으로 암묵지까지 철저하게 파악했어야 했다.



이런 나의 과거의 경험과 깨달음을 깔끔하게 언어로 정리한 책이 있어 놀랐다. 그 책은 바로 와튼 스쿨 최연소 종신교수인 애덤 그랜트의 <오리지널스>다. 오리지널스의 뜻은 이렇다.


다른 사람들과 차별화되는 사람,

참신한 독창성이나
창의력을 지닌 사람으로
끝내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


CIA 정보국에서 일하는 여성, '카멘'의 사례가 나온다. 그녀가 CIA조직의 변화를 이루기까지의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소개한다.


간단히 말하면, 카멘도 당시 CIA의 정보 공유 시스템에서 문제점을 발견하고 전심을 다해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고 싶어했다. 하지만 상사와 동료의 벽에 막혀 이루지 못했다.


왜 상사와 동료는 카멘의 아이디어를 지지하지 않았을까?


여러가지 이유 가운데 핵심 원인으로서 애덤은 '신뢰의 결핍'을 말한다.


카멘은 사원으로서 조직 내의 입지가 탄탄하지 않았다. 동료들과 상사는 카멘에 대해 잘 알지 못헀다. 그런데 카멘이 주장하는 변화의 대안들은 생소했고, 조직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과 연관되어 있었기 때문에 변화의 리스크는 컸다. 그래서 카멘의 아이디어를 거부했다.


자신이 아무리 진정성으로 충만하다 하더라도 타인은 그 진정성을 나만큼은 느끼지 못한다. 타인이 나만큼 그 진정성을 이해하고 느끼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그것이 바로 신뢰인 것이다.


그 신뢰를 얻기 위해 반드시 고려해야 할 것으로 애덤은 '시간'을 말한다. 신뢰는 한 순간에 생기는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 함께 일하고 부대끼는 과정 가운데 함께 만들어내는 결과물에서 탄생하는 것이다.


무릎을 치게 만드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신뢰의 절대적인 요소는 시간이라는 것. 따라서 '오리지널스'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타인으로부터의 인정과 신뢰를 얻기 위해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함을 잘 인지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절대적인 시간 가운데 꾸준히 노력하여 타인으로부터의 신뢰를 더 강화해야 할 것이다. 다소 시간이 소요되더라도, 다소 노력이 투여되더라도 그렇게 함으로써 끝내 목표했던 바를 이뤄내는 것이 '오리지널스'인 것이다.



'카멘'은 비효율적인 CIA 정보 교류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 무려 10년이라는 시간을 소요했다. 그 상당 기간동안 그녀는 10년 전에 품었던 초기의 자기 생각이 얼마나 설익은 것이었는지 깨달았으며, 조직의 암묵지를 더 깊이 이해하면서 디테일한 맥락에 맞게 개선하기도 했다.


오늘 나는 반성한다. '오리지널스',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외쳤지만 조급해 하지는 않았는지. 중장기적인 안목가운데 졸꾸(= 졸려도 꾸준히)력이 부족하지는 않았는지.


"시간+졸꾸+결국 해냄=오리지널스" 공식을 다시 한 번 맘속 깊이 새겨 본다.



↓ 유튜브 영상: 웅이사의 하루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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