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g Gate

의심의 의심

by 러닝

러닝 모임에서 그녀에게 호감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그녀가 나타날 때면, 은은하게 올라오는 베이비파우더 향이 코 끝을 간지러우며 그녀의 존재를 먼저 알려왔다. 차도녀처럼 보이는 단발머리에 오랜 러닝으로 만들어진 슬림하고 탄력적인 몸매, 레깅스를 입고 나타나서 웃을 때면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 모으는데 충분했다. 특히, 한쪽으로만 올라간 입꼬리와 반쯤 감긴 눈웃음으로도 숨겨지지 않는 커다란 눈망울,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옴폭 파인 보조개가 매혹적이었다.

"우와~ 역시, 그럴 것 같았어요. 너무 잘 뛰시더라고요. 역시 선출!"

스탭의 칭찬이 부담스러우면서 왠지 예전의 나로 돌아간 것 같아서 내심 기분이 좋았다.


"상위 페이스 올라가시는 거 어때요?"

"제가... 들어가도 될까요? 괜히 민폐 끼치는 것은 아닌가 모르겠네요."

"전혀요. 그 페이스 그룹리더가 저예요. 오히려 제가 배워야 할 것 같아 보이던데요. 그래서 저랑 같이 달리는 거 어떠세요?."


그녀의 말을 들은 후,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현주야, 다다음주 하프 마라톤에 진짜 출전할 거야?"

"무슨 소리야, 자기야. 이미 등록 접수까지 완료했는걸. 자기도 같이..."

황당한 그녀의 말을 듣고 어안이 벙벙하였지만, 현주의 귀여운 보조개가 들어가 있는 볼과 도톰한 눈 밑의 애교 살에 바로 항복 선언을 했다. 아니, 동의 선서를 했다.

"현주가 뛰면, 당연히 나도 뛰어야지. 당연한걸 머.. 헤헤헤헤"

갑작스러운 출전에 당황하거나 걱정 따위는 되지 않았다. 사실, 현주와 함께 뛰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이번에 같이 커플로 뛰어서 들어오는 상상만 해도 기분 좋았다. 그럼 러닝모임에서 공식 커플로 선언하는 것일 테니깐.


대답을 하지 않고 있는 나를 말없이 그녀가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나도 모르게 혼자만의 세계에서 너무 오래 머물렀다는 것을 인지한 순간이었다.


"네. 물론이죠. 같이 출전해야죠."

머쓱해하며 뒤늦은 답변을 했다.

"네? 출전요?"

아직도 상상 속에서 마저 빠져나오지 못했다는 생각에 얼굴이 붉어지며 말을 새로 고쳤다.

"아~ 같이 뛰어야죠. 같은 그룹으로..."

멋쩍은 웃음으로 얼버무리며 급하게 마무리 지었다.

'언감생심 내가 무슨...'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녀의 눈웃음에 나도 어색한 웃음으로 화답을 하였다.


싱그러운 그녀의 미소를 뒤로 한채, 부끄러운 나는 곧장 집으로 뛰어갔다. 두근 두근대는 심장 소리가 내 귀에 까지 다시 들리는 듯했다. 거울을 볼 수는 없었지만, 귀까지 빨갛게 되었다는 것을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하긴, 한국 들어오고 나서부터 러닝 모임에서 뛰기 시작했으니깐, 이제 한 달 조금 넘었는데 빨리 실력이 늘었는 거 같긴 해.'

혼잣말로 중얼거리면서 샤워실을 나오는데, 현관문에서 소리가 들려 왔다.


"아이고... 피곤해... "

독립하고 나서 잘 오지도 않던 누나가 갑자기 집에 들어오며 투덜댔다. 갑작스럽게 닥친 누나를 보고 인사를 건넸다.

"웬일이야, 오늘 집에 오고? "

내 인사말이 끝나기 무섭게 휘둥그레진 누나의 눈이 벗은 내 상체를 스캔했다. 그 눈빛을 느낀 순간 나도 모르게 온몸에 닭살이 돋는 것 같았다.


"야야야! 너 뭐야?"

"뭐가? 또 왜?"

"아니, 우리 강아지 갑자기 몸이 왜 이리 좋아졌어?"

"무슨 소리야? 원래 좋았거든!"

"야! 내가 니 콩만 할 때부터 키웠는데 모를까? 맨날 부드러운 곡선만 유지하던 네가, 왠 각진 근육이니? 요새 헬스하니?"

"아냐, 헬스는 무슨. 그냥 동네 한 바퀴 돈다. 그 저질스런 눈은 저리 좀 치워라."

살짝 심기가 불편하면서도 몸이 좋아졌다는 말에 입꼬리가 올라갔다. 일단 모른 채 누나의 시야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잘못하면 하루 종일 취조 심문 당할게 뻔했으니깐.

그 부담스러운 시선을 피하며 강한 어조로 말을 다시 한번 내뱉었다.

" 비키라. 내 방에 좀 들어가게..."

그렇게 잡으려고 하는 누나를 뿌리치고 내 방으로 들어갔다. 그래도 누나의 칭찬이 의식되었나 보다. 방에 들어와서는 윗옷을 바로 입지 않고 전신 거울에 몸을 한번 비춰봤다.

'그래, 내 혼자만의 착각이 아니었나 보네. 평소에 저런 말을 안 하는 마녀가 저러는 걸 봐서는...'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정말로 헬스나 근력 운동을 크게 하지 않았음에도 PT를 받은 것만큼이나 몸이 우락부락하게 변해 있었다. 단지 러닝만 좀 했을 뿐인데, 이럴 수가 있나?' 스스로에게 일어나는 궁금증을 파헤쳐 나가려고 할 때, 볼륨을 크게 키워놓은 거실 TV에서 심상치 않은 뉴스가 들려왔다.


# 뉴스 내용

"이번 주 핫뉴스입니다. 소위 드럭 게이트(Drug Gate)라고 불리는 운동선수들의 약물 파동이 스포츠계를 강타하고 있습니다." 앵커의 격양된 목소리는 그 일의 심각성을 충분히 인지할만했다.

" 기존의 스테로이드제 같은 약물이 아니라, 도핑 검사에도 반응하지 않는 성분으로 제조된 약품 사용으로 의심되고 있습니다. 테스토스테론과 에피테스토테론의 비율이 약 1:1로 오차범위 16.7% 이내에 들어가도록 만드는 카테콜아민의 일종인 노르에피네프린. 일명, 노르아드레날린을 사용해서 티톡신 T4와 T3, 마이오카신의 수치가 일반 범위를 훨씬 상회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있습니다. 지금 제 손에 드럭 게이트와 연관이 있고 의심되는 수많은 운동선수들의 명단이 들려 있습니다. 여기 명단에는 우리 한국의 육상 여제, 김정화 선수도 이름이 올라와 있습니다."

무슨 뜻인지 모르는 단어들이 앞에서 들리다가, 갑자기 김정화 선수의 이름이 들렸다. 드럭 게이트와 연관되어 있다는 말에 아무 티셔츠를 하나 걸치고 거실로 나가 누나에게 물었다.

" 아까 무슨 말이야? 김정화 선수가 드럭 게이트라니?"

"김정화가 약물 의심으로 올림픽 출전이 취소될 수 있다고 하던데..."

"아니, 육상 여제 김정화가? 그게 말이 돼?"

"그건 모르지. 예쁜 얼굴과 미소에 우리가 속고 있었을 수도!"

"아..... 난 믿지 않을래. 내 우상 김정화 선수는 그럴 리 없어!

내가 요즈음 러닝하는 것도 김정화 영향을 받아서 그런 건데..."

김정화는 나의 우상이었고 여신이었다.


오늘 하루 동안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하고 있는 듯했다. 마지막의 갑작스러운 뉴스에 충격이 정말 컸다. 머릿속이 하얗게 되어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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