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영웅과 희로애락
취업의 턱을 넘지 못하여 부정적인 생각들로 사로 잡혔을 때가 있었다. 그 당시에 우연하게 본 김정화 선수의 마라톤 경기와 인터뷰를 접하면서 내 인생이 바뀌었다. 그녀의 말이 정서적인 안정감을 되찾는데 결정적인 열쇠가 되었다.
그녀의 마라톤 일화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오랫동안 언론에서 방영되었다. 심각한 아프리카의 자연재해로 피해받은 난민들을 위해 케냐에서 개최된 Save Life from Natural Disaster 마라톤 대회! 그런데 그 대회에 단거리 육상 선수인 그녀가 출전했던 것이다. 마라톤에서 단거리 선수는 일반인과 다를 게 없었다. 아니, 오히려 마라톤은 단거리 선수의 기량을 저하시키는 가장 멀리해야 할 운동이었다. 다 같은 달리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저강도 장시간 유산소 운동인 마라톤은 단거리 선수에게 필수적인 근육의 폭발력을 감소시키고 백근을 적근(근지구력)으로 변환시켜, 단거리 기록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기량 저하로 선수 생명을 위태로울 수 있음에도 그 위험한 도전을 선택하였다. 작년에 아프리카와 일부 중동 지역에 발생한 기후 이상 현상들, 폭우와 지진 등으로 수많은 기아와 난민들을 만들어졌다. 그녀의 대회 출전 소식은 그들에게 도움의 손길이 절실하다는 메시지를 세계 전역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마지막 결승선을 약 500 미터를 앞두고 쓰러진 일본 미야카미 선수를 부축하여 골인 지점까지 통과한 모습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스포츠 장면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미야카미 선수는 너무 무리한 탓에 갑작스러운 마비가 허벅지에 찾아왔다. 결승선이 아무리 가까워도 그녀에게는 속수무책이었다. 이미 바닥에 쓰러진 그녀였지만, 마비조차도 그녀를 포기하게 만들 수 없었는 듯했다. 잘 움직이는 다리로 뛰는 것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불굴의 의지로 팔로 엉금엉금 엎드려서라도 기어서 갔다. 그녀의 비 오는 듯 흘러내리는 땀들 마저도 그녀의 눈물을 숨길 수 없었다. 3분 채 되지 않아 뒤따라 오던 김정화 선수가 그녀를 앞질렀지만, 그녀는 뒤를 돌아보고 잠시 멈칫하더니 그대로 뒤로 역주행을 했다. 그리고 앞에서 보았듯이 미야카미 선수를 결승골까지 부축하며 동행했다.
그리고 이 장면이 전 세계 뉴스에 퍼지면서 큰 변화를 일으켰다.
이후, 국제기구와 단체뿐만 아니라 민간 기업들도 적극적으로 기부에 참여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구호활동을 전 세계에 알리는 일종의 신호탄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마음 따뜻한 선행들이 오랫동안 이어졌다는 것이 널리 알려지면서, 육상 천사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이미 나의 우상이 된 김정화 선수가 한 인터뷰에서 한 말은 내 마음을 한 번 더 울리는 계기가 되었다. 최근 1020 세대들의 자살률이 급증하면서 우려를 낳을 때, 한 프로그램에서 인터뷰한 내용이다.
"포기하지 마세요. 삶의 결승선을 통과할 때까지. 그냥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가서 뛰세요. 뛰어보면 삶에 대한 생각들이 바뀔 수 있을지도 몰라요. 일단 뛰세요."
이 말들이 크게 와닿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같은 것 일지라도 누가 말했는가에 따라서 받아들여지는 게 달랐다. 인생의 절벽에 서 있다는 생각에 좌절했을 때, 그녀의 말대로 그냥 무작정 뛰었다. 그렇게 뛰는 동안 스스로 갇혀 놓았던 생각들이 조금씩 사라지면서 삶의 의지를 되찾고 취업의 벽도 넘을 수 있었다. 이후에 내가 어떻게 변할 수 있었는지 서적을 통해서 명백한 원인을 알 수 있었다.
달리기를 하면 뇌에서 천연 진통제라고 불리는 엔도르핀과 행복 호르몬인 세로토닌 같은 신경전달물질의 분비가 촉진되어 통증을 줄이고 우울감과 불안감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다. 그래서 러닝을 '움직이는 항우울제'라고도 한다. 나는 김정화 선수 덕에 그 효과를 톡톡히 본 것이었다.
그렇게 세상의 따뜻함과 삶의 의지를 찾아준 그녀가 약물복용을 했을 리가 없었다. 네이불 팬 카페에 접속해서 게시글과 댓글들을 읽어 내려갔다.
열렬한 대부분의 팬들은 외부의 음모론을 제기한 반면, 일부 외부에서 유입된 안티펜들이 김정화 선수에게 사실 규명과 해명 촉구를 한다는 게시글도 게시가 되어 있었다.
[어째 이런 일이...]
[김정화가 올림픽에서 메달을 석권하니깐, 이건 독주를 막기 위한 음모야, 음모!]
[일본 애들이 메달 뺏기니깐 음흉하게 음모로 몰아가네.]
[김진요!!!! 김정화 선수에게 진실을 요구한다.]
[국제 육상 연맹 WA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
[정부는 뭐하노? 진실을 밝혀라]
[제발, 억울한 누명 좀 풀어주세요]
[어쩐지, 요즘 잘 달리더라니. 약물이었네~ 약물]
[사람은 알 수 없다더니, 김정화도 똑같네~]
[김정화 선수, 진실을 말해주세요!]
게시글들을 읽으면서 울화통이 넘쳤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같은 동네에 사는 혁이에게 술을 한잔 하기 위해 만나자고 했다.
"네가 술은 웬일이야? 요새 러닝하면서 안 마시더니?"
"아니! 너 그 뉴스 봤어? 김정화.."
"왜 무슨 일 있어? 김정화 결혼한데?"
그런 어이없는 소리를 하면서, 혁이는 내 술잔을 채워주었다. 마침 술집에 있는 커다란 모니터에서 뉴스 자막을 보고 술집 여기저기에서 웅성웅성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뉴스의 제목은 '육상 여제의 추락'이었다. 씁쓸한 마음에 술 한잔을 바로 목구멍으로 넘겼다. 마음이 그래서인지, 술이 훨씬 더 쓰게 느껴졌다. 그때 눈치 없는 혁이가 한 마디 했다.
"불러놓고 혼자 마시냐?"
"야! 니 뒤에 있는 모니터 함 봐봐라"
그제야, 혁이는 내 행동을 이해하는 듯했다.
"에잇, 들어보니깐 아직 확실하지도 않네. 도핑 검사에서는 음성이 나왔고, 추가 정밀검사 결과는 아직 나오지도 않았다잖아."
"당연히 그럴 리 없지. 근데... 어.. 후..."
속상함에 깊은 한숨만 뿜어져 나왔다.
"그건 그렇고 지난번에 근육이 심하게 뭉쳐서 움직이기도 힘들다더니, 헬스라도 하고 있냐?
"아니, 요샌 잘 안 뭉쳐지던데. "
"어떻게 없앴는데?"
"한 달 전쯤에 너무 힘들어서 한의원에 저주파 마사지에 온갖 것을 다해도 안 없어졌는데, 러닝 하기 시작하니깐 몸이 풀려서인지 없어지던데"
"야! 러닝만 했는데 그렇게 몸이 좋아지냐?"
"참~ 니도 우리 누나랑 똑같은 소리 하네. 별로 한 게 없는데, 3차 성장기 일 수도 있지." 되지도 않은 소리를 하고 나니, 혁이는 더 이상 대꾸도 하지 않았다.
"야! 그건 그렇고. 지난주에 우리 큰삼촌 수술할 때, 그때 갑자기 너의 특이한 혈액형이 생각나서 갑자기 연락했는데 수혈해 줘서 고맙다. 덕분에 큰삼촌 수술은 잘 끝났고, 숙모가 니 맛있는 거 먹이라고 이렇게 용돈도 주시더라."
"아니, 뭘. 피가 남아돌아서 좀 빼서 그랬나? 근육 뭉친 거 없어진 이유가..."
"아니 진짜 고맙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가 안 계셔서 큰삼촌이 아버지가 역할도 해주시고 많이 도와주셨거든 그래서 항상 빚진 마음이 한가득이었는데, 이번에 니 덕분에 조금이라도 갚을 수 있었다."
"당연한 걸 가지고. 암튼 오늘 잘 먹을게."
"오늘은 니 먹고 싶은 걸로 다 시켜라"
그렇게 씁쓸했었지만, 풀어지며 혁이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며칠 뒤, 갑작스러운 부고 소식이 들렸다. 혁이의 큰삼촌이 심부전증으로 끝내 하늘로 올라가셨다고 한다. 안타까운 마음에 더해 혁이에게 괜히 미안해하기도 하였다. 조문을 하기 위해 방문한 장례식장에서 혁이의 숙모는 슬픈 와중에도 고맙다고 말씀해 주셨다. 내 덕에 수술이라도 받고 가셨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