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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창고 Jan 16. 2019

원일아파트

아파트의 시작은 그리 삭막하지 않았다.

시장을 품은 원일아파트 


드넓게 펼쳐진 통일로 탓인지 좁디좁은 인도 위 행렬은 마치 북적이는 명동의 모습을 방불케 한다. 그 정점은 거리에 늘어진 좌판 덕분에 인왕시장 앞에서 최고조를 이룬다. 그렇게 혼잡한 거리를 바닥만 보고 걷노라면 쉽사리 원일아파트 입구를 놓치게 된다. 아니, 이 곳에 아파트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기는 쉽지 않다. 시장과 사람들의 분주한 소리, 진열된 색색의 과일과 얼어있는 갖가지 해산물, 찜통에 쪄져 있는 만두 냄새 등 온 감각이 바쁘게 움직여 딴 생각할 틈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왼쪽부터 원일아파트 1층 내부 모습과 건물로 올라가는 입구 계단

원일아파트는 이 곳 시장과 상가의 상층부에 위치해 있다. 지하 1층, 지상 6층의 건물. 1층은 떡집, 정육점 등 인왕시장의 연장상가들이 좌우로 마주보며 입주해있고 동시에 통일로 대로변에서 바로 인왕시장으로 진입할 수 있는 입구 역할을 하고 있다. 원일아파트의 두터운 콘크리트 벽 덕에 인왕시장 입구는 동굴 같이 웅장함과 으스스함 사이 어딘가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렇게 원일아파트는 인왕시장에 입구를 내주고, 시장의 낮은 지붕을 옆에서 든든히 받치고 있다.

인왕시장 지붕과 원일아파트 외벽이 맞닿아 있다.

1960년부터 홍제천변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한 인왕시장은 70년에 시장 등록을 하였다. 원일아파트와 나란히 이 곳을 지켜온 것이다. 낮은 주택과 흙길만 가득하던 동네에 혁신적인 상가아파트가 들어선 동시에 시장까지 결합된 원일아파트는 홍제동의 얼마나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을지 생각해본다.



바람과 햇빛이 통하는 아파트     


원일아파트의 유일한 중앙이 뚫려있지 않은 공간이다.

북적이던 밖과 달리, 원일의 안으로 들어오니 고요한 딴 세상이 펼쳐진다. 두꺼운 콘크리트 외벽이 방음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원일아파트 내부 중앙에는 희미한 햇빛이 3층 바닥 중정을 어루만지고 있었다(원일아파트의 주거공간은 3층부터 시작한다. 호수 역시 301호부터). 켜켜이 먼지가 쌓인 중앙의 철망들 때문인지 빛은 더욱 흐릿하고 회색빛으로 보였다.


아래서 올려다 본 중정과 천장
바람과 햇빛이 통하게 옥상부터 3층까지 중앙이 뚫려있다. 그 주위로 집집들이 마주보고 있다.

계단을 따라 한층 올라가니 옥상에서부터 뚫린 중앙으로 들어온 빛이 더 포근해졌다. 중앙을 둘러싸고 있는 집집들은 저마다 화분을 내놓으며 중정을 감싸고 있었다. 먼지 쌓인 물건들은 여기저기 철망과 구석에 놓여있다. 어떤 집은 은행을 걸어놓아 말리고 있고, 또 어떤 집은 펜을 줄에 묶어 창틀에 걸어놓았다(바람이 세게 불 때 문이 세게 닫히는 걸 방지하는 것이라 한다). 이 곳 안에 바람이 통한다는 것이다.


원일아파트의 특이점은 이렇게 중앙이 뚫려 바깥 공기와 햇빛이 자유로이 드나든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외부 물질이 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옥상의 두터운 유리와 콘크리트 천장 구조물이 있어 눈이나 비 등의 직접적인 피해로부터는 방지해준다. 원일아파트의 축소판처럼 기다란 직사각 모양의 중정은 뻥 뚫려있지만, 든든히 아파트 커뮤니티의 중심이 돼주었다. 이곳 주민들이 중정에 기대앉아 옆집, 앞집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갑갑할 땐 가볍게 나와 천장을 올려보며 햇빛을 쬐기도 하고 말이다.


홍제동 50년을 지켜온     


원일아파트 외관

5층, 6층 위로 올라갈수록 내부는 밝아졌다. 길고양이들이 제 집인 냥 유유히 거닐고 있다. 맨 위층 계단을 올라가니, 널따란 초록 바닥과 하늘과 맞닿은 홍제동의 전경이 멋지게 펼쳐졌다. 중정을 덮고 있는 두꺼운 지붕은 낮게 중앙에 위치하고, 옥상 한 쪽에는 주민들의 장독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바로 옆의 이웃인 유진 상가의 기다란 몸통이 한 눈에 보이고, 홍제동을 둘러싸고 있는 안산과 인왕산 자락의 고고한 자태, 한 쪽에는 그 산자락을 바쁘게 깎아내리며 공사하는 풍경과 높이 올려진 아파트들. 

원일아파트 옥상 풍경

느리게 걷는 홍제이다. 세월이 멈춘 듯 보이지만, 옥상에서 내려다본 홍제동은 조금씩 변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어느새 홍제와 50년의 세월을 보낸 아파트 원일. 70년 유진상가와 함께 들어설 당시, 이 곳 홍제동의 혁신을 일으킨 장본인이었을 터. 지금은 두터운 외벽만큼이나 굳건히 이 곳의 자리를 지키며 또 묵묵히 다가올 세월을 기다리는 듯하다.



 서영

사진 지원, 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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