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는 정말 나에게는 마음의 고향이다. 그렇게 고생을 많이 했는데도 생각을 해보면 정말 터키 만한 나라가 없는 것 같다. 물론 다른 분 들도 마음에 두고 있는 많은 나라들이 있지만 나에게는 터키는 정말 매번 그리운 나라이다. 요즘 코로나 때문에 투어가 힘들다 보니 더 더욱 그리워 지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케밥과 터키 최고의 음식 양갈비(피르졸라)그리고 터키식 피자(피데) 물론 한국에서도 먹을 순 있지만 터키에서의 느낌과는 너무 다른 그 음식들..너무나도 그립다. 하지만 그것 뿐 만이 아니다.
돌마바흐체 라는 터키의 베르사이유 궁전. 얼마나 멋있는 지는 가보기 전에는 모른다. 프랑스의 베르사이유 궁전은 워낙 명성이 있으니 누구나도 대단하게 생각하지만 러시아의 에르미 따쥐 라던가 루마니아의 펠레쉬성 등은 가보기 전에는 그 화려함을 알지 못한다. 돌마 바흐체란 곳은 나에게는 그런 곳이었다. 하지만 경험이 없다 보니 이런 사태가 생기고 말았는데..
일정표와 확정서의 중요성을 알지 못했던 인솔자 초보 시절 그러니까 채 1년도 안된 햇 병아리 시절 이었다. 그냥 출장 가는 것에 신이나고 돈 버는 것에 기분이 좋았던 신인시절 그렇게 터키는 나에게 기쁨으로 다가 오는 그런 곳이었다. 하지만 이번 만큼은 달랐다. 당연히 돌마바흐체를 몰랐기 때문 이었을 것이다. 바쁘기도 바빴던 터키 스케줄.. 한달에 바쁠 때는 4번 정도를 갔으니 현지 한국인 가이드 조차도 투어를 하다가 만나면 내가 집으로 간 건지 안 간 건지 혼돈이 올 정도로 자주 갔으니 말이다.
정말 2003년의 나에게는 터키라는 곳은 나에게는 이웃과도 같은 곳이었다. 그러다 보니 예상치 못한 사건도 많았는데 바로 돌마 바흐체 라는 곳이 그랬다. 구경을 하고 나서는 그리 멋진 곳인지 나중에 알았지만 아무 것도 모른 체 그냥 지나갔다면... 그렇게 자연스레 넘어 가는 줄 알았다면...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불행 하게도..
손님들이 보는 일정표를 확인한 현지 한국인 가이드는 이거 어떻게 할거냐고 물었다.
“이게 뭔대요?”
“여기 돌마 바흐체라고 써 있잖아요. 이러면 가야 하는데. 손님들의 일정표에 나와 있으니 안 보면 큰 문제가 됩니다.”
“그럼 가면 되는거 아닌가요?”
“그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서요. 이 일정엔 거의 안 들어가는게 정상이고 그리고 시간상 도저히 갈 수가 없다는 거에요. 게다가 가장 큰 문제는 비용이 들어가는 것인데 아마도 가장 큰 문제일 듯 해요. 시간이야 호텔에 늦게 들어가면 되는 건데. 가게 되면 비용을 누가 지불해야 하는지도 큰 문제지요.’
“그럼 손님들한테 못 간다고 얘기를 해야 하는데 합당한 이유를 말 해야 한다는 거군요.”
“네 이거 안 그러면 큰 문제가 될 수도 있어요.”
시간이 필요했다. 경험이 얼마 안 된 나로서는 시간도 문제고 비용 적으로도 문제인 이곳을 이번엔 갈 수가 없었다. 게다가 사무실 담당 직원도 일이 많다 보니 실수로 들어가서는 안 되는 일정을 집어 넣은 것 같은데. 가장 최종적으로는 일정표를 제대로 보지 못한 나의 잘못이 크다. 그래서 이걸 가지 못한다는 핑계 거리가 필요한 상황 이었다. 그렇게 생각을 한 끝에 갑자기 한 사건이 떠올랐다.
“얼마전의 터키에 30년 만에 폭설 있었죠?”
“그랬죠.”
“그거에요. 그걸 이용 하는게 좋겠어요. 폭설로 인해서 터키 전역 그 중에서 이스탄불도 피해가 만만치 않은데 돌마 바흐체 궁전이 폭설로 인해서 주변 시설이나 지붕 이런 것으로 인해서 내부 공사 그렇기 때문에 천재 지변에 해당하는 사건으로 인해서 갈 수가 없다고 말해 주세요.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제일 낳은 듯 합니다.”
“괜찮겠어요?”
가이드님이 다시 한 번 물어 보신다.
“그럼 다른 어떤 뾰족한 수라도 있으세요? 안 그럼 이렇게 진행 하심이 좋을 듯 한데요?”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 인솔자는 현지 가이드 님에게 그렇게 상황 전달을 하고 해서는 안 될 지시 사항을 내리고 있었다. 그렇게 상황을 인지하신 가이드 님도 마이크를 통해서 손님들께 상황을 전달하고 손님들도 그렇게 이해하면서 넘어 가는 듯 했다.
그렇게 오전 관광을 끝내고 터키의 수도인 앙카라로 이동 하기 위해서 점식 식사를 마치고 이동을 하려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큰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이거봐 내가 이럴줄 알았다니까. 이스탄불 에서 꼭 빼놓지 말고 가야 하는 명소라고 써 있잖아. 여길 안 간다고 지금 그러는 거야? 일정표에 이렇게 써 있는데도?”
“선생님 갑자기 무슨 말씀이세요?”
때는 2003년 스마트폰 이라는 개념이 거의 없을 때였고 터키는 아시아가 비록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곳이지만 시스템은 이미 유럽 이었다. 그래서 출장을 오기 위해서는 전화기를 사용하려면 본인이 쓰는 전화기를 사용할 수가 없고 공항에서 대여를 해야 하는 그런 때 였다. 그런데 손님 중의 한 분이 PDA(personal digital assistant)를 가지고 계셨다. 그래서 그걸 가지고 인터넷을 찾아 본 것이었다. 그러고 나니 갑자기 식당이 웅성웅성 하기 시작했다.
“꼭 가야 하는 곳이 었다고? 그런데 눈 때문에 막혔다며. 그럼 못 가는거 아니었나?”
“아니 이 상태에서 우리 그냥 앙카라로 가는 거에요? 갑자기 정말 눈이 왔는지 확인 해보고 싶어지는데 이대로 그냥 갈 수가 없을 것 같은데..”
난리가 났다. 통제 불능 상태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렇지만 가이드 님과 나는 그곳으로 갈 수가 없었다. 이미 상황이 결정이 난 상태 였고 그리고 돈은 누가 낼 건데? 문제가 한 두개가 아니었다. 기사의 운전 시간은 또 어쩌고..마음의 준비를 끝낸 가이드 님과 나는 기사를 만나 이미 앙카라 쪽을 방향을 잡고 있었다. 그런데 차 안은 흥분 상태에서 가라 앉지를 않았고 얼른 정리가 필요했다. 보다 못한 상황에서 이제는 내가 마이크를 잡았다.
“오전에 말씀 드렸지만 그곳은 눈이 많이 온 관계로 폐쇄가 되어 있어서 당분간 투어를 할 수가 없습니다. 있다면 보여 드리고 싶지만 천재 지변이라 저희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시간도 맞추기가 힘듭니다.”
그랬더니 갑자기 차 뒷편 에서 한 분이 삿대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언성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아니 일정표에 나와 있는걸 왜 안 간다는 거에요? 그럼 처음부터 넣어 놓질 말아야지. 일정표에 떡하니 적어 놓고는 갑자기 안 간다고 천재지변 으로 무너졌는지 페쇄가 되었는지 확인을 해봐야 알거 아니야 확인을?”
“못가 우린 이대로 앙카라로 못가. 죽기전에 꼭 가봐야 한 다는 곳인데. 우리가 언제 또 터키에 온다고 가야지 암 꼭 가야지.”
이미 손님들은 어떻게든 그곳을 꼭 보고 가겠다는 의지를 나타내고 있었다.
가이드님이 나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어떻게 할 것 이냐는 것이다. 나는 그런 행동을 정말 싫어 하지만 여행업계에 남아 있는 관행처럼 항공사 여행사 랜드사 인솔자 가이드…이렇게 수직 관계로 보이지 않는 갑을 관계가 형성 되어 있다 보니 가이드님이 나의 눈치를 보는 것이다. 그래서 우선은 결정을 빨리 내려야 했다. 시간을 끌어서 될 일이 아니었다. 마이크를 다시 잡았다.
“이곳은 종교의 자유가 있는 나라이지만(대부분 사람들이 터키는 이슬람 국가라 생각하지만 엄연히 종교의 자유가 있는 나라이다.)무슬림이 사회 전반에 깔려 있는 나라 입니다. 터키 정부에서는 눈 때문에 많은 시설이 피해를 입어 관람을 금지 하고 있으나 때로는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는 것이 이 무슬림들의 특징 중 하나 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선은 궁전 앞으로 가서 눈으로 직접 확인 하시고 들어 갈 수 있는지 없는지 들어 갈 수 있다면 시간 상의 문제가 있으니 최대한 빨리 구경을 하고 들어 갈 수 없다면 바로 앙카라로 이동 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그리고 발생 하는 비용에 대한 부분은 제가 다 지불 하도록 하겠습니다”
옆에 계시던 가이드님의 눈이 휘둥 그레 졌고 손님들 대부분은 고개를 끄덕 이는 분이 많았다. 그리고는 이겼다 생각하는 분들도 내눈에는 보이기 시작했다. 가이드님이 놀란 이유는 1인당 만원 가까이의 비용이니 전부 하면 35만원 정도의 비용이 들어가는 그런 큰 비용이었기 때문이다. 이미 결정은 나 있는 상황 이었다. 당연히 궁전은 문이 열려 있었고 우리 팀은 최대한 빨리 구경을 하고는 얼른 앙카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화려함의 극치라고 하는 돌마 바흐체 궁전을 구경 했으니 모두들 신이 나 있었고 나와 가이드 님도 숙제를 하나 끝냈다는 기분으로 기분 좋게 앙카라로 향했다.
하지만 또 하나의 신경 쓸 일이 남아 있었다. 정상적인 스케줄 대로라면 1시에 출발해서 6시간 거리에 있는 앙카라에 저녁 7시쯤 도착해서 식사를 하고 휴식을 취하면 끝나는 스케줄 이었다. 하지만 1시에 출발 해서 30분 거리에 있는 돌마바흐체를 보고 빨라야 2시 반 아님 3시쯤 출발하게 되니 저녁 식사 시간이 문제였다. 역시 이곳도 호텔 직원들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고 식당 문을 닫으려 했고 우리는 너무나도 늦은 시간에 도착하는 것은 자명한 일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도우미가 출현을 했다. 터키 투어는 다른 곳 과 달리 현지인 가이드(터키인)가 매번 투어팀과 함께 한다. 8일의 스케줄 이라면 8일 동안 계속 팀과 함께 하면서 여러가지 일을 많이 하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일이 티켓 구매 하는 일부터 식사 시간 출발 시간 이런 것들의 투어를 하면서 일어나는 전반 적인 것들을 컨트롤 하는 역할을 말이다. 그러다 보니 이번엔 호텔 측에 양해를 구하는 상황에서 로컬 가이드가 전면에 나선 것이다.
그렇게 또 하나의 난관을 헤치고 늦은 저녁을 마친 가이드님과 나는 식당에서 정말 수고 많았다는 위로와 함께 맥주 한잔을 먹고 같이 잠이 들었다. 이번팀은 손님과 한 방을 쓰는 스케줄 이어서 현지 한국인 가이드 님과 함께 방을 쓰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하루는 저물고 언제 잠이 들었냐 싶을 정도로 잠에 빠져 들었다. 다음날은 7시 출발 이었다.
그렇게 잠이 들고 순간 눈을 떴는데 나는 순간 깜짝 놀라고 말았다. 출발은 7시 였는데 시계를 보니 7시 5분 이었다. 어제 그렇게 난리를 피고 나더니 너무나도 피곤 했는지 두 명이 다 늦잠을 자고 만 것이었다. 이거 큰일났다. 이미 손님들은 다 나와 있을 것이고 두 명이 정리를 해서 나가려면 적어도 20분은 필요 할 텐데 낭패다.
‘아 정말 어제부터 되는 일이 없네’
이러면서 옆에서 자고 있는 가이드 님을 부랴부랴 깨웠다.
“형 형 일어나세요. 얼른요. 7시 넘었어요. 아 미치겠네”
나와 가이드 님은 이미 구면 이었고 행사를 하면서 여러 번 얼굴을 본적이 있어서 일할 때의 명칭 보다는 형 동생 하는 사이로 바뀌어 있었다.
“얼른 일어나세요. 늦었어요 늦었어. 어떻게 알람을 한 명도 못 들었지?”
그랬더니 갑자기 목소리를 높이더니 한 마디 하신다.
“지금 몇 신데?”
“이거 보세요 7시 넘었어요.”
옆에 풀어 놓은 손목 시계를 가리키며 시간을 강조를 하고 있었다.
“뭐라카노? 지금 7시가 넘었따꼬?”
그랬다. 가이드 님은 경상도 분이었다.
“네 5분 넘었어요. 얼른 나가야 해요. 물건 빠뜨리지 말고 나가야 하는데 얼른 나가요 얼른.”
그리고 정신을 차리고 일어 나려는데 갑자기 시계가 눈에 다시 들어 왔다. 그런데 시간이 일어 났을 때 본 시간과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정확히 다시 보니 7시 5분이 아니라 밤 10시 20분 이었다. 너무 너무 긴장한 탓 인것 같았다. 그랬다. 내가 잠이 들었다가 다시 깨고 나서 시계를 보니 시계의 방향을 정확히 보지 않고 눈에 보이는 데로 시간을 파악해 버리고 만 것이다. 그걸 알고는 비몽 사몽 하고 있던 가이드 님께 다시 재차 얘기를 하고 말았다.
“아 죄송해요. 7시 5분이 아니라 10시 20 분이네요. 제가 착각 했나봐요. 진짜 죄송해요.”
“그래 맞다. 뭔데? 그럴리 없지. 내 잠든지 몇 분 안됬거든. 아침 일리가 없다. 니 뭔데? 와그리 깜짝 놀라게 하노?”
순간 죄송한 마음이 많이 들었지만 정말로 다행이다 생각이 들었고 다시 잠이 들면 7시간 이상을 더 잘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잠이 들었다.
<잠 결에 본 시계 모양에 따라 그렇게 시계는 완전히 다른 시간을 안내하고 있었다.>
그렇게 아침이 밝았고 기분 좋게 출발을 한 우리 팀은 한 결 분위기가 좋아졌다. 심지어 너무나도 단합이 잘 되었고 버스 안에서도 웃음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일행 중 한 분의 생일을 맞이 하게 되었다. 좋은 분위기를 그대로 이어 받아 생일 당일날 석식당 에서 케잌을 준비해서 아주 기분 좋게 파티를 하면서 즐거운 분위기는 최고조에 달했다.
그런데 그때 우리를 질투 어린 눈 빛으로 쳐다 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다른 여행사에서 온 손님들이 우리를 계속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면서 우리 팀을 볼 때마다 우리 팀을 보고는 그 궁전에 다녀 왔느냐고 계속 묻는 것이었다. 우리가 가고 안 가고는 그 팀한테 중요한게 아니었는데 그 팀은 계속 우리 팀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일정표에 나와 있었고 그 팀은 일정표에 나와 있지 않았기에 갈 이유가 없었는데 그 궁전을 알고 나니 가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그 팀 가이드님과 인솔자 분을 매일매일 괴롭 히는 듯 했다. 그러다 보니 그팀 스텝들은 스트레스를 엄청나게 받고 있었고 매일 매일이 짜증이 나는 듯 했다. 그래서 그 궁전을 가기 위한 회의를 계속 한다고 했다. 그리고는 엄청나게 다시 스텝들을 괴롭 히는 듯했다. 그래서 내가 몰래 나서기로 했다. 도저히 갈 수 없는 스케줄 가지고 계속 가자고 우기는 모습에 나도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뭐하러 내가 나서느냐 생각 할 수도 있겠지만 가끔 동종 업계에 있다보니 서로 서로 도와 주는 상황이 생기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 팀 인솔자 분에게 지금 가장 강력하게 우기면서 선동을 하는 사람이 누구 인지 파악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나는 얼른 그 분을 접촉 했다. 그리고는 한 마디만 하게 되었다.
“선생님 그 궁전 선생님 팀의 남은 스케줄로는 도저히 보실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일정표가 잘 못 나왔기 때문에 가게 된거고 일반 스케줄은 도저히 갈 수가 없습니다. 스트레스만 받으실 테니 포기 하시는게 좋습니다.”
“아 그래요? 알겠어요”
정말 대답하기 싫은 표정 이었다. 그리고는 돌아 서는데 그 팀 사람들 끼리 속닥 거리는 듯 했다.
그런데 그 이후에 해결이 된 줄 알았는데 나중에 그 손님들이 포기는 했지만 가이드하고 인솔자가 불친절 하고 매너가 없다며 말들을 하기 시작했다. 복수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기네들 말을 안 들어 준다고 그렇게 상황이 변해 버린 것이다. 참 산너머 산인 팀 이었다.
스텝들이 그렇다고 말하는 데에는 나도 어떻게 도와 줄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결국 큰 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이스탄불을 들어가는 경유지인 차나칼레 인근 식당에서 그 팀과 다시 마주치고 말았는데….
유료 화장실이 있는 현지 식당. 특이한 구조였다. 다른 곳에는 식당 안에는 거의 대부분이 무료 화장실 이지만 이 식당엔 바닷가에 있다 보니 현지인 들이 가끔 돈을 내고 이용하는 그러한 식당이 있는 곳이었다. 먼저 도착한 우리 팀은 자리를 잡고 화장실을 이용하고 있었고 유료로 화장실만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돈을 받다 보니 화장실 앞에 돈을 받는 사람이 동전을 놓고 앉아 있었다.
이런 곳에서는 안내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 나는 들어 오시는 손님들에게 식당 이용 손님들은 무료로 이용 하시면 된다고 안내를 하고 있을 때쯤 이었다. 그때 그 팀도 식당으로 들어 왔고 하나 둘 씩 식당 내 화장실을 이용하기 위해 화장실 안으로 들어오고 있을 때 였다. 우리 손님들은 돈을 내지 않고 화장실을 사용하기 위해 안으로 들어섰고 그 팀은 돈을 내고 화장실 안으로 들어오고 있는 순간 이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웅성웅성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팀 분위기가 좋았던 우리 팀은 크게 문제가 없었지만 스텝들이 싸가지가 없고 돌마바흐체 궁전도 보지 못한 그 다른 팀은 우리는 왜 돈을 내고 이용을 하느냐고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급기야 가이드와 인솔자가 화장실 돈을 받아서 뒤로 챙겨 먹는 다는 말도 안되는 말 까지 들리기 시작했다. 결국 넓은 식당내 한 가운데에서 그쪽 손님과 인솔자가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했고 결국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손님과 스텝 들과의 고성이 오가고 욕설이 난무 하던 찰나….아들과 함께 온 50대 정도 되신 여자손님이 여자 인솔자의 따귀를 때리고 말았다. 그때 까지 항상 을의 입장이었던 그 팀의 인솔자는 갑자기 돌변 하더니 식당내에서 모든 사람들이 들으라는 식으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아이 이런 씨X 진짜 내가 다른 건 다 참아도 맞고는 드러워서 일 안해. 안해~~~~~~~~~”
그리고는 그 팀 현지인 가이드에게 경찰을 불러 달라고 요청을 하고 말았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고 덩달아 우리 팀도 갑자기 조용해 졌다.
‘ 아 이런 분위기 정말 싫어하는 분위긴데 ㅠ.ㅠ
그렇게 그 팀 분위기는 이미 겉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되어 있었고 결국엔 나머지 분들이 한국에 와서는 두명의 모자 분들 때문에 나머지 여행이 즐겁지 않았고 피해 보상을 요구하며 소송이 걸렸다는 얘기만 들을 수 있었다. 해결이 되었는 지는 들을 수 없었다.
그때 나와 함께 했던 그 가이드 분은 이제는 체코 프라하 에서 볼 수 있게 되었으며 지나가다가 가끔 볼 때면 그때를 회상하며 웃곤 한다.
여행쟁이의 팁 : 가끔 실수로 일정표 상에 맞지 않은 일정이 나오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는 당연히 여행사에서 책임을 지지만 이 사례로 보았을 때 억지로 다른 팀과 똑 같은 일정을 요구 하는 경우에는 해당 스텝들이 꼭 그곳을 갈 필요가 없다는 것을 염두해 두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