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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쟁이 위창균 Mar 22. 2021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우즈 베키스탄과 터키는 위치상 아시아에 소속

*이집트는 아프리카로 들어가지만 여행업상 유럽을 다루는 회사들이 같이 묶어서 판매하는 상품이므로 이번 유럽 에피소드에 부득이하게 포함 시켰음을 이해 하시기 바랍니다.


인솔자를 하면서 정말 잊을 수 없는 순간이 언제 냐라고 물어 본다면 많은 순간이 있지만 손님들에게도 많이 얘기 하는 경우가 바로 이전에 구 소련 이었던 나라를 갈때라고 말할 수 있다. 




독립국가 연합이(1991년 12월 31일 소련(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USSR)이 소멸되면서 구성공화국 중 11개국이 결성한 정치공동체를 가리킨다. 2008년 조지아(그루지야), 2014년 우크라이나가 탈퇴하여 2015년 현재 9개 회원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투르크메니스탄이 준회원국으로 참가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독립국가연합  [Commonwealth of Independent States, 獨立國家聯合] (두산백과)


 그 중에 내가 가본 나라 들중엔 우즈 베키스탄과 벨로루시 그리고 우크라이나가 있는데 이번 스토리는 우즈 베키스탄을 갔을 때 있었던 에피소드 중의 하나이다. 


충청도 카톨릭 재단과 함께한 선교 단체와 함께한 팀이었다. 12명의 소수 인원과 함께한 이번팀..나도 처음 가보는 나라 이기 때문에 긴장을 하기도 했지만 기대도 함께했던 팀이기도 하다. 일명 김태희가 밭을 간다고 많이 알려진 우즈베키스탄 그래서 인지 나도 알게 모르게 기대를 했던 팀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나라는 우리와도 관련이 있었다. 

첫번째로는 어디가나 나오는 현지가이드가 이름이 특이해서 어느 분일까 생각을 해보았는데 성은 김이고 이름은 러시아식 이름의 현지인 가이드. 김 올가. 기대감도 있었지만 걱정도 조금 되기도 했었던 그 분의 이름. 

복잡한 입국 수속을 마치고 가이드분과 미팅을 하게 되었다. 얼굴을 봐서는 한국인의 모습이 많이 남아 있었고 한국말도 부드럽게 하는 것이 나의 걱정을 순식간에 없애 주는 그런 분이기도 했다. 미팅을 하고나서 버스가 이동하는데 애기를 시작하신다. 


“안녕하세요 저…는 김..올가..임니당. 만나서 반갑슴..니당…”


이런 이분의 발음이 심상치 않다. 여기서 심상치 않다는 것은 발음이 매우 안 좋았다. 그리고 나서는 본인 소개를 하시는데 거기서 왜 그분이 발음이 좋지 않았는지 알 수가 이었다. 이분은 바로 1930대 스탈린이 많은 사람을 숙청을 하기 시작하고 강제 이주를 시켜 중국 독북 3성 근방에서 사시다가 여기까지 온 바로 고려인의 후손 이었던 것이다. 


고려인 3세 김올가 우리의 가이드는 그렇게 역사의 산 증이셨던 것이다. 그렇지만 발음이 조금 문제였지 투어를 게속 하다 보니 한국어 표현을 굉장히 많이 알고 계신 그런 훌륭한 분이셨다. 그렇게 우리는 첫날의 기억을 뒤로 한채 짜여진 일정과 방문을 하면서 순조롭게 일정을 진행해 나가고 있었다.


그러던 마지막날 저녁식사를 하기위해 식당으로 이동하는 중에 가이드 님이 질문을 하신다. 

“오늘 저녁은 보신탕이 나오는데 어떻게 수육으로 하실래요? 아니면 탕으로 하실래요?”

하는 질문을 하시는 것이었다. 그랬다 다른 지역은 이미 메뉴가 나와 있지만 우즈벡이나 몽골 우크라이나 등등은 특수 지역이라고 하는 곳이었다. 그래서 메뉴는 보신탕이지만 어떤 스타일의 보신탕을 드실 건 지를 손님에게 의견을 구하는 중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도 이전에 보신탕을 먹어 보았지만 지극히 개인 적인 성향으로 먹기 때문에 (전에 어머니 형제중 한분이 사철탕 집을 하셔서 이모부가 한번 먹어보라고 육개장 스타일로 보신탕을 끓여 주셔서 그런 스타일이 아니면 잘 먹지 않는 편이다.)


이번에는 먹지 않았다. 하지만 손님들은 구위에 맞는 스타일로 고르게 되었다. 

그렇게 각자 맞는 스타일로 메뉴가 결정이 되었고 아무래도 식사가 식사 인지 만큼 음주가 함께 하게 되었다. 유럽으로 가면 양주가격과 비슷해 진다는 소주(사실 우즈베키스탄은 중앙 아시아 지역이지만 아무래도 동남아시아 와는 거리상으로도 그렇고 문화상으로도 그렇고 유럽 현지 랜드사에서 다루다 보니 유럽이라는 인식이 조금 있는 편이다. 사실 유럽과 붙어 있는 터키도 면적으로 보면 3%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97%가 아시아에 있다.)가 함께 하게 되었다. 


중국에서도 식당에서 보통 8천원 정도 태국에서는 한 병에 만원 정도 하는 소주이다 보니 보통은 잘 시키지 않지만 아무래도 개고기와 함께 하는 시간이고(항상 이런 식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출발 하기전 요청 사항이란 걸 확인 할 수 있었다.) 협회에서 걷어 놓은 회비가 있었기 때문에 소주가격은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만원은 넘는 소주였다. 마지막 날이고 선교 활동 및 방문도 모두 끝난 상태 였기 때문에 편안한 마음으로 식사를 하게 되었다. 그렇게 즐거운 식사가 끝나고 별로 멀지 않은 숙소로 이동을 해서 호텔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게 되었다. 


지나온 일정들을 정리하면서 그리고는 익일 갈 곳을 다시 한번 확인하면서 하루의 고단함을 달래고 있을 때 였다. 전화벨이 울리더니 손님한분이 전화를 하셨다. 보통 중국이나 동남아는 근처에 갈만 한 곳들이 가끔 있기 때문에(현지 bar나 시장 같은 곳) 이후에 연락을 주시는 경우가 있는데 이곳 우즈벡은 나도 모르는 곳이고 이슬람 문화가 있는 곳이라 이날은 왠지 전화벨 소리가 심상치 않게 들리는 건 나만의 느낌 이었을까? 전화를 받았는데 손님의 목소리가 좋지 않다.


“여보세요”

“가이드 님이시죠? 여기 몇 OOO호 인데요. 저희 룸메이트가 안보여요.”

“네?” 어디 가셨는데요”

“그걸 모르겠어요.”


‘뭐지? 룸메이트가 없어진 걸 왜 나한테 물어보는 거지? 그리고 마땅히 할말이 없었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하는 것인지 룸메이트가 없는 걸 도대체 어쩌라는 건지…’

그래서 나는 그 손님께 다시 물었다. 


“혹시 차에서는 내리셨나요?”

“글쎄 그걸 모르겠어요.”

“네? 차에서 내렸는지도 모르신 다구요?”


나는 다시 재차 손님께 말씀을 드렸다. 이때 당시가 2008년 정도 였으니 로밍 이나 데이터가 지금처럼 보편화 되지 않은 시기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시스템이 이렇다 보니 현지 가이드 분이 인솔자인 나에게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여 현지 폰을 하나 전달을 해준 상태였다. 그래서 바로 그 폰으로 김 올가 가이드님께 연락을 취했고 그분은 기사를 통해서 혹시나 손님이 버스에 있는지를 확인하기로 한 것이다.

10여분의 시간이 흘렀을까, 가이드님이 전화를 주셨다.


“기사림이 글어는데..”

고려인의 느낌이 묻어나는 발음 이었다. 

“없었데요. 아무도.”

“아 기사님이 지금 차를 떠나셨나요?”

“네 차 그거 있져. 놓고 가는 곳이 있어서 거기다 차 놓고 집에 가셨는데 내릴 때 손님이 없었데요. 그리고 손님이 있었으면 기사가 이미 알았겠죠. 그렇겠죠?”


그랬다. 손님이 있었으면 당연히 기사가 알았을 테고 그랬다면 이후에 조치를 취했을 텐데…

손님의 위치가 오리 무중인 상태 였다. 

나는 그때 잠시 생각에 잠겼다. 


‘우리 손님은 11명 올가 가이드님과 나까지 13명 손님들은 즐겁게 식사를 하고 계셨고 우리도 간단히 맥주를 마시면서 함께 했고…1시간 30 여분 가량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호텔로 이동. 식당에서 호텔까지 5분 남짓. 식당에서 버스가 출발할 때 인원 파악은 했고..


아무리 생각을 해도 손님이 가실 곳이 없었다. 그리고 없어지신 룸메이트 분은 손님이 내리신지 안 내리신지 정확히 모르고 계시고 기사는 버스에 아무도 없다고 했고 이거 무슨 명탐점 이라도 불러야 하는 상황인가 싶을 정도로 기억의 퍼즐과 손님의 행방이 맞지 않고 있었다. 


다시 한 번 가지고 있는 명단을 보게 되었다. 

‘아 이분..항상 정장을 입고 다니시고 있는 듯 없는 듯 하신 그 분. 매너 좋고 말씀 없이 나를 가끔 챙겨주고 배려해 주시던 고마운 분이었는데 도대체 이 분이 어디 가신 것일까? 일반적인 나라에서 라면 뭐 산책을 가셨나 할 텐데 우즈베키스탄에서 갑자기 안 보이신다..


이제 다른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사무실 담당자의 얼굴과 복지관 담당자님의 신신당부.

“건강하게 별탈 없이 잘 돌아오세요. 인원이 얼마 안되니 편안 하실 거에요.”

라고 했던 농담까지 여러가지 장면과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가고 있는 순간 이었다. 갑자기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내 방의 전화기라면 손님 이겠지만 방 전화가 아닌 김 올가 가이드님이 주고 가신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이 의미는 뭔가의 반전이 일어 난다는 뜻이 었는데..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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