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행쟁이 위창균 May 20. 2021

<을질(?)을 당하다.>

                                                  



한국에는 수 많은 여행사가 존재한다. 내가 보던 여행사 관련 컨텐츠가 있던 책에 보면 (일명 타임테이블 이라고 하는 책)

‘15,000여개 여행사에 서비스 됩니다.’

라고 써있던 문구가 생각이 난다. 하지만 이 마저도 2019년 코로나로 인해서 발행이 연기된데 이어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데 코로나가 끝나면 얼마나 많은 여행사가 남아 있을지도 심히 걱정이 된다. 


이렇게 여행사가 많은 만큼 다양한 스타일의 여행사 경영 시스템이 존재 한다. 그 중에 나를 비롯한 모든 인솔자 들이 가장 싫어하는 상황 중의 하나는 바로 손님과 함께 방을 쓰는 것이다. 사실 나는 손님과 한 방을 쓰는 것에 크게 거부감이 없었다. 사실은 회사에서 하라고 하니까 그냥 그렇게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점점 싫다는 사람들의 얘기를 듣게 되고 개인 주의가 심한 유럽 쪽을 주로 인솔을 하다 보니 싫어 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도 나보다 나이가 적은 사람하고 방을 쓰는 경우는 같이 쓰는 편이다. 그런데 요즘은 젊은 손님들이 오히려 싱글차지- 혼자 방을 쓰겠다고 하는 추가 요금- 를 내고 오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정말 싫은 경우는 나이가 많은 분이 혼자 오셔 서는 싱글 차지를 내지 않고 인솔자와 방을 쓰겠다고 아예 예약 하기 전부터 요청을 했을 때이다.(나이가 많다고 해서 싫은 이유는 아니다. 대부분의 손님들이 매너가 없는 분들이 많기 때문이다. 여자 손님들은 좀 덜하 지만 남자들은 샤워를 한 이후에도 그냥 아무것도 입지 않고 그냥 나오는 경우가 많고 그거에 대해서 뭐라고 부탁을 드리면 


“ 아니 남자 들끼리 뭐 그런걸 가지고 그래? 군대 안 갔다 왔어>?”

이런 경우도 많다.)


그렇다 나는 군대를 안 갔다 왔다. 마치 아시안 게임이나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서 군 면제를 받은 것처럼 나는 공익 근무를 했기 때문에 훈련소 에서는 한 달 밖에 없었다. 그래서 군대내의 목욕 문화나 이런 건 정확히 알지 못한다. (여기서 정확히 란 말은 현역에 비교 했을 때 말이다.)


그런데 이번 팀은 명단을 받았더니 참 최악이다. 기본적인 인원이 되어야 그래도 수입이 보장이 되는데 수입 보장이 안되는 인원 에다가 70이 넘은 분하고 룸조다. (인솔자 들끼리 쓰는 줄이말의 하나로 룸 조인을 줄여서 말 하는 것이다.) 


아마도 누군가가 버린 느낌이 강했다.(인원이 안되고 조건이 좋지 않은 경우 다른 핑계를 대면서 안 간다고 하는 경우를 보통 이렇게 말한다.) 거기다가 명단 맨 밑에(일반적으로 명단 제일 밑에는 인솔자의 이름이 들어간다.) 다른 인솔자의 이름이 떡 하니 나와 있다. 아마도 담당 직원이 지운 다는 것을 그대로 나에게 보낸 듯 했다. 그렇지만 티는 낼 수 없었고 울며 겨자 먹기로 그 팀을 진행하게 되었는데…


보통 하루 전에 회사에 준비를 하러 간다. 월요일 출발 같은 경우에는 토요일이 대부분 휴무 이기 때문에 금요일날 준비를 하는 것이 통상 적이다..

명단을 받으러 전날 사무실로 터벅 터벅(즐겁지 않은 나의 마음이 여기서 나타난다. 앞에서 말한 것 처럼 누군가가 버렸다는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기 때문에 ㅠ.ㅠ.)


오랜만에 만나는 선 후배님 들과 인사를 나누고 인솔자 준비실로 들어갔다.(인솔자 들은 평상시에는 출근을 하지 않는다. 15년 전에는 그런 회사들도 있었지만 인솔을 전문 으로 하기 때문에 자리도 없을 뿐더러 출장 준비를 할 수 있는 공간만이 우리를 반겨(?)주는 것이다.

이런 날은 사람들이 없었으면 하는데 사람들이 많은 건 왜 일까? 그리고 질문을 받기가 싫은데 질문을 안 받을 수도 없고(보통 이런 질문을 한다. 


“어디가? 몇 명이야?” 등등의 질문 등이다.

형식적인 질문에 얼른 대답을 하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때 였다. 담당 직원이 오더니 미안한 기색을 내비친다. 아마도 인원이 적고 룸조다 보니 미안한 마음을 보인 것 같은데 그래도 무슨 일이든 즐겁게 맞이 하는게 나의 스타일이고 대부분 그렇게 다 티를 내지 않는다. 아마도 담당이 없을 때만 우리 끼리 얘기를 하던가 하고 말이다.


그런데 명단을 받는 순간 난 내 눈을 의심하기 시작했고 다시 한번 명단을 뚫어지게 쳐다 보기 시작했다.

18명? 정말 18명?

게다가 놀라운 것은 나는 혼자 자는 것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분명히 이번 팀 룸조 였는데 사무실에 와보니 혼자 자는 것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5명이 늘어 나면서 보니 남자 혼자 오신 분이 한 분이 더 생긴 것이다. 그렇게 예상 하지도 못한 상황으로 급 전환을 맞으며 투어는 시작 되었고 한 팀에서 여권 분실로 인한 재 발급을 빼고는 크게 문제 없이 진행되어 가고 있었다.


이쯤 되면 나는 이런 생각을 가끔 하게 된다. 물론 사람들 마다 달라서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겠지만 운이 좋은 것일 수도 있고 사람마다 각자 생각 하기 나름 이겠지만 우연치 않게 이 팀에 조인 하면서 나의 룸조를 막아(?)준 그 손님께 감사한 마음이 들기 시작한다. (이 부분은 개인적인 나의 마음이다. 인솔자 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일정이 중간쯤 되어 가는 즈음에 혼자 오신(젊은 분이 었다. 나의 기준엔 많이 젊은 분 이었다.)그 분에게 살짝 말을 걸어 보았다. 


“혹시 불편한 거 없으 신가요?”

이렇게 질문을 하긴 했지만 불편 하다고 하셨어도 안타 까운건 딱히 해결해 드릴 방법은 없는 상황 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너무 고마운 분이니 저녁에 맥주라도 한 잔 할까 하는 마음으로 말을 걸었더니..흔쾌히 반응을 보이신다.


“네 괜찮고 즐겁습니다.”

“그래도 같이 주무시는 분이 연세도 많으시고 하신데 괜찮으세요? 40년이 넘게 차이 나는 분하고 그것도 어떻게 보면 남이고 적과의 동침(?)인데 쉽지는 않을 텐데요.”

“그래도 다행히 어르신 께서 잘 챙겨 주시고 배려도 해 주시고 그래서 크게 불편하지 않습니다.’

“그럼 다행이네요. 혹시 맥주 좋아하세요? 유럽까지 오셨는데 괜찮으시면 저녁때 바에서 맥주라도 할까요?”

“아 네 좋아합니다. “

“그럼 일정 끝나고 바에서 목이라도 간단히 축이시죠?”(참 꼰대 같은 표현이다..)

“네 고맙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사소한 일탈은 시작 되었고 공교 롭게도 보통 10시 반에는 끝나는 바가 그날은 24시간 한 가지 더 더하자면 안주 문화가 없어서 한국인 들에게는 불편한 주류 문화가 이날은 맞은 편에 마치 우리에게 선물 이라도 주는 것처럼 맥 도날드 까지 함께 하면서 내가 아주 최애 하는 맥 너겟까지 함께 하며 이런 저런 도란 도란 남자 들만의 즐겁고도 지루한(?) 시간을 나름대로 즐겁게 보내게 되었다. 우리는 마지막 날 한 번의 시간을 더 기약 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일정은 마무리 되어가고 항상 그렇듯이 마지막 날이 오고야 말았다. 약간은 무난하지 않은 마지막 날의 일정…

슬로베니아 에서의 투어를 시작으로 점심을 오스트리아에서 먹고 숙박은 독일에서 하는 현지 인들은 절대 이해 할 수 없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그런 일정이 가끔 나타난다. 이 뿐만이 아니다. 크로아티아 조식 슬로베니아 중식 오스트리아 석식도 자주 나타난다. 우리가 얼마나 바쁘게 여행을 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석식을 오스트리아 에서 마무리하고 호텔로 이동을 했다. 만만치 않은 거리이다. 사실 2시간 30분 이면 그리 멀지 않은 이동 이지만 아마 느끼는 분이 많으 실 것이다. 어렸을 적 소풍 전날 잠이 안 오듯이 뭔가의 약속이 있으면 시간이 안 가는 것 같은 느낌. 게다가 중간에 문제가 있었던 여권 분실 사건을 처리 하고 나니 뿌듯함과 함께 마무리 되는 이런 느낌은 나에게 또 다른 설레임을 주게 되는데..


어는덧 호텔에 도착을 하니 10시가 거의 다 된 시간. 마음이 급했다. 얼른 체크인을 하고 나름 대로의 마지막 일정을 하기 위해선 솔직히 마음이 급했다. 아침 조식 시간과 식당의 위치 출발 시간을 번개 처럼 알려 드리고는 키를 나누어 드렸다(나는 모닝콜은 따로 요청하지 않는다. 가끔 호텔 직원들이 까먹는 경우도 있고 요즘엔 다들 알람이 되어 있어서 그리고 심지어 가끔은 전화기가 없는 산장식 호텔도 있기 때문이다.) 손님들이 올라가신 이후 그리고 우리의 일탈을 함께할 그 분께는 우리들 만의 사인을 보내고는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바의 위치와 영업시간. 하지만 가끔 비엔나 에서 와는 달리 영업 시간이 생각한 것보다 일찍 끝나는 경우가 많아서 약간의 걱정은 있었는데 어찌 되었든 조심 스레 확인을 해보니….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생겼다. 

문제는 바가 없단다.ㅠ.ㅠ.ㅠ.ㅠ.ㅠ.ㅠ.ㅠ 영업 시간이 일찍 끝나는 것도 아니고 바 자체가 없단다.

나름 이름만 대면 알만한 그런 호텔인데 바가 없다니…마지막 날인데 바가 없다니 이럴수가..

술 파는 곳이 없는 곳이다. 술이라고 하긴 그렇지만 맥주 파는 곳이 없다는 것이다. 마지막 날인데 투어의 꽃인(이건 나름대로 나의 마무리 방식이다.)



우리의 마지막을 함께한 뮌헨에 머큐어 호텔


마지막 한 잔이 필요한 시점인데 바가 없다는 것이다. 근데 왜이리 호텔 직원은 오늘 상황과 맞지 않게 더 없이 친절한 것일까? 화가 난다. 자꾸 나도 모르게 화가 난다. 하지만 거기서 그렇게 화만 내고 있을 순 없다. 어떻 게든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소스는 제공 해준다. 본인이 있는 책상 밑에 파는 맥주가 있으니 이건 어떻냐는 것이다. 아니다. 난 그런 맥주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유럽의 분위기를 마지막으로 만끽하고 싶은 것이다. 고생한 나에게 마지막으로 선물을 주고 싶은 것이다. 


아마도 학창 시절에 이렇게 열심히 했다면 서울 4대문 안에 있는 어느 유명한 대학이라도 갔을 텐데..그때는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더 무언가가 간절히 필요했다. 그 분과 함께할 우리만의 장소가 근데 여기는 바가 없단다. 그 유명한 호텔 체인에서 그리고 여긴 맥주의 나라 독일인데…


마지막 날인데. 마지막 날인데 말이다. 그때 였다. 호텔 직원이 넌지시 한 마디 한다. 호텔 밖에 옆으로 가면 레스토랑 겸 바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

그러면서 시계를 쳐다 봤다. 10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인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는 얼른 정리를 한 후 그 레스토랑 으로 갔다. 하루의 피곤함을 말끔히 날려 줄 것 같은 그런 분위기의 아늑한 레스토랑. 만족할 만한 수준 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없다. 얼른 발 빠르게 움직 여야 했다. 직원과 번개처럼 눈을 마주 친 후 맥주 1잔을 주문 했다. 초 스피드 메뉴 카프레제와 함께…


그렇게 맥주를 영접하게 되고 순식간에 맥주를 한 잔 들이켰다. 아직 함께 하기로 한 그분은 오지 않았고 이젠 그 분의 몫까지 주문을 했다. 나 만의 방식으로 말이다.

“pls 3 more beer”

“3 beers?”

“yes pls”


그런데 나의 눈을 의심케 할 만한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한 잔의 맥주와 카프레제가 나온 것이었다. 그래서 왜 한 잔의 맥주가 나오는 것이냐고 물었더니 당신이 혼자니까 한 잔이 나온 다는 것이다. 그래서 친구가 온다고 말했더니 그럼 친구 온 후에 주문하라는 것이다. 시간이 없다고 했더니 그건 당신 사정이고 지금은 혼자니까 한 잔만 마시라는 것이다. 을질을 당한 것이다. 아주 유럽에서는 흔한 상황이었다. 일명 내가 이름 지은 을질…


‘아 답답하다 이 게르만 놈들’


슬라브 쪽이라도 조금 유두리가 있었을텐데 답답함 놈들이다. 그런데 그 분은 웬일인지 아직도 안 오고 계신다. 그 때 였다. 그 분이 나타 나셨고 얼른 발 빠르게 맥주 한 잔을 더 주문 했다. 

답답한 그 직원 정말 1인당 한 잔 외에는 절대 주지 않는다.


다시 정중하게 부탁을 해서 맥주를 더 시키곤 우리는 순식간에 3잔을 마시고 다시 각각 1잔씩을 주문 하고 나니 10시 반이 다 되어 간다. 얼른 빠르게 마시고는 주문을 더 하려는데 우리를 쳐다 보지 않는다. (유럽에는 딩동벨이 거의 없다. 그래서 직원이랑 눈이 마주치지 않으면 주문하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담배를 피우면서도 자기는 곧 끝난 다는 듯 또 다른 을질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이제 끝났으니 가라고 호통을 친다.


우리나라 에선 상상을 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이 식당은 곧 문을 닫는 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또 다른 의미는 우리의 마지막 밤이 이렇게 끝나 간다는 말도 되는 것이다. 그때 였다. 우리 젊은 피의 그분 께서 젊은이의 촉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구글의 위대함. 지도와 장소 거리에만 집중을 했던 나와는 달리 주변 활용도가 많은 구글의 다른 기능을 조회하기 시작 한 것이다. 주변 레스토랑 탐색…


몇몇 군데의 레스토랑이 잡히게 되고 그 중 터키풍의 레스토랑이 택시 5분 거리의 우리에게 다가 왔다. 더 반가운 소식은 새벽 1시까지 영업을 한 다는 것. 독일에선 정말 찾기 드문 레스토랑 이었다. 이제 마음은 조금 편안해 지기 시작한다. 현재 시간 10 15분 갑자기 2시간이 넘는 시간이 여유가 생겼다. 조금 전의 조급한 마음은 어디 가고 마음이 편안해 지기 시작했다. 천천히 위치를 파악한 후 택시를 불렀다. 독일 이라 그런지 멋진 벤츠 브랜드의 7인승 차량이 도착을 했고 우린 가까운 거리에 있는 터키식 레스토랑 겸 바로 이동을 하기 시작했다. 근데 가는 길에 문제가 생겼다. 우리를 알아 본 것 인지 어떤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민족으로 보이는 젊은 사람들이 빵빵 거리며 시비를 건다.


‘어 이게 아닌데, 이러면 안 되는데’

우리 기사도 이민족이라 물러나지 않는다.(정확히는 기사의 출신지를 알 수는 없었지만 피부색이 이민족 같았다.) 기사님께 진정, 진정을 강조하며 우여 곡절 끝에 바에 도착했다. 중간에 손가락 욕도 오가며 조금 험악 하긴 했지만 도착은 했다. 마지막날 무슨 일이 일어나면 안 되기 때문에 항상 조심을 해야 한다. 다행히 잘 도착을 해서  마지막 날을 거하게 보낼 수 있었다. 


비록 급하게 마신 맥주 덕분에 택시를 타고 이동한 그 곳에선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식당 사장님과도 여러 얘기를 즐기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아침에 일어 나보니 정체 불명의 맥주 두병이 방에서 빈 상태로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의 일탈 이었던 마지막 날은 즐거운 시간 이었고 이후 1달이 지나 서울 근교 모 장소에서 막걸리에 파전과 함께 우리는 나름대로 뒷풀이를 하고 있었고 아직도 만남을 이어오고 있는 중이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중심가의 BAR>

“000님 즐거웠고 앞으로도 우리 함께 해요~~투어든 저녁이든 점심이든 제 추억의 동반자로서 함께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기억나는 추억이 있다는 것과 함께한 기억은 언제나 즐거울 수 있다. 

항상 얘기치 못한 적과의 동침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우리의 입장. 하지만 그 적과의 동침을 의도치 않게 대신 해준 한 분 덕분에 우리만의 추억은 그렇게 쌓이게 되었다. 그 후 2020년 11월 코로나 사태 이후 어려움이 많았지만 그 분은 만나고 있던 여자친구와 결혼을 하였고 나는 그 결혼식에 참석해서 우리 인연의 끝은 계속 되고 있다. 을질을 당한 동지로서 말이다.


여행쟁이의 팁 : 싱글 차지와 룸 조인. 혼자 여행을 준비 하다 보면 룸 조인이 생기게 된다. 하지만 얘기치 못하게 룸 메이트와 트러블이 생길수도 있으니 원하지 않는 경우에는 싱글 차지를 지불 하면 되고 그렇지 않다면 인솔자와도 방을 쓸 수도 있으나 인솔자들은 대부분 일하는 사람 들이므로 많이 불편할 수 있으니 비용이 크게 부담이 되지 않는다면 싱글차지를 내고 혼자 사용 하는 것을 권하는 바이다.

작가의 이전글 <벼락맞은 신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