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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쟁이 위창균 Dec 27. 2021


<잔머리의 대가>

[이글은 2000년 8월 어느날 안양에서 중국집 배달을 하면서 있었던 에피소드 입니다.]


앞에서 언급한데로 친구는 말을 엄청나게 더듬었다. 일상 대화가 힘들정도로 심하게 더듬었다. 그러다 보니 항상 손이 먼저 올라온다. 그렇지만 같이 일을 해보니 머리는 정말 비상했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고 했나? 이 친구는 배달에 정말 최적화된 몸이었고 오토바이도 정말 잘탔다. 가끔 잔머리를 부릴때 빼고 말이다.


다른배달을 하는 사람들이 중국집 배달을 힘들어 하는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중국집 음식은 국물도 많고 소스가 많기 때문에 배달을 할 경우에 한 팔은 오토바이에, 한 팔은 바로 철가방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손으로 운전을 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난 경력이 짧아서 도저히 한 손으로는 철가방을 들을수가 없었다. 그래서 가끔 배달을 가면 자장면이 알아서 비벼져 있는 경우도 있었고 짬뽕 국물이 센적도 가끔 있었다. 


하지만 이 친구는 그런적이 거의 없고 랲을 쌀때도 한치의 오차가 없이 잘 쌌으며 랲을 자를때도 손으로 얼마나 잘 자르는지 그런게 다 부러울 정도였다. 그런데 가끔 잔 머리를 쓰는데 가까운데는 지가 가고 먼데는 나를 시키는 것이었다. 나는 잘 모르니 이 친구가 시키는 데로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어느날은 웬일인지 나에게 가까운 곳을 가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물었다.


"영선..정말 나보고 가라는 거야? 웬일이냐 니가 이런데를 나보고 가라고 하고?"

"어어얼른...자자자잔말말고 가가가렐때 가..마마맘 변하기 저저저전에.."


암튼 이제 착하게 살려고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가까운데를 가라고 하니 선뜻 나서게 되었다. 

바로 앞에 위치한 아파트 찾기도 쉽고 배달가기도 가깝고 해서 기분좋게 철가방을 들고 오토바이에 실었다. 가까운 곳이다 보니 금새 도착하였는데..

얼른 뛰어가 현관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반응이 없다. 10층을 가야 하는데 버튼을 눌러도 변화가 없다. 


그리고 나선 고개를 드니 엘베 문에는 이렇게 써 있었다. 

'수리중'


순간 난 친구를 떠올릴수 밖에 없었다. 

'아....당했다. ' 친구의 잔머리에 속은 것이다. 

'그럼 그렇지 나보고 가라고 할리가 없지'


순진하게 속아서는 이렇게 여기까지 온 것이다. 그러면서 천천히 10층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분을 삭이면서 말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함께 씩씩대면서 내려오고 올라가는 것이다. 

피자, 치킨, 야쿠르트, 석간신문 등등 다양한 사람들이 입을 삐죽 내놓고는 짜증을 내면서 올라가고 내려가는 것이었다. 

'그래 맞아 우리나라는 배달의 민족이었지?'


이때까지만 해도 배달업체 라는게 없었으니 각자 다들 개인사업으로 직접 배달을 할때 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도 많은 배달 기사님들을 볼 수 있다는게 이 당시를 생각하면 신기하기도 하다.

아무튼 난 오늘도 친구에게 당했다. 


라이더의 생각 : 하던데로 해야 한다. 그리고 믿을 사람을 믿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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