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년 6월 28일 보스니아 헤르체코 비나의 사라에보..
열강들의 가운데에 끼어있던 문화 종교 인종의 복합적인 발칸의 용광로라고 하는 보스니아에서 역사적인 큰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보스니아에 살고 있던 세르비아계 흑수단 출신의 가브릴로 프린치프에 의한 오스트리아 황태자 저격사건,,
이로 인해 세계사에선 잊을수 없는 세계 제 1차 세계 대전이 벌어지고 인류에게는 끔직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이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난 사라예보에서 나에게도 잊을수 없는 사건이 일어나고 말았는데…
사라예보는 인천에서 직항이 없는 곳이다. 어디서든 경유를 해서 가거나 다른 도시를 통해서 들어가야 하는데..
인천에서 러시아 항공을 탄 우리 일행은 모스크바를 경유하여 세르비아의 수도인 베오 그라드로 입국 하게 되었다. 여권 검사를 마치고 짐을 찾으러 나왔는데 한 분의 짐이 계속 나오지 않는다. 이런 경유는 여러 가지 경유가 있어서 항상 확인을 하는데…
첫번째, 다른 곳에 나와있는데 찾지를 못하는 경우가 있고
두번째, 일행 중 다른 분이 찾아 놓고 말을 하지 않는 경우
세번째 다른 여행객이 가방을 헛깔려서 찾아서 나간 경우(이 경우가 가장 최악이다. 그 사람이 공항을 떠나기 전에 본인 짐이 아니 란걸 알았다면 문제가 없지만 집으로 가지고 가서 가방을 열었을때 잘못 되었 다는걸 발견 한다면…)
네번째 탁송 과정에 문제가 있어서 정말로 짐이 안온 경우이다.
그런데 이번엔 4번째 경우였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얼른 인천에서 짐을 붙일 때 받은 짐표와 손님의 여권 그리고 그 손님을 모시고 유실물 센터로 이동을 한 후 필요한 절차를 거친후 호텔로 이동을 했다.
이번에는 큰 동요는 없었지만 가끔은 너무 곤란한 경우도 있다. 분명한 것은 내가 짐을 오지 말라고 한 것도 아닌데 대부분의 손님들은 우리 보고 억지를 부린다. 모든 책임을 지라는 것이다.
크게 문제는 없었지만 항공사 서비스가 바뀐 것이 안타까웠다. 2000대 초반 까지만 해도 항공사에서 어느 정도의 보상(세면 도구 제공이나 의류 구입에 관한 영수증 처리)를 받을 수 있었는데 요즘은 그런 것도 안 해준단다. 참 안타깝게도…
오랜만에 탄 러시아 항공..서비스도 많이 좋아지고 슬리퍼도 나누어주고 승무원의 태도도 많이 좋아진듯 한데(처음 탔을 때 기내식을 물어 보다가 영어를 잘 못 알아 들으면 승무원이 아무거나 놓고가고 아무거나 먹으라고 하는 식이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이 안 갈 것이다. 심지어 승무원 호출 버튼을 눌러도 누르지 말라고 경고를 주고 가는 경우도 있었다.) 결국은 짐이 발목을 잡았다.
처음 가는 세르비아 베오 그라드 때문에 안 그래도 긴장을 하고 있었는데 짐, 짐이 문제였다. 유실물 센터에서는 내일까지 보내 준다고 하니 하루 정도는 문제 없겠지 한 게 큰 착각 이었다. 동료들 사이에서 항상 하는 얘기가 있다. 짐이 따라다닌 다는…사람은 일정에 따라서 앞서가고 짐은 계속 하루씩 밀려서 따라오는 것이다. 항공사에서 말하는 것은 익일날 사라예보 호텔로 가져다 준다는 것이다. (이게 가장 최고의 해결 방법이다. 하지만 이것도 믿을 수는 없다. 영수증에 나와 있는 연락처로 계속 연락을 해야 하지만 안 받는 경우가 대부분 이다.)
우리가 묵게 되는 곳은 유고 슬라비아 내전 당시 데이턴 평화 협정으로 내전이 어느정도 마무리 되고 화합의 상징으로 지어진 홀리데이인 호텔. 현재까지 사라예보 에서 지어진 호텔중 단체가 들어갈 수 있는 호텔 중에는 최고의 호텔이다. (지금은 다른 좋은 호텔이 또 들어섰다.)
어느덧 하루가 지나고 현지 사무실에서 전화가 왔다. 항공사에서 배달이 힘드니 아무래도 오늘 사라예보 호텔 가는 길이 공항을 지나가게 되어 있으니 공항에서 직접 받아서 가라는 것이다.(어짜피 기대도 안 했기 때문에 예상은 하고 있었다.) 그나마 이런 상황이 가능한 것은 이번 팀이 일명 인센티브 라는팀(한 단체에서 같은 목적을 가지고 온 팀, 일반적인 패키지 팀과는 특성이 다른팀, 일명 연수팀 이라고도 한다.)
‘어짜피 가는 길이니까 기사님 한테 양해를 구하고 그렇게 가자. 그래야 나도 시달리지 않으니 그게 좋겠다.’ 마음의 결정을 내리고 일정을 진행하고 있는데 사무실에서 다시 전화가 왔다.
“인솔자님 안녕하세요 현지 사무실 담당자 000입니다. 지금 통화 괜찮으세요?”
“아네 말씀하세요.”
“저..그게..안타깝게도 짐이 아직 도착을 하지 않아서 내일오전 에나 공항으로 온다고 하네요.”
“내일요? 언제쯤 온다는데요? 내일 늦어도 10시반 전에는 사라예보를 출발해야 해서 그러거든요.
하지만 담당 직원도 정확히는 알 수가 없다. 항공사에서 받은 연락만 전달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느 정도의 확답을 받았는지 유례 없는 답이 들려왔다.
“현지에서 9시에는 도착 한다고 하니 무리는 없을 것 같아요.”
“네 그럼 알겠습니다. 가이드님이 투어 하시니 제가 미리 가서 확인하고 찾을 수 있으면 찾아 볼게요,”
사실 본인이 가지 않으면 수취가 불 가능 할 수 있으나 이곳 발칸 국가는 아직도 뒷돈(뇌물) 이라는 것이 아직도 존재하는 그런 곳이었다. 그렇게라도 해서 짐을 찾아 오려고 했던 것이었다.
이제 문제는 손님에게 이 상황을 전달하는 것이다. 오늘 올 것으로 찾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가 갑자기 또 안된다고 하면 어떨지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그래도 전달은 해야 했다. 정말 말하기 싫은 상황중의 하나 였는데 말이다, ㅜ,ㅜ,
고민 하던 끝에 그분께 상황을 설명을 드리니 갑자기 버럭 하고 화를 내신다.
“아니 가이드란 사람이 정말 너무 신경을 안 쓰는거 아니요? 양말 이라도 속옷 이라도 갈아 입을수 있게 해줘야 지. 이게 뭐야 지금?(반말을 하신다. 이젠 어색하지도 않다.)
참 억을하다. 이럴때가 제일 억을하다. 지금까지 여기저기 전화하고 계속 통화하고 그랬던 나는 갑자기 허무 해진다.
“선생님 죄송하지만 제가 신경을 안쓰다니요? 지금 계속 현지 사무실 하고 통화하면서 상황을 말씀 드리고 있는데 ,,제가 어떻게 할 수 도 없는 상황이라 는거 아시면서 그러시면 저도 힘이 빠집니다. 오늘 호텔가셔서 제가 옷 살만 한 곳을 찾아 볼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너무 노여워 마시구요. 저도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보시다시피 한국인 가인드가 없는 곳이 많아서 제가 혼자 이리뛰고 저리뛰고 하는데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도 서운합니다.”
많이 서운 했던지 나도 모르게 내 마음을 어필 하고 말았다.
그렇게 호텔에 도착하고 나니 다행이도 호텔 바로 옆에 쇼핑 몰처럼 보이는 건물이 있다.기회다. 얼른 저녁을 먹고 그 분을 모시고 옷을 사러 갔다. (솔직히 이 당시 나도 발칸 투어가 처음 이었기 때문에 긴장을 많이 하고 갔다. 다행 인 것은 보스니아 현지인들이 관광의 나라 답게 생각보다 영어를 하는 직원이 많았다. 문제는 현재 대부분 나라들이 쓰고 있는 유로를 사용하지 않는 나라 였기 때문에 어떻게 돈을 지불 할 것인지 확인을 할 필요가 있었다. 다행히도 1층에 환전소가 있어서 여유있게 환전을 하고 옷을 구입하러 갈수 있었다.) 갈아 입을 바지와 셔츠 속옷과 양말 이 정도면 충분 할 것 같아서 맘에 드는 옷을 고르 시라고 한 후 옷을 갈아입고 나오시는걸 봤는데…..
‘헉 이건 아니다. 정말 아니다.’
나는 당혹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번에 짐이 하나 안온 그 분의 연령은 60대 이상. 그러나 우리가 고르고 그 분께서 입어본 바지는 스키니 바지..
상상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내 앞에 펼쳐졌다. 나는 그때 알았다. 왜 나이 드신 분들이 스키니를 입지 않으시는지…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마치 성인이 유모차에 탄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웃으면 안되는데 계속 웃음이 나온다. 정말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티 안 낼려고 하는 것이 더 힘든 시간이었다. 내가 왜 그렇게 웃었 는지는 집에 60대 되시는 분들이 계신다면 스키니 바지를 입어 보라고 하시면 아마도 답이 나올 것이다. 긴장을 계속 하고 있어서 웃지 못했는데 오랜만에 이 모습보고 히죽히죽 계속 웃게 되었다.
얼른 다른 디자인을 골라서 적절하게 구입을 한 후 호텔로 이동을 하고 내일을 기다리기로 했다. 하지만 항공사가 정확히 전달 해야 하지만 통계적으로 우리의 국적기처럼 정확히 갔다주는 곳은 유럽에서는 드물었다. 그래도 내일이 되어야 알 수 있는 거니까 기다려 보기로 했다. 정말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일은 한국인 가이드 서비스가 있다는 것이다. (발칸 투어의 시작이 얼마 되지 않았고 한국인 교민이 많이 살고 있지 않으므로 대부분의 투어는 인솔자 위주로 투어가 진행이 되고 각 지역마다 로컬 가이드- 라이센스가 있는 가이드-와 함께 투어를 하는 편이다.보편적으로 한국인이 투어 진행을 하는 곳이 사라예보이다. 자그레브도 있지만 많지 않고)
그렇게 아침이 밝았다. 가이드님과 미팅을 하고 나는 서둘러 공항으로 이동을 했다. 그 분께는 꼭 찾아 오겠다는 말씀을 드린 후.. 워낙 느리다고 하는 유럽 사람들의 서비스 얼마나 걸릴지 모르니 서둘러야 했다. 영수증과 신분증을 들고 분실물 센터로 갔다. 그랬더니 똑 같은 말만 되풀이 한다. 9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랬다. 나도 한국인 이었다. 아직 시간이 20분이 남아 있는데도 그냥 무식하게 내몸을 공항 안으로 들이밀었던 것이다. 게다가 자꾸 재촉을 하니 짜증을 내기 시작한다.
그때였다. 항공기가 도착 했다는 사인이 뜨고 짐이 얼른 나와야 하는데 시간이 에메하다. 나는 평소에 급하게 움직이지 않는 편인데 이번엔 마음이 상당히 급하다. 시간을 맞추지 못하면 그 뒤에 남아 있는 스케줄이 모두 꼬인다. 게다가 나는 이 길이 초행이다. (손님들이 알면 경악을 하겠지만 여행사 사정상 가지도 않는 미 경험자들 한테 출장을 보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후에 가야하는 모스타르 에서는 현지인 가이드도 기다리고 있고 식당은 예약시간이 있다. 식당은 얼른 변경을 했고 현지인 가이드 에게는 연락을 취해놨다. 그렇지 않으면 유럽 사람들은 대꾸도 안하고 좀처럼 움직이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안에서는 왜 들어 왔냐는 것이다. 그랬다. 자기가 하는 일만 집중하는 스타일인 이 사람들은 그래서 멀티가 안된다고 동료들끼리는 말을 많이 한다. 밖에서는 들어가라고 하고 안으로 전달을 하지 않은 것이다. 안되도 너무 안된다. 어쩔수 없이 다시 나갔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당당하게 다시 들어 가란다.
‘뭐야~~~어쩌라고????’
그렇게 들어갔다, 나갔다를 무한 반복 했다. 세관 직원은 나를 미친놈 쳐다보듯 했다. 그러더니 다시 부른다.
“여기서 뭐합니까?”
“들어가라고 해서 들어 왔는데.”
“나가세요. 아무나 들어오면 안 됩니다.”
‘헐 뭐라는 거야 이게.’
이랬다 저랬다 미치겠다. 시간은 없고 마음은 급하고 그랬더니 밖에 있는 직원이 다시 뭐하냐고 묻는다.
“나가라고 해서요” 그랬더니 다시 얼른 들어가란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중얼중얼 갑자기 홍길동 생각이 났다. 들어가지도 못하고 나가지도 못하고 하는 나의 상황은 무엇인가?
‘미치겠네 지금 사람 가지고 노나’ 그래서 다시 들어왔다. 그러고 나니 당연히 안에 있는 직원이 또 쳐다본다.
“아니 도대체 왜 들어오는 거냐고”그런다.
“밖에서 들어가라고 그리고 나한테만 그러지 말고 밖에 직원이랑 얘기를 한 번 해요.” 했다. 그랬더니 이제서야 나간다. 그렇게 또 시간이 흐르고 다시 오더니 나보고 또 나가란다. 그렇게 나가서 다시 밖에 직원을 만나고 또 한참 그러더니 마침내 손님 가방을 가지고 나온다.
그렇게 여러 번 이상을 반복하던 중에 다행히도 손님의 가방과 만날 수 있었고 가방을 손에 쥘수 있었다. 그래도 고생은 했지만 시간에 맞추어 출발할 수 있었다. 더더욱 다행인 것은 본인이 아님에도 가방을 줬다는 것이다. 웬만한 다른 나라는 본인이 아니면 가방을 절대 주지 않기 때문이다.
‘괜히 개고생했네’
그래도 가방과 함께라 기분은 좋았다.
<이 유실물 센터를 얼마나 많이 쳐다 보며 왔다 갔다를 했는지 참…>
여행쟁이의 팁 : 짐 운송하는 과정도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사람이 하는 일이다 그렇다 보니 짐이 안 오는 경우가 가끔 있다. 너무 화를 내거나 할 필요 없고 차분히 기다리다 보면 인솔자나 담당 직원들이 찾을 수 있도록 도와 드릴 것이다. 분실 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는 것이 답이다. 괜히 오버해서 정신 적인 피해 보상이나 이해 불가능한 기대 이상의 보상을 원한다면 여행 초짜라는 낙인이 찍힐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