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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일 Feb 18. 2019

의외의 선물

친구가 성경책을 주며 하는 말이

“자. 이거 선물이야.”


“책이잖아? 뭐야. 성경이네?”


“응. 너 교회 안 다니는 거 잘 알지만, 왠지 선물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고. 몇 권 샀는데 한 권은 네 거야.”


“고맙긴 한데 갑자기 왜?”


“그냥 좋은 책 선물이라고 생각해줘. 간지럽지만 소중한 사람들한테 주고 싶은 가치 있는 선물이랄까... 뭐 그랬어.”


“그렇게 생각해주면 나야 좋지. 근데 어떤 부분이 좋았던 거야? 이거 두꺼워서 다 읽겠냐?”


“너 영화 보는 거 좋아하지?”


“당연하지.”


“그냥 천천히 내 얘기 들어 봐. 영화를 많이 본 평론가들의 말을 빌리면...”


“갑자기 왜? 꼼짝 못 하고 들어야겠네.”


“하하. 영화 평론가들의 말을 빌리자면, 인상 깊은 예술 영화는 작품으로서 가치를 인정받기 위한 두 가지 조건이 있대. 절대적인 건 아니고 어떤 평론가가 나름대로 이야기한 거야. 하나는 영화가 영상이라는 기법을 사용하기 때문에, 촬영이나 편집 등에서 창의적이고 미학적인 성과를 이뤄야 한다는 거야. 둘째는 인간으로서 숨기고 싶어 하는 치부를 드러내야 한다는 거지. 이 두 가지는 좋은 예술 영화의 외적인 것과 내적인 조건이라고 할 수 있는 것 같아. 몇 가지 더 있겠지만 가장 큰 두 줄기라고 해두지.”


“응 알겠어. 근데 성경책 얘기하다가 영화 얘기는 왜 나온 거야?”


“네가 영화를 좋아하니까. 이렇게 설명하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거든. 성경이 영화는 아니지만 많은 문학을 비롯한 각종 미술과 영화에 많은 영감을 준 건 알고 있을 거야. 그래서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너한테 설명해보려는 거지. 종교적인 깊이는 천천히 다루더라도 말이야.”


“그 정도야? 나는 성경이 그저 교회에서 어떻게 행동해라 정도의 책인 줄 알았는데?”


“읽어보면 알겠지만, 시각적인 상상을 일으키는 극적인 부분이 많아. 최초의 벌거벗은 두 남녀가 죄를 짓고 낙원에서 쫓겨났다... 상당히 자극적인 소재 아니냐? 다음 내용도 궁금해지고 말이야. 엄청난 홍수로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데, 선택받은 자는 거대한 방주를 만들어 온갖 동물들과 함께 살아남는다거나 홍해 바다가 갈라졌다거나 거인을 이긴 평범한 소년, 고래 뱃속에 들어갔다 온 사람, 이집트에 닥친 열 가지 재앙 등 아주 많지. 아주 스.펙.타.클 하다니까? 하하”


“그래? 네가 말했던 첫 번째 조건은 부합하는 셈인 것 같아 보이네.”


“맞아. 그런 시각적인 재미가 있는 책이야. 사람들의 흥미를 끄는 각종 범죄 이야기나 영웅 탄생과 몰락 같은 서사도 많고. 그래서 일단 가치 있는 작품의 조건에 한 가지 부합한다는 생각을 해봤어.”


“야... 준비 철저한데?”


“너한테 얘기하면 좋을 것 같아서 생각해본 건데, 계속 떠올리다 보니까 오히려 나에게 더 도움이 되고, 정리된 부분이기도 해.”


“알겠어. 그럼 두 번째는?”



“인간의 치부를 드러낸다는 점인데, 그냥 드러내는 게 아니라 어떻게 ‘가치 있게’ 사용되었느냐도 중요한 것 같아. 성경에서는 내가 생각할 때 거의 절반? 아니, 거의 3분의 2 정도는 인간의 죄에 관해서 얘기하고 있는 것 같아. ‘죄짓지 마라’, ‘나쁘다’ 이게 아니라, 막장 드라마처럼 죄짓고 용서받았는데 또 죄짓는 인류의 역사가 골치 아프게 반복돼. 원죄 혹은 죄성이라고 하지. 인간의 본성이 죄를 향해있다는 거야.”


“성악설이야? 그럼 착하게 태어난 사람은 없다는 입장?”


“에덴동산이라는 낙원에서 추방당한 최초의 남녀 때문인진 몰라도 인간은 죄와 떨어질 수 없는 몸인 거야. 성경의 관점은 그런 것 같아. 아무튼 범죄라고 해도 절도나 사기 같은 것부터 치정사건이나 성범죄, 패륜 등 현시점에 다뤄지는 죄들과 하나도 다를 바 없는 이야기들이 정말 많아.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은 달라진 게 없다니까?”


“그래. 두 번째 조건에도 부합한다는 건 잘 알겠어. 그런데 내가 종교적인 책이라는 걸 알고도 거부감 없이 읽을 수 있을까? 네가 주는 선물이니까 지금 듣고 있는 거지, 아마 다른 사람이 줬으면 받지도 않았을걸?”


“응. 그래서 작품으로서의 성경을 얘기하고 싶었던 거기도 해. 앞에 말했던 ‘죄에 대한 이야기 분량’이 많은 이유가 ‘예수님’ 때문이라고 생각하거든. 가장 핵심이 그거야. 그런데 그게 문학적인 구성면에서 생각해도 굉장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클라이맥스에 등장한다는 얘기야? 예수라는 분이 무슨 죄의 핵심이야?”


“아니 그게 아니라, 오히려 죄가 없는 유일한 분이었지. 근데 모든 죄를 짊어진 존재가 된 거야. 가장 극적인 부분이야.”


“야. 스포일러냐? 결말 유출 뭐냐고. 하하”


“그렇게 되나? 2000년 된 스포일러야. 이해해줘. 과거에 동물의 피로 드렸던 제사를 대신해서 예수님이 상징적으로 돌아가신 거지. 그 후로 많은 것들이 달라졌어. 종교가 없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인생의 개념과는 달라서 받아들이기가 힘들 수도 있는 부분이야. 세상을 다른 시각으로 봐야 하거든. 네가 부담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은 많은 사람이 기대는 어떤 ‘절대자’라는 개념으로 봤을 때, 이럴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면서 읽어봐. 너도 뭔가 창작하는 사람으로서 그런 대중들이 느끼는 것에 대해 경험해볼 필요는 있잖아?”


“내가 부담 느끼는 것 같아서 그런가? 갑자기 말이 많아지네?”


“음... 더 얘기하자면, 일단 내가 가져온 성경책은 요즘 말투로 다시 번역된 버전이라 소설책 읽듯이 읽을 수 있을 거야. 예전 버전은 특유의 말투 때문에 진입장벽이랄까? 그런 게 좀 있었거든.”


“오. 세심하군?”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 더 얘기하자면, 기억에 남는 가치 있는 작품들이 그런 작품으로 남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하거든. 고유의 ‘독창성(오리지널리티)’을 갖기 위해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전파되고 그런 숙성의 과정이 필요한 거지. 그런 관점에서 성경책은 정말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의 입과 머리에 오르내린 ‘대작’인 거지.”


“알겠어. 네가 나한테 성경을 세일즈 하는 건 여기까지 해도 될 것 같다. 하하”


“네가 이걸 나랑 같이 읽으면서 할 얘기가 진짜 많아질 것 같다. 기대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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