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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일 Mar 07. 2019

싸게 나온 그림을 샀다

가치 평가의 어려움과 만족

“못 보던 그림이네? 선물 받은 거야?”


“아니야. 내가 샀어.”


“크기가 커서 그런가? 뭔가 분위기 있는데?”


“유명한 작가 작품은 아니지만, 오래된 그림이라서 그럴지도 몰라.”


“가격이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 큰 결정 했네?”


“아니야. 생각보다 그렇게 비싸지 않았어. 내가 말했잖아 유명한 작가 작품 아니라고.”


“그래도 미술품 하면 비쌀 거라는 생각이 드니까 그렇지.”


“그건 유명한 작품들이고. 요즘엔 나 같은 사람들이 구하기 쉬운…. 도태된? 그런 현대 미술 작품들이 많더라고.”


“도태됐다고?”


“너한테 바로 설명하려니까 그 단어가 떠오르네. 도태됐다기 보다는 시대의 선택을 못 받았다고 해야 하나?”


“무슨 말이야 그게?”


“이 그림은 40년 정도 된 거야. 작가님도 돌아가셨지.”


“그러면 오히려 더 비싸져야 하는 거 아니야?”


“그게 말이야. 작가님은 뭔가 크게 이룬 게 없는 분이셨어. 안타깝긴 하지만 그렇게밖에 설명이 안 된다. 뭔가 뚜렷한 화풍도 없으셨대. 이런저런 그림을 많이 그리셨는데, 그려 놓은 작품들을 나중에 보니까 뭔가 카피한 듯한 느낌이 있었다 하더라고. 진실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활동 당시에 투자한다는 느낌으로 그분 미술품을 샀던 컬렉터들이 있었는데, 작가님이 돌아가신 후에도 미술계에서 크게 평가되지 못하니까 다들 작품을 처분하기 시작한 거야.”


“뭔가 안타깝네. 그걸 산 게 너고?”


“맞아. 우연한 기회로 사게 됐지만 나는 만족해. 주류가 아니었던 작가의 그림이지만 나름의 스토리도 있잖아? 좀 쓸쓸하고 그런….”



“하여튼 포장은 잘한다니까? 아무튼, 저 그림을 걸어 놓고 ‘좀 더 기억에 남을 만한 일을 해야겠구나’ 하고 다짐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밥상 위에 매달린 굴비처럼?”


“아무렴 어때, 내 마음에 드는데. 그리고 조각 작품도 옥션에 많이 나왔더라. 너도 미술품 소장하고 싶으면 알아봐.”


“조각? 그것도 시대의 선택을 못 받은 현대 작품들을 말하는 건가?”


“맞아. 그런데 낮은 가격에 판매하게 된 이유가 있더라고. 아직 현대 미술은 평가받기에 충분한 시간이 흐르지 않았지. 게다가 작품을 평가했던 기관들에 비리가 많아서, 제대로 가치가 매겨졌는지도 의문이라는 거야. 만들어진 재료들의 짧은 내구성이나 전시 자체의 난해함 때문에 보관상 어려움도 많다고 하더라. 그래서 지역 미술관 소장품이 매물로 자주 올라온대. 정말 아니다 싶은 것들은 폐기되기도 하고.”


“그 작가님들은 아직 살아계실 것 아니야?”


“대부분 미술계에 끈만 걸치고 있는 분들이 많대. 젊어서는 활동했지만 대중에게 각인된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야지. 지금은 다른 일 하시는 분들도 많고.”


“아니, 미술이라고 하면 뭔가 좀 순수하고 열정적이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이건 인테리어 장식이나 공예품 정도의 느낌이잖아?”


“그 중간쯤이 될 수도 있는데, 인정받지 못한 작가들의 작품을 구매함으로써 나는 그것을 나만의 작품으로 인정한 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뭐, 처음부터 인정받는 유명한 작품들도 많겠지. 단지 예전이든 지금이든 주류에 가려진 비주류가 있을 뿐이라고 생각해.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살아남은 명작들만 기억하잖아.”


“시간이 지날수록 명작들이 쌓이고, 그것만 골라 보기에도 시간은 부족하니까. 하긴. 네 얘기 듣고 보니 영화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영화제에서 상 받고 떠들썩하게 홍보했던 영화도 몇 년 지나면 잊히는 경우가 많으니까. 영화제에서 서로를 칭송하는 그들만의 잔치 같기도 하고, 대중성과 예술성을 다 잡는다는 게 쉽지는 않겠지만….”


“사람들은 어떤 작품을 보면서 ‘이건 알려지지 않은 명작이 분명해’라고 하지만, 요즘은 콘텐츠 과잉의 시대 아니냐. 결국 살아남는 건 비즈니스를 어떻게 하느냐가 큰 몫인 것 같아.”


“결국은 다 통하는 시장이라는 건가?”


“맞아. 나는 가끔 앤디 워홀이나 제프 쿤스, 데미안 허스트 같은 사람들이 기가 막힌 장사꾼들이라고 생각해. 하지만 그 자체가 예술성과 대중성 그리고 상업성의 경계를 조롱하는 예술이기도 한 거지.”


“아니. 여기 그림 하나 걸어 놓고 그런 생각을 한단 말이야? 돌아가신 작가님이 흐뭇해하시겠는걸?”


“세상에 영원한 건 몇 개 없지만, 그걸 보는 눈이 없어서 다들 엉뚱한 것에 정성을 들이고 있어.”


“이건 세상 사람들이 가치 없다고 싸게 내놓은 그림이잖아? 그걸 좋다고 산 사람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그건 나중에 보면 알겠지.”



(창작 글입니다.)

BGM♪ Paramore ‘Rose-Colored 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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