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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일 Mar 18. 2019

인류의 조상은 지성인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

인간다움의 정의는 계속 변하고 있는지도

“동물원 진짜 오랜만이다. 학교에서 소풍 온 것 같고 좋은데?”


“날이 풀리면 한번 와보고 싶었어. 괜찮은 선택이지?”


“응. 평소에 볼 수 없는 동물들을 본다는 사실만으로 설레기는 해. 그런데 요즘 사람들이 생각하는 동물 복지 같은 문제들 때문에 동물원이라는 공간이 조금 부정적인 느낌으로 변해버렸잖아? 그냥 마음 한쪽에 아주 조금 불편함이 있기도 해.”


“야. 그런 말 하니까 여기 오자고 한 내가 뻘쭘하잖아. 요즘 동물원에는 야생에서 포획해온 개체는 없다고. 그나마 위로가 되려나?”


“그래. 그렇다면 뭐.”


“「파이 이야기」라는 소설 읽었지? 거기서 그러잖아. 과연 야생에 있는 동물들은 행복할까? 맹수들의 공격이 걱정돼서 잠들기 두렵고, 하루하루 불편한 생존을 이어가는 삶이 말이야. 인간의 시각으로 동물을 바라보니까 여러 가지 의견이 나오는 걸 텐데, 동물원의 존폐 한쪽에 편을 들고 싶지는 않아. 정답을 쉽게 내리긴 힘든 문제지. 시대가 변한 만큼 많은 사람이 고민 중인 문제니까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할 거라고 생각해.”


“알았어. 고민하려고 온 게 아니니까. 일단 둘러보기나 하자.”


“그래. 이쪽부터는 원숭이, 침팬지, 오랑우탄 같은 애들이 있는 모양인데?”


“나 침팬지, 고릴라 이런 종류 엄청나게 좋아해. 사람이랑 닮은 것도 신기하고, 뭔가 듬직하고 하는 짓도 똑똑하잖아. 영화에서 멋있게 나오기도 하고.”


“네가 그런 얘기하니까. 똑똑한 애들이 갇혀있어서 얼마나 우울할까 하는 생각이 드는걸?”


“그만하자.”


“농담이야. 일단 좀 더 걸어보자.”


“갑자기 든 궁금증인데, 인간도 예전에는 지금과는 좀 다른 모습이었다고들 하잖아? 유인원?”


“얘들이 유인원이야. 꼬리가 없는 원숭이 종류 말이야. 얘들은 인간하고 유전자가 거의 비슷하대. 네가 말하는 건 인류의 조상? 오스트랄로 피테쿠스나 네안데르탈인 같은데?”


“아, 그렇구나. 그런데 내가 궁금한 건 이거야. 영화 같은 데서 인간의 조상을 털 많고 괴팍하고 무식하게 그려놓았잖아?”


“석기시대라고 간단한 도구 정도만 썼다고 알고 있으니까.”


“그런데 인간은 그때나 지금이나, 감정이라든가 생각하는 방식만큼은 같은 게 아닐까? 단지 기록이 없어서 사람들이 야만스러울 거라고 상상하는 건 아닐까 싶어서.”


“그래? 네가 말하니까 나도 궁금하긴 하다.”


“말하다 보니까 이건 인간만이 가진 언어나 문자 기록이라든지 사회적인 규칙, 문화 예술의 대물림 같은 것들을 빼놓을 수 없는 문제긴 하네.”


“바람 좀 쐬려고 했는데, 누가 호기심 대장 아니랄까 봐.”


“생각해봐. 유인원을 야만적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현재까지 누적된 ‘인간을 인간답게’ 표현해준다는 다양한 문화, 예술, 사회적 규범과 가치관 같은 것들이 그 당시에는 전무했을 거라고 추정했기 때문인 거지. 기록만 없다 뿐이지 인류의 조상들도 지성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봤어. 그럴듯하지 않냐?”


“그럴지도 모르지. 그런데 문명과 고립되어있는 소수 민족만 봐도 그 집단끼리는 뭔가 작은 문화를 공유하고 있지만, 외부 문명과 비교해보면 상당히 이질적이잖아. 하물며 몇만 년 전 과거의 인간과는 다를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아주 단순한 소통과 간단한 도구의 사용만 했을 거야. 먹고사는 문제가 치열해서 철학이나 예술에 집중할 시간도 없었을 것 같기도 하고.”


“그래. 몇만 년에 걸쳐서 조금씩 쌓여온 게 문명이겠지. 현시점에서 사람들이 말하는 ‘인간다운’ 모습이라는 건, 아무래도 후천적으로 배워야만 가능한 부분인 것 같기는 하다. 그 학습 과정이 자연스럽게 이뤄지니까 선천적인 것인지 후천적인 것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겠지만. 그러면 갓 태어났을 때의 사람은 그저 다른 동물들과 차이가 없다는 얘긴가? 인간으로서 특별하지 않다는 말이라면 뭔가 서운한데? 시대가 변하면 ‘인간답다’라는 말의 의미도 달라진다는 얘기가 될 테고.”


“복잡하니까 천천히 얘기해보자. 아무튼, 나는 인간이든 무엇이든 여러 가지 복잡하고 알 수 없는 자연현상들을 보면서, 세상이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졌을 것 같다는 상상도 해보긴 해. 그런데 인간이 만들어진 거라면 그 때나 지금이나 인간의 모습이 같아야겠지만, 아직까지 발견된 자료들을 보면 과거의 인류는 육체적으로 뇌의 용량이라든가 남겨놓은 생활의 흔적들이 지금만 못한 게 사실이야. 다른 한편으로는 가까운 과거의 사람들이나 현대의 인류나 범죄를 저지르거나 철학적으로 상상하는 부분은 또 비슷하기도 해. 이런 것들을 계속 생각하면 역시나 맞다 틀리다라든가 수치화할 수 없는 문제잖아. 학자들이 여러 가지 가설로 상상해 보면서 증거를 찾는 거지. ‘인간답다’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한 것도 여전히 그 과정에 놓여있는 것이니까, 당연히 그 의미가 계속 변할 수밖에 없는 게 아닐까?”


“그럴듯한 대답인데? ‘인간답다’라는 것의 의미를 아직도 찾는 중이라니. 대자연에 숨겨진 보물찾기를 전 인류를 대상으로 하고 있는 기분인데?”


“나는 과학자가 아니잖아. 그냥 떠올라서 말한 것뿐인데 큰 의미 부여하지 말라고. 옛날 인류가 몸도 작고 뇌도 작다는 그런 건 너도 알잖아.”


“엉뚱한 상상이긴 하지. 그런데 뇌 얘기가 나오니까 더 복잡해진다. 얼마 전에 기사를 읽다 보니까 사고 때문에 뇌의 많은 부분을 제거해야 했던 사람이, 우려했던 것보다 아주 멀쩡하게 생활했다는 거야. 그래서 뇌의 크기나 연구했던 부분에 혼란을 가져왔다는 거지. 아주 특이한 경우겠지만 이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유전자의 차이라든가 그런 것들이 별 의미가 없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


“우리는 동물원에 와서도 이런 얘길 하는구나. 뭐, 내가 시작했지만.”


“네 말대로 인류의 조상이 지성인이었고, 많은 이야기를 어딘가에 남겨둔 거였다면 좋겠다. 그걸 발견하는 날 많은 것들이 뒤집어지겠지?”




(창작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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