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망은 병처럼 자란다

by 창일

가을이 사라졌다—

아무 예고도 없이

전기 장판의 온기가

나의 유년을 덮는다


플라타너스 껍질

색과 결이 흐르는 수채화의 잔상

노랑, 연두, 갈색, 붉음—

그 냄새 속엔 조용한 위안이 있었다


기억은 눅눅하고 차다—

비가 잠시 쉬어가는 날들처럼

봄과 가을은 짧아졌다

그래서 더 오래 그립다


너무 많은 길에

한 발씩만 올려둔 채

열망은 병처럼 자란다


유년의 욕심

성인의 부끄러움

모두 펜 끝에서 맴돈다

월든의 물결처럼 고요히

Into the Wild의 불꽃처럼 잠시

그래도 해내고 싶다


새벽의 촬영지

차가운 카메라 위로

내 손의 열이 번진다

누군가의 눈빛을 맞추며

나를 설득하던 시간


결과는 잊히고

기억만 남았다

남의 일을 위해 만든 영상들이

나를 가르쳤다


나는 부끄럽다

그래도 말해야 한다

그때 깨달았다

이젠 그냥 즐겁다


내 인생엔 거대한 드라마는 없다

그저 꾸준히

내가 본 세상을 전하고 싶은 욕심

그게 전부다


인간은 연결을 원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부끄러움을 조금 가진


매거진의 이전글없던 추억을 만드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