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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cm Feb 09. 2020

<B급 기자 막전막후> 패션 전문지

 창민씨는 일이 안 힘들어요? 어떻게 항상 그렇게 즐거워 보이죠?


전문지 기자가 됐다. 전문지란 특정한 전문 분야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잡지다.


앞서 진로 전문 월간지에서 일을 그만둔 뒤 또다시 일할만한 곳을 찾아 헤맸다. 그러다 섬유-패션 쪽에 전문지가 많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인턴이나 채용공고가 거의 없었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전문지 5~6곳에 자기소개서를 뿌렸다. 해당 전문지의 회사 메일이나 기자 개인 메일로 보냈다. 연락이 올 거라는 기대는 없었다.


한 달 정도 지났을까. TIN뉴스라는 섬유-패션 전문지에서 전화가 왔다. “뒤늦게 보낸 자기소개서를 이제 봤다. 마침 사람이 필요했는데, 면접 보러 올 수 있느냐”라고 물었다. 내가 이 곳에 메일을 보냈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버선발로 면접을 보러 갔다.


TIN뉴스 사무실은 서울 종로구 부암동이다. 사장님을 포함해 직원 총 4명인 작은 회사였다. 역사가 짧지는 않았다. 1997년에 창간해 섬유-패션 업계에서는 나름 잔뼈가 굵은 전문지였다. 일주일에 한 번씩 신문을 발간하는 주간신문이다. 전공을 살리면서 글까지 쓸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었다. 내가 바로 찾던 곳이다. 면접을 보고 이 회사에서 꼭 일하고 싶었다. 다행히 바람이 이루어졌다


보도자료 기사였긴 했지만, 처음으로 내 바이라인이 달린 지면 기사였다. 

사실상 취직을 했다. 인턴기자가 됐다. 주 5일 출근하는 조건으로 80만원의 월급을 받았다. 또 일을 잘하면 3개월 뒤 정규직으로 채용하겠다고 사장님이 약속까지 했다. 당시 대기업 취직한 것처럼 기뻤다. 무급으로 일을 할 줄 알았는데, 월급을 받게 됐다.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허드렛일이나 할 줄 알았는데, 내가 직접 취재하고 기사를 작성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얼마 뒤 회사와 멀지 않은 곳에 이사했다. 걸어서 30분 정도 거리다. 당시 작은아버지 집에 얹혀살고 있었다. 있는 돈 없는 돈 탈탈 털어 서대문구 홍은동 달동네에 옥탑방을 구했다. 보증금 500에 월세 23만원 짜리 방이었다. 내가 혼자 살기 시작한 건 이때부터다.


회사와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한 건 일에 집중하고 싶어서였다. 학교도 내 수업을 빼줬다. 패션전문지에 인턴기자로 취업을 했다고 하니깐, 학교에서는 좋아했다. 과제만 잘 제출하라고 하더라. 그때부터 나는 학교 대신 회사로 출근했다. 


3개월 뒤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처음으로 근로계약서에 사인도 했다. 월급도 80만원에서 120만원으로 올랐다. 물론 세전이다.


하루하루가 그저 행복했다. 나는 주로 패션쇼를 보러 다니거나, 패션디자이너를 인터뷰했다. 전공을 살리면서 글도 쓸 수 있어서 좋았다. 어느 날 함께 일했던 형이 나에게 물었다. “창민씨는 일이 안 힘들어요? 어떻게 항상 그렇게 즐거워 보이죠?” 


이 말을 듣 스스로가 정말 재밌게 일한다는 걸 알았다. 매일 밤늦게 퇴근했지만, 전혀 힘들지 않았다. 가끔 새벽이 넘도록 글을 쓰고 퇴근했지만, 일을 마치고 집에 걸어가는 길은 충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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