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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cm Feb 10. 2020

<B급 기자 막전막후> 첫 경험

 “그 기사 당장 안 내리면 고소할 줄 알아! 알았어!?!?”


2013년 10월 즈음 인터뷰를 마치고 광화문을 지나 회사로 복귀하던 중이었다. 광화문에 큰 집회가 열렸다. 아스팔트 바닥에 앉아 노트북을 두들기고 있는 기자들이 눈에 띄었다. 취재수첩을 들고 무언가를 열심히 받아 적기도 했다. 상황이 긴박하고, 치열해 보였다. 나와 전혀 다른 세계에 있는 기자들이었다. 저기 있는 기자들이 어떤 기자들인지 궁금했다. 사회부 기자였다.

‘기자란 무엇일까?’ 수개월 전 기자가 됐지만, 이 직업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없었다. 기자라는 직업은 나한테 그저 재밌는 일이었다. 기자라는 명함이 좋았다. 나이가 어렸지만, 기자라는 이유로 어딜 가든 대우를 받았다. 보도자료를 올려주고, 패션디자이너를 인터뷰하는 게 기자 생활 전부였다.


기자에 대해 알면 알수록 나는 이 직업과 거리감이 있는 사람이었다. 진정한 기자의 역할을 비춰봤을 때 자신을 기자라고 할 수 없었다. ‘기자님’이라는 호칭이 거북스러워졌다.  지금 내가 하는 취재 방식에 회의감도 들었다.


기자란 독자들의 알 권리를 충족해야 하며, 약자를 대변한다고 했다. 기자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했던 나는 이게 이 직업의 전부라고 믿었다. 이런 역할에 가장 부합하는 게 사회부 기자라고 생각했다.


이때부터 사회부 기자처럼 행동했다. 아니, 흉내를 냈다. 당시 사회부 기자가 어떤 건지 구체적으로 알지도 못했다. 그저 약자를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쓰는 게 사회부 기자들이 하는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사회문제와 시사에도 점차 관심이 생겼다. 알면 알수록 패션업계에 회의감이 들었다. 특히 패션디자이너들에게 말이다. 겉은 고상하고, 여유로워 보이지만 속은 얼마나 얄팍하고, 궁박한지. 밖에서 선생님 소릴 들으며 존경을 받지만, 자신의 사무실 직원들에게는 그런 악덕업주도 없다. 패션디자이너들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이게 패션업계의 고질적인 병폐인 노동착취다.


사회부 기자들처럼 기사를 쓰고 싶었다. 처음에는 막막했다.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취재할지 몰랐다. 다만 패션도 사람이 하는 건 만큼 사회적인 문제가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패션업계의 노동문제를 지적하는 ‘갑과 을로 얼룩진 한국 디자이너의 현실’, 동대문 원단시장의 지게꾼을 다룬 ‘길 막는 지게꾼 때문에 불편하신가요?’, 신진디자이너와 유통업체의 갑을관계를 취재한 '신진디자이너와 에이랜드 애증의 러브스토리' 등의 기사가 그렇게 쓰였다.


패션계 관계자보다 제보자 혹은 현장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더 많아졌다. 보도자료 기사를 쓰는 것보다 증거자료를 모으는데, 더 시간을 쏟았다. 전문지 기자답지 않게 사회성 기사를 썼다. 이 과정 패션업계를 나만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됐다.

전문지 기자 시절 최초로 쓴 의혹기사다.

패션전문지 기자로서 가장 애착 가는 기사가 있다. 이 기사는 나의 첫 경험이나 마찬가지다. 기자로서 최초로 쓴 의혹 보도였다. 이 기사로 난생처음 취재원에게 협박과 회유를  받았다. 기자로서 처음 준사법기관인 언론중재위원회에도 제소됐다.  

‘비싼 입학금과 학비만 받으면 끝? 입학생이 봉인가’라는 제목의 기사다. 패션직업전문학교가 학점은행제를 악용해 입학생들을 무리하게 모으고 있다는 게 기사의 핵심 내용이다.

 

특히 K패션직업전문학교는 학점은행제 과목 부족으로 학위 취득이 불가능했지만, 입학생들에게 마치 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 것처럼 홍보했다. 이런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일부 재학생은 자퇴했다. 혹은 울며 겨자 먹기로 학비 외 별도의 돈을 들여 학점은행제 수업을 이수해야지 학위 취득이 가능한 실정이었다.

 

기사가 나간 뒤 K패션직업전문학교가 발칵 뒤집어졌다. 학교 입학처에 재학생들의 항의가 쏟아졌다. 나에게 직접 전화해 기사의 진위여부를 확인하는 재학생도 많았다. 이외 패션직업전문학교 관계자, 패션직업전문학교 진학을 고려하고 있는 고등학생들에게 문의 전화가 왔다.


난생처음 협박과 회유라는 걸 받았다. 협박이 먼저 들어왔다. K패션직업전문학교 관계자는 “그 기사 당장 안 내리면 고소할 줄 알아! 알았어!?!?”라고 으름장을 놨다. 처음 받아본 협박 전화에 당황스러웠지만, 내 기사에 자신이 있었다. 고소하라고 맞받아쳤다.


회유도 들어왔다. 으름장을 놓은 뒤 K패션직업전문학교 이 관계자는 “원하는 게 무엇이냐. 말을 해야 알죠”라고 말했다.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내가 원하면 ‘무엇이든 해주겠다’는 뉘앙스였다. 바라는 게 없다고 정중히 거절했다.


K패션직업전문학교는 나를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했다. 언론중재위원회는 언론매체의 사실적 주장으로 피해를 입은 자들의 반론보도, 정정보도, 추후보도 및 손해배상 청구에 관한 사건을 접수하여 조정·중재하는 준사법기관이다. K패션직업전문학교는 기사 삭제 및 정정보도를 요구하며, 언중위에 내 기사를 걸고넘어졌다. TIN뉴스 창간 15년 만에 처음으로 언중위에 제소된 기자가 됐다.


언중위에서 공문이 왔다. K패션직업전문학교의 입장문이었다. 내 기사가 허위라는 거였다. K패션직업전문학교 측의 입장문을 읽으며, 헛웃음이 나왔다. 자기 무덤을 스스로 파는 것처럼 주장이 허술하고 궁색했다. K패션직업전문학교 주장을 반박할 수 있는 증거는 차고 넘쳤다.


▲국가평생교육진흥원 인가과목 개설현황 ▲학교별 인가과목 현황 및 학위 취득 요건 비교 ▲추가 수강으로 인한 추가부담금액 계산 예 ▲불확실한 입학정보 제공과 과대선전 등 ▲교육과학기술부 공문/ 표시 광고의 공정에 관한 협조 공문 ▲등록금 이외의 추가 비용 발생 사례 등 6개의 증거자료를 첨부해 답변서를 제출했다.

 

언중위는 사실상 내 기사에 손을 들어줬다. K패션직업전문학교 정정보도 청구가 기각된 것이다. 대신 K패션직업전문학교 측의 반론을 추가로 보도하라고 권고했다. 말도 안 되는 반론을 실어야 한다는 게 분했지만, 회사는 송사를 길게 끌고 갈 수 없었다.


언론중재위원회 결정문


TIN뉴스와 K패션직업전문학교는 반론기사를 실어주는 조건으로 합의했다. 적어도 내 기사가 잘못되지 않았다는 걸 위안 삼았다. 이후에도 취재를 멈추지 않았다. 학점은행제를 관리하는 국가평생교육진흥원에 찾아가 제도실장까지 만나 인터뷰했다. 결국 K패션직업전문학교는 국가평생교육진흥원으로부터 기관 경고를 받았다.


고백하자면 이 기사는 개인적인 경험과 감정이 실려 있다. 패션직업전문학교의 한 학기 등록금은 300만원이 훌쩍 넘는다. 4년제 사립 대학교만큼 비싸다. 나 역시 패션직업전문학교를 다니면서 학비 외 교양과목 수강료와 학점인정 수수료 등 예상치 못한 추가 비용이 많이 들었다.


입학 전 학교 측으로부터 이런 사실을 듣지 못했다. 그런데 학점을 따려면 꼭 해야 한다고 하더라. 어쩔 수 없이 매 학기 학비 외 50~60만원의 추가 비용을 지불했다. 처음 입학해 부모님께 “추가 수강료를 내야 한다”라고 말했을 때 그 비참함을 잊을 수 없다. 고작 직업전문학교를 다니는데, 이렇게 부모님 등골을 빼야 하나라는 죄책감이 들었다.


패션직업전문학교 학생 중에서는 지방에서 올라온 친구들이 많다. 대체로 대학을 가지 못함에 대한 열등감이 깔려 있다. 이들에게 이 학교는 최선이 아닌 차선이다. 직업전문학교를 택한 건 학점은행제와 연계해 2~3년제 학위를 취득할 수 있어서다. 보통 학교 졸업 후 편입을 한다. 나름 이런 계획을 세우고 입학했는데, 해당 학교에서는 애초 학점은행제 인가 과목이 적어 구조적으로 학위 취득이 어려운 실정이다. 내가 봤을 때 이거는 입학 사기나 다름없었다.


내가 이 기사를 쓸 수 있었던 건 그 구조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었던 경험자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분노했고, 악착같이 취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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