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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cm Feb 12. 2020

<B급 기자 막전막후> 되다와 하다

기자가 되고 싶었던 걸까. 하고 싶었던 걸까.


2014년 3월 TIN뉴스를 퇴사했다. 일한 지 10개월 만이었다. 사회부 기자가 되고 싶었다. 패션보다 사회성 기사거리를 취재하는 게 훨씬 즐거웠다. 전문지 기자로 사회 기사를 쓰기는 건 한계가 있었다. 패션이라는 울타리도 좁게 느껴졌다. 기자라는 직업을 제대로 느끼고 싶었다.


막막했다. 기자가 되려면 무엇이 필요하고,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인터넷으로 ‘기자 되는 법’ 등을 검색했지만, 정보가 많이 없었다. 확실한  기자가 되려면 4년제 대학을 나와야 했다. 대부분 언론사가 기자 지원자격 조건에 4년제 대학 졸업장을 필수로 내 걸었다. 대학 졸업장이 없던 나는 언론사 기자 채용 공고에 지원조차도 할 수 없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다. 4년제 대학을 나오지 못하면 기자가 될 수 없다니. 다시 대학을 가야 하나. 편입 1년, 대학 졸업 2년. 기자로서 자격조건을 갖추는데 최소 3년이 걸린다. 이것도 가정이다. 편입에 실패할 경우 더 길어질지도 모른다.

  

다시 대학을 준비하는 건 재수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불확실한 보상을 바라며, 책상 앞에 앉아 있을 인내심은 나에게 없다. 무엇보다 내가 명문대로 편입할 자신이 없었다.


괴리감이 컸다. 대학을 가는 게 기자가 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대부분 지인은 "편입이든 수능이든 공부해서 다시 대학을 가라"라고 충고했다. "대학 안 나온 기자가 어딨냐"라는 지적도 덧붙였다. 맞는 말이었지만, 편입이나 수능 공부를 하는 건 죽을 만큼 싫었다. 시험 없이 입학할 수 있는 해외 유학을 알아봤다. 돈이 없어서 접었다. 기자가 될 수 있는 뾰족한 수가 없었다. 고뇌에 찬 나날을 보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2014년 3월30일 찍었던 사진들. 출발점이 기억나진 않지만, 이날 생각이 많아 하루종일 걸었다. 한겨레 사옥도 지나쳤다. 고백하자면 나는 한겨레 기자가 되고 싶었다.
기자가 ‘되고 싶은’ 걸까, 기자를 ‘하고 싶은’ 걸까. ‘되다’와 ‘하다’는 다른 의미다. 무엇인가 ‘되고 싶다’라는 건 그 지위 혹은 직업을 갖고 싶다는 걸 뜻한다. ‘하고 싶다’는 건 단순한 체험 혹은 경험이다.


나는 기자를 경험하고 싶었다. 24년 간 살면서 기자라는 단어는 내 인생에 없었다. 글을 배우고 싶어 언론사에 들어갔고, 우연히 기자라는 직업을 경험했다. 이 직업에 대해 확신을 가질 만큼의 시간도 경험도 없었다. 그저 기자에 대한 설익은 생각만 가지고 있었을 뿐이었다.


단순히 기자를 경험하고 싶어 3~4년을 공부와 시험으로 보내는 건 나에게 합리적이지 않다. 앞서 패션디자이너가 ‘되길’ 절실히 원했지만, 실제로 경험해보니 맞지 않다는 걸 깨닫지 않았던가. 기자도 그럴지 모른다. 기자로서 대단한 야망을 품지도 않았고, 단지 일을 해보고 싶었던 거다.  


공부와 시험으로 내 삶을 유예하고 싶지도 않았다. 비록 밑바닥을 전전했지만,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전문지 기자생활을 하면서 경험했다. 공부처럼 굳이 큰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된다. 일 자체가 나에게 보상이었다.  


답이 명료해졌다. 대학에 갈 생각을 접었다. 대단한 언론사에 갈 것도 아니고, 지금 이 상태로 기자가 되어보기로 했다. 어디든 내가 기자질을 경험할 곳은 있을 거라 생각했다. 없으면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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