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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cm Feb 15. 2020

<B급 기자 막전막후> 인도 배낭여행

"설명할 수 없는 좋음이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안 좋음을 압살했다."


본격적으로 언론사 취업 준비를 하기 전 하고 싶은 게 있었다. 인도 배낭여행이다. 유럽을 다녀온 직후 다음 여행지를 인도로 정했다. 배낭여행의 끝판왕이 인도였기 때문이다. 물가도 저렴해 적은 비용으로 장기간 여행 다니기 좋다고 했다.


인도에 대한 막연한 판타지도 있었다. 인도는 어느 여행지보다 철학적이고, 자신을 생각할 수 있는 나라라고 생각했다. 내가 정말 기자를 원하는지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또 지금 아니면 인도 여행을 하지 못할 것 같았다. 일하면서 장기간 배낭여행은 꿈도 꿀 수 없다. 이제 24살이다. 아직 어린 나이다. 조급할 이유가 없었다.

최대 1년 세계 배낭여행을 갈 생각으로 배낭을 꾸렸다. 그렇게 2013년 4월 인도 콜카타로 향하는 비행기를 탔다. 콜카타를 선택한 건 비행기 값이 가장 쌌기 때문이다. 편도로 24만원에 비행기표를 샀던 것 같다.


공항에서부터 심상치 않았다. 같은 비행기를 타는 인도인이 나에게 가방을 대신 들고 비행기에 탈 수 없느냐고 물었다. 본인들 말로는 인도에서 팔 한국 원단이라며, 가방을 부탁했지만 찜찜해서 거절했다. 행여 보복을 당하지 않을까 비행 내내 숨어 있다시피 했다.


10시간 걸려 새벽에 인도 콜카타에 도착했다. 밖이 어두워 아침이 밝을 때까지 공항에 있었다. 서서히 날이 밝아오자 짐을 챙겨 공항 밖을 나섰다. 살면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더위와 습함이 몰려왔다. 숨쉬기 불쾌할 정도로 공기가 탁했다.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공항에 나오자 택시기사들이 벌떼처럼 호객행위를 했다. 다짜고짜 택시기사들이 나를 둘러싸고 서로가 데려다주겠다며 승강이가 일어났다. 어안이 벙벙했다. 인터넷에서 관광객을 상대로 바가지요금을 씌우는 택시기사를 조심하라고 했다. 나는 이미 공항에서 선결제(Prepaid) 택시를 신청한 상태였다.


겨우겨우 그들을 떼어내 택시 정류장에 갔다. 사진에서나 봤던 60~70년대 한국 택시들이 다 인도로 수출된 모양이다. 오늘날 한국에서 볼 수 없는 택시들이었다. 크고 작은 흠집이 자동차의 문양을 이루는 모습이었다. 실내는 인도 특유의 향과 오래된 자동차의 꿉꿉함이 코를 찔렀다. 자동차 시트는 곳곳에 구멍이나 시트 스펀지가 삐져나와 있다. 차가 움직일 때마다 시트 위로 먼지가 올라왔다. 변속기의 묵직한 가죽 손잡이는 얼마나 많은 손을 거쳤는지 닳고 닳아 앙상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인도 여행 때 찍은 사진

도로에 차선이 없다. 이건 인도를 여행하면서 가장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오직 중앙 차선만 있다. 중앙차선 페인트도 희미해 저녁이면 보이지도 않을 것 같다. 반대편 차들이 멋대로 중앙선을 오갔다.


내가 탄 택시 옆에 불과 몇 센티도 안 되는 거리에 차들이 쌩쌩 지나간다. 도로에 있는 모든 차가 곡예운전을 했다. 왜 택시에 흠집이 그토록 많았는지 수긍이 갔다. 숙소를 가는 내내 생명의 위험을 느꼈다. 택시 아저씨한테 “조금 천천히 가면 안 되겠냐”라고 물었다. 고개를 25도 끄덕이며, “no problem”이란다. 인도 여행을 하며 인도인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인도에서는 소음도 풍경이다. 이건 다 자동차 클락숀 때문이다. 도로와 길거리는 밀도 높은 클락숀 소리로 꽉 찼다.


인도에서 클락숀을 누르며 운전하는 게 브레이크 밞는 것처럼 일상화돼 있다. 처음에는 귀도 아프고 굉장히 거슬렸다. 한국에서는 클락숀 잘못 눌러 운전자끼리 싸우는 경우도 많다. 왜 이렇게 클락숀을 눌러 대냐고 물어보니.


인도에서는 클락숀을 계속 눌러야 사고가 안 난다고 한다. 당신 옆에 차가 있다는 걸 알리기 위함이다. 자동차 후사경 같은 역할을 클락숀이 대신하는 거다. 실제로 인도 자동차 중에서는 후사경이 없는 것도 많다.


겨우겨우 목적지 인근에 도착해 택시를 내렸다. 살아있음에 감사했다. 날씨는 공항에 나올 때보다 훨씬 습하고 더웠다. 기온이 40도를 웃돌았다. 인도의 거리는 난잡하고 지저분했다. 쓰레기와 각종 배설물 냄새로 코가 마비됐다. 인도는 쓰레기통이 없다. 길거리에 음식물이든 뭐든 버리는 게 인도 문화다. 길거리 곳곳에  소와 개들이 출몰하며, 대소변을 본다. 길도 어려워 숙소 찾는데 애를 많이 먹었다. 다시 밖으로 나갈 엄두가 안 나 미리 Vegi Rice(야채 볶음밥)을 포장해 숙소에 들어왔다.  


방이 굉장히 허름했다. 에어컨 방을 쓰고 싶었지만, 비쌌다.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일반실로 잡았다. 선풍기가 천장에 달려있다. 자다가 저 선풍기에 깔려 죽지 않을까 불안했다. 벽지 곳곳 누런 지도가 그려져 있다. 어렸을 적 내가 이불에 그린 세계지도 같았다. 침대 커버 위생 상태는 심히 의심스러웠다. 인도를 다녀온 사람들이 담요를 가지고 다니라고 한 이유를 알 것 같다. 짐이 될 것 같아 담요를 따로 챙기지 않았다. 진이 다 빠져버렸다. 그대로 짐을 풀고 침대에 누워 있다 잠들었다.


더위에 눈을 떴다. 날씨 때문에 정신이 혼미했다. 머리 위로 선풍기가 뱅글뱅글 돌아갔지만, 전혀 시원하지 않았다. 배도 몹시 고팠다. 침대에 누운 상태로 테이블에 놓여 있는 네모난 종이 상자에 포장해 온 야채 볶음밥을 바라봤다. 야채 볶음밥 주변에 쥐 한 마리가 서성이고 있었다. 놀라지도 않았다. 아침에 충격적인 광경을 너무 많이 본 탓이다.


내가 움직이자 쥐는 금방 가구 밑으로 도망쳤다. 볶음밥 포장지 꼭짓점을 쥐가 파먹었다. 그 부분만 덜어내고, 침대에 앉아 주억주억 그 야채 볶음밥을 먹었다. 맛있었다. 이걸 먹는 자신도 놀라웠다.

  

인도는 호불호가 명백히 갈리는 여행지다. 여행 내내 험난한 장애물의 연속이다. 기차 연착은 일상이며, 택시와 릭샤는 후려칠 궁리를 한다. 여행자를 노리는 사기도 비일비재하다. 긴장의 끈을 놓쳐서는 안 된다. 다만 이 과정을 한 번 거치고, 익숙해지면 인도는 그 어떤 나라보다 매력적인 여행지다.

개인적으로 유럽보다 인도가 훨씬 좋았다. 인도의 좋지 않은 점을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지만, 인도의 좋은 점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는 참 어렵다. 그런데도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좋음이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안 좋음을 압살 해버린다. 그게 나의 인도 여행이었다.

인도 여행은 결과가 아닌 과정이다. 게스트하우스의 불량한 청결 상태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곳에 도착하기까지 과정은 한국에서 결코 경험할 수 없는 진귀한 일들의 연속이었다.


인도 갠지스강이 있는 바라나시에서 원숭이 때문에 핸드폰 두 개를 잃어버린 적이 있다. 게스트하우스 옥상에서 밤늦게까지 맥주를 먹고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일어나 보니 혼자였다. 분명 핸드폰들을 가지고 올라왔는데, 없었다. 함께 술을 마신 여행객들에게 물어보니, 잘 때 핸드폰 두 개가 분명 내 배 위에 있었다고 했다.


순간 뭔가 잘못됐음을 직감했다. 다시 옥상에 올라와 주변을 둘러봤다. 내 휴대폰 배터리 커버가 옥상 구석에 널브러져 있었다. 원숭이가 잠든 사이 내 배 위에 있던 핸드폰들을 가져간 거다.


앞서 게스트하우스 주인은 “숙소 창문을 절대 열어 놓고 다니지 마라. 원숭이가 다 가져간다”라고 신신당부했다. 실제로 한 여행객이 창문을 열고 외출했다가 원숭이가 여권가방을 가져가 낭패를 봤다. 원숭이가 가져간 여권가방은 결국 찾지 못하고, 결국 영사관에서 임시여권을 만들었다.


인도 여행 때 아이폰과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을 가지고 다녔다. 다행히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은 찾았다. 분리된 배터리는 찾지 못했지만, 여분의 배터리가 있어서 괜찮다. 그런데 아이폰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옥상 주변 둘러보다가 게스트하우스 옆 건물 급수탱크에 위에 원숭이들이 옹기종기 앉아 있다. 서로의 이를 떼어내며 정답 게 있었다. 그냥 멍하니 원숭이를 바라봤다    .   


분명 원숭이가 아이폰도 게스트하우스 주변에 버렸을 것으로 생각했다. 게스트하우스 주인에게 이런 사정을 이야기했다. 게스트하우스 주인은 주변 상인들에게 “아이폰을 주우면 연락하라”라고 전화를 돌렸다.


찾을 거란 희망은 없었다. 아이폰은 인도에서도 고가의 제품이다. 인도 절도범들 사이에서 아이폰은 주요 표적이나 마찬가지였다. 잃어버린 지 몇 시간이 지난 터라 찾을 수 없을 거라고 체념했다. 그런데 집주인이 전화를 돌리고, 30~40분 뒤 “아이폰을 주었다”라고 연락이 왔다. 이 소식을 듣고 불이 나게 달려갔다. 내가 머무는 게스트하우스와 멀지 않은 곳이었다.

아이폰 액정이 부서져 있었지만, 내 것이었다. 작동도 잘 됐다. 정말 감사했다. 그 자리에서 게스트하우스 주인과 아이폰을 찾아준 인도인에게 사례로 10000루피(16만원)를 줬다. 내 일주일 숙소 값보다 비싼 사례금이었지만, 아깝지 않았다.

인도 배낭여행 3개월 간 이런 크고 작은 해프닝은 내내 일어났다. 인도 여행이 정말 좋았던 건 불확실성이었다. 설명할 수 없지만, 이 불확실성이 주는 긴장감이 짜릿했다. 유럽 여행 때는 이런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인도 여행을 다니며 스스로에 대해 많은 걸 알게 됐다. 먼저 나는 생각보다 여행을 좋아하지 않았다. 인도 2개월 차 때부터 여행이 서서히 질리기 시작했다.


유명 관광지나 명소를 보러 다니는 건 나의 여행 방식이 아니었다. 숙소 주변을 하루 종일 걸어 다니며 골목 구석구석까지 살피는 게 더 좋았다.

인도 여행 때 기차에서 만난 망고 먹는 인도인.

대체로 나의 여행은 무계획이다.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않고, 내키는대로 돌아다녔다. 한 곳에 최소 1주일 이상 머물렀다. 좋으면 더 있었고, 싫증 나면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숙소 예약도 안 다. 어딜가든 나 한몸 누울 곳은 있었다.


이런 생활을 반복하다 보니 여행이 조금씩 피곤해지기 시작했다. 더 이상 설렘이 없었다. 1년을 계획한 배낭여행이 생각보다 일찍 끝날 수 있겠다는 걸 이때 직감했다.


3개월 만에 인도를 떠났다. 인도에서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하러 갔다. 전혀 계획에 없던 일이다. 인도를 다니며 많은 호주 워홀러를 만났다. 그들을 보면서 한 번쯤 워홀이라는 것도 해보고 싶었다. ‘지금 아니면 언제 워홀을 하겠느냐’라는 생각에 인도에서 워홀 비자를 만들어 호주로 넘어갔다.


호주 생활은 그다지 흥미롭지 않았다. 한국과 비슷해 보였다. 일단 호주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뻔해 보였다. 한인타운에서 고기를 뒤집던가, 농장에서 딸기를 따거나. 이런 경험은 한국에서도 할 수 있는 것들이다. 딱히 호주에서 돈을 많이 벌어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빨리 기자가 되고 싶었다. 여행을 다니며, 내가 정말 기자를 원한다는 것도 재확인했다. 여행보다 일했을 때 훨씬 만족감이 컸다. 호주에 있으면서 한 일이라곤 온종일 미드 ‘뉴스룸’을 보는 거였다. 뉴스룸을 보면서 기자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더욱 간절했다.


호주 생활 한 달 반 만에 한국에 돌아왔다. 120일간 배낭여행은 그렇게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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