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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cm Feb 20. 2020

<B급 기자 막전막후> 기자 되기

진보 언론사 기자가 되고 싶었다. 몇몇 진보 언론사에 지원서를 냈지만, 연락 온 곳은 없었다.


진보언론 P사에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들고 무작정 찾아간 적이 있다. 당시 P사는 채용공고도 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P사 사무실 앞에 왔지만, 차마 그 문을 열고 들어갈 용기는 안 났다. P 언론사 홈페이지에서 편집국장의 얼굴을 확인한 뒤 사무실 앞에서 무작정 기다렸다. 여러 사람이 화장실을 가거나 담배를 피우러 들락거렸다. 내가 사무실 앞에 계속 서 있는 걸 보고, "무슨 볼일이 있냐"라고 묻기도 했다. 나는 다른 층에 볼일이 있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40~50분이 지났을까. P사 홈페이지에서 봤던 얼굴이 사무실로 나왔다. 순간 사진이랑 얼굴이 조금 달라 뜸을 들었다. 그 사이 그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긴장된 마음으로 나오길 기다렸다. 화장실에 나와 사무실로 들어가는 그를 문 앞에서 붙잡았다.


"안녕하세요. 혹시 000 편집국장님 맞으십니까?"  

"네. 맞는데요. 무슨 일이신지?"

"안녕하세요. 저는 기자 지망생인 박창민이라고 합니다. P에서 너무 일하고 싶어서 이렇게 불쑥 찾아왔습니다. 알바도 좋고, 무급도 좋습니다. 무엇이든 시켜만 주시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아, 우리가 지금 사람을 안 뽑는데.... 일단 사무실에 들어가서 이야기해요."


난생처음 편집국장실에 들어갔다. 편집국장은 가장 먼저 출신 대학과 전공 등을 물어봤다. 왜 기자를 하고 싶었는지도 물어봤던 것 같다. 이외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구체적으로 기억나진 않는다. 이야기를 마치고 내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건넸다. 편집국장은 "검토해 보고 답변을 주겠다"라고 했다. 하지만 연락이 오진 않았다.


다행스러운 건 한국에 언론사가 수만 개가 있었다. 채용과정이 길지도 복잡하지도 않았다. 서류와 면접만 보는 온라인 신문사 기자직이 많았다. 이런 곳을 ‘마이너 언론사’라고 부른다. 현직 기자와 지망생들은 마이너 언론사는 거르고 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특히 단순한 채용구조로 돼 있는 곳은 더더욱 거르고 걸러야 한다고 했다.  제대로 된 체계가 없는 언론사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채용구조 단순=마이너 언론사=매체-처우-취재 열악'


대체로 적중률이 높은 등식이다. 마이너 언론사들은 메이저 언론사처럼 대규모 공채를 할 수 없다.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마이너언론사는 어뷰징으로 불리는 낚시 기사를 쓰게 하거나, 기자에게 취재 대신 광고 영업을 시킬 수 있다. 엄청난 고강도 저임금으로 이제 갓 대학을 졸업한 기자 지망생들을 착취하는 일도 많다.


이런 탓에 기자 지망생들은 메이저 언론사 입사에 목숨을 건다. 스펙을 쌓고, 수년간 메이저 언론사 입사 시험에 매달리는 건 마이너 언론사의 현실이 얼마나 고달픈지 직·간접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기자 지망생들 사이에서는 마이너 언론사 중에서도 최소 한국기자협회 회원사는 가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한국기자협회는 전국의 신문·방송·통신사 소속 현직 기자들 1만여 명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대한민국 최대의 언론단체다. 한국기자협회 소속 언론사를 입사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기자협회 언론사는커녕 마이너 언론사 기자가 되는 것도 난망했다. 찬밥 더운밥을 가릴 처지는 아니었지만, 최소한 가판대에 있는 신문사의 기자가 되고 싶은 바람이 있었다. 신문가판대는 일간지뿐만 아니라 이름 모를 주간지 등 수십 개의 신문을 판다.


적어도 나에겐 가판에 신문이 놓여 있다는 것 자체가 언론사로서 최소한의 역할을 기대할 만한 핵심적인 요소였다. 근무했던 TIN뉴스는 섬유·패션 업계 사람들만 보는 전문지다. 신문을 발행하긴 했지만, 회사에 직접 전화해 “신문을 받아보고 싶다”라고 하지 않은 이상 시중에서 TIN뉴스 지면을 구하는 건 불가능하다.


매번 지하철·길거리 가판 등을 지날 때마다 신문가판대에 ‘어떤 신문들이 있는지’ 살피는 게 일이었다. 너무 오랫동안 신문가판대에 앞에 서 있어, 주인들에게 “신문을 사서 보라”는 핀잔도 여러 번 들었다.


지원한 언론사에 다 떨어진 뒤부터는 신문가판대에 있는  언론사 위주로 구직 사이트에서 채용공고를 뒤졌다. 그해 12월 타블로이드 주간신문 일요시사가 신입기자를 모집했다. 지하철 가판에서 여러 번 봤던 그 빨간색 신문이었다.


나에게 아주 매력적인 언론사였다. 필기시험을 보지 않았고, 서류와 면접만 통과하면 기자로 일할 수 있었다. 업력도 짧지 않았다. 1993년에 창간한 언론사였으며, 이런저런 단독성 기사도 많았다. 또 양대 포털 사이트인 네이버와 다음에 검색 제휴가 되는 언론사였다. 그 전 회사와 비교할 때 규모와 매체력이 월등히 좋았다.


곧바로 지원했다. 일요시사도 신입기자 지원자격 요건에 4년제 대학을 걸었지만, 밑져야 본전이었다. 고민하지도 않고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보냈다. 일주일 뒤 면접을 보라는 연락이 왔다. 떨리는 마음으로 일요시사에 갔다. 회사는 카페골목으로 유명한 서울 서초구 서래마을에 있었다.


사무실도 전에 근무한 회사보다 컸다. 회사에 커피머신도 있었다. 회의실에서 면접을 봤다. 회의실은 책장으로 빼곡히 둘러싸였다. 회사의 역사와 함께 했을 법한 오래된 나무 책상은 회의실 3분의 2를 차지할 만큼 컸다. 책상 위는 통유리로 덮여 있었으며, 그 사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나온 ‘제19대 국회의원’ 현황판이 끼어 있었다. 책상 한쪽 귀퉁이에는 ‘기자의 자세’라는 제목의 복무수칙도 꽂혔다.

일요시사 회의실 책상에 지금도 꽂혀 있는 '기자의 자세'.

면접관으로 편집국장이 회의실에 들어왔다. 15분 정도 무겁지 않게 이야기가 오갔다. 면접 말미 편집국장이 물었다.


“우리 회사는 고졸을 기자로 채용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그런데도 내가 왜 박창민씨를 뽑으려고 하는지 알아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질문이었다. 면접관이 “당신을 왜 뽑으려고 하는지 아느냐”라고 지원자에게 물어보다니. 내가 벌써 채용이 된 건가. 귀를 의심했고, 혼란스러웠다. 한 동안 이 질문을 곱씹었다. 나를 뽑으려는 이유가 뭘까. 명확한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지만, 순간 '절실함'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지나갔다.


“절실해 보여서요(?)”

“맞아요. 그래서 한 번 기자로 키워 보고 싶어요. 다음 주 수요일부터 출근하세요.”


다행히 정답이었다. 편집국장은 자기소개서를 읽으며, 내 절실함을 느꼈다고 했다. 확실한 건 난 자소서를 아주  못 썼다. 취업 준비하는 여러 지인은 내 자소서를 보며, "이렇게 쓰면 무조건 광탈(광속으로 탈락)"이라고 지적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까지 떨어진 이유도 이 자소서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쨌든 수많은 언론사 중 내 절실함을 알아준 건 일요시사 최민이 편집국장님뿐이었다. 그분을 만나지 못했다면 내가 기자가 될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하다.

 

2015년 25살, 어린 나이에 나는 일요시사 기자의 명함을 들고 다닐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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