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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cm Apr 27. 2020

<B급 기자 막전막후>버닝썬-아레나 강남 커넥션①

특종기

이맘때만 되면 슬럼프가 찾아온다. 2018년 6월은 참 더웠다. 여름이 싫다. 습한 날에는 온몸이 딸에 절어 불쾌지수가 수직 상승한다. 계절은 겨울과 가을만 있으면 좋겠다. 에어컨 있는 사무실이 낙원이다. 이날도 할 일 없이 사무실에 죽쳤다. 이번 주는 어떤 우라까이 기사로 한 주를 날로 먹을까 궁리했다.


핸드폰이 울렸다. 오래된 취재원에게 온 전화다. 서초동 지나는 길인데, 차한잔 하자고 한다. 나가기 싫은 몸을 이끌고 밖을 나섰다. 기삿거리를 바라고 취재원을 만나러 가는 건 아니다. 기삿거리를 던져줘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게 여름이다. 그저 취재원을 관리하기 위함이었다. 취재원이 보자고 할 때 만나줘야 취재원과 계속 인연을 이어갈 수 있다.


회사 근처 카페에서 만났다. 취재원은 먼저 도착해 있었다. 특별한 이야기 없이, 그저 근황 토크를 주고받았다. 그러다 취재원이 갑자기 뭔가 생각난 것처럼 대화 주제를 틀었다. “박 기자 요즘 할 거 없으면, 강남 클럽 아레나라는 곳 좀 알아봐. 거기 사장이 지금 뭔가 문제가 있나 봐. ”


입맛 떨어진 나에게 젓갈 한 숟가락 들이밀어 먹인 기분이다. 구미가 확 당겼다. 클럽 아레나. 강남에서 가장 잘나가는 클럽이라는 걸 익히 알았다. 오래전부터 아레나에 사적인 호기심이 있었다. 금요일과 주말 밤만 되면, 아레나 입구는 청춘남녀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오고 가는 길 그 광경을 종종 봤다. 지날 때마다 ‘나는 저런 곳에 언제 가보냐’라고 생각했다. 돈과 용기가 없어 한 번도 가지 못했다.


취재원에게 아레나에 관해 물었지만,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자세히 알지 못했다.


뜻밖의 편지


오랜만에 식욕이 올랐다. 취재원과 헤어지고,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 아레나에 대해 ‘누구한테 물어볼까’ 생각했다. 떠오르는 취재원이 몇 명 있었다. 사무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회사 우편함을 뒤졌다. 취재원들과 편지를 자주 주고받는다. 대부분 학교(교도소)에 계신다.


그런데 아주 뜻밖이고, 놀라운 편지가 한 통 와 있었다. 지금 이 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취재원에게 편지가 온 것이다. 이 취재원도 학교에 있다. 2년 전에 입학했다. 꾸준히 서신을 주고받다가 어느 순간 소식이 끊긴 취재원이었다. 올해 1월에 안부 차 편지를 썼는데, 답변을 받지 못했다. 이번 여름은 운이 좋다.


이 취재원은 초년병 시절 제보자로 만났다. 강남 유흥업계에 아주 빠삭하다. 젊은 시절에는 그곳에서 크게 장사도 했다. 취재원에게 편지를 썼다. 그동안 내 근황을 적었다. 블라 블라 블라. 편지 말미에 클럽 아레나 사장이 뭐 하는 사람인지 물었다. 취재원이 회사 신문도 매주 부쳐달라고 해, 그편으로 편지를 부쳤다.


일주일 뒤 취재원에게 답장이 왔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아레나 사장에 대해 아주 자세히 알고 있었다. 아레나 사장 이름은 강모씨다. 일명 강 회장이라고 불렀다. 최근 몇 년 사이 강남 유흥업계를 주름잡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 바닥에서는 '밤의 황제' 정도 되는 것 같았다.  



아레나를 실소유하고 있지만, 바지사장을 세워 운영하고 있었다. 아레나 외에도 수십 개 클럽과 술집을 강남에서 운영한다고 했다. 이 유흥업소들도 사장이 다 바지사장이라고 했다. 취재원은 편지 말미에 이렇게 적었다.


“아레나 잘하면 대박 날 거다. 마약부터 탈세까지 문제가 엄청 많다. 대한민국이 뒤집힐 수도 있다. 역시 너는 보는 눈이 있는 기자다.”


아레나 취재만 3달

일단 아레나가 어떤 곳인지 전체적인 그림을 파악했다. 다른 취재원을 통해 아레나에 대해 좀 더 알아봤다. 강남에서 현재 술장사를 하는 여러 인사를 만났다. 그들 역시 강씨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한 취재원은 강씨가 차명 소유한 술집들을 하나하나 집어줬다. 하지만 강씨가 이 업소들을 실소유한다는 물증은 어디에도 없었다.


답보상태에 빠졌다. 강남 유흥업계 핵심 관계자를 통해 강씨 유흥업소를 파악했지만, 기사를 쓸 수 있을 만큼 스스로 확신이 들지 않았다. 한동안 취재에 진전이 없었다. 그러다 어느 날 뭐라도 나올까 싶어 인터넷을 뒤졌다.

강씨와 아레나의 연결고리가 될 법한 흔적을 찾기 위해 구글에 검색어 수십 개를 바꿔가며 찾아봤다. ‘강oo 아레나 회장’ ‘아레나 사장’ ‘아레나 바지사장’ ‘아레나 실소유주’ 등의 키워드를 검색했다. 강씨는 그야말로 베일에 가려진 인물이었다. 강씨와 아레나를 연결 지을 법한 흔적이 하나도 안 나왔다.


그래도 틈만 나면 인터넷을 뒤졌다. 혼자 밥 먹을 때, 잠자기 직전, 화장실 변기에 앉을 때, 대중교통으로 이동 중일 때, 기사 마감 중 집중력이 떨어질 때 등 틈틈이 인터넷으로 강 씨를 검색했다.


결국 꼬리를 잡았다. 인스타그램에서 강씨가 아레나의 실제 사장이라는 흔적들을 찾았다. 아레나 외에 강씨가 실소유하고 있다는 다른 유흥업소들의 실체도 확인했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아레나 VIP고객이 인스타그램에 쓴 글들이다.


-‘저 아레나 사장 아니에요. 물어보지 마세요. 그냥 자주 다니는 사람입니다. 물론 지분도 없어요. 아레나 바운드 마운틴 마블 가스통 모두 00( 씨)형꺼예요.’

 

-‘21일 진짜 우리 큰형 ㅁㅁ형 생일파티…. 아레나 회장 00(강씨)형’


또 다른 사람은 인스타그램에 이렇게 썼다.


-‘까레나 가스통 아레나 바운드 강00회장님’

 

클럽 관련 커뮤니티에서도 강씨가 차명소유하고 있는 클럽들이 ‘사장이 같다’는 글을 찾았다. 아레나 바지사장 이름까지 알 수 있었다. 이때 나는 강씨가 강남 유흥업소 수십 개를 차명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팩트에 확신이 생겼다.


한 다리를 걸쳐서 아레나 내부 제보자도 접촉했다. 그는 강씨와 아레나를 둘러싼 수많은 비리를 알고 있었다. 강씨 유흥업소에 술과 과일 등을 납품하는 유통회사에 전직 비리 공무원(경찰-구청)들이 취직했다. 이들을 통해 강씨가 실소유한 유흥업소에서 일어난 민원을 해결했다고 한다.


유명 프렌차이즈 스쿨푸드 창업자와 동업 관계라는 것도 알았다. 아레나가 국세청 세무조사에서 수백억원의 탈세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는 이야기도 접할 수 있었다. 그런데 피고발인에 아레나 실소유주인 강씨는 빠지고 바지사장들만 고발했다고 한다. 여러 취재원을 통해 아레나 관련 유의미한 자료들을 확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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