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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곡사에 사는 소

by 창민

우곡사를 찾기 전날 밤에 꿈을 꿨다. 꿈에서 나는 빈 공간에 서 있었는 데, ‘비었다’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이었다. 빛 한 톨 없는 밤이었기에 끝이 없어서 안 보이는 건지 있는데 못 보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달빛 받아 산등성이만 겨우 보이는 저 검은 산은 작아서 먼 것처럼 보이는 건지 멀어서 작아 보이는 건지 헷갈렸다. 확실한 게 없는 먹물 같은 밤에 바람은 세차게 부는데 굵은 눈송이는 바람과 자신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이 느릿하게 떨어졌다. 무대 조명 같은 동그란 조명이 내려왔다. 그곳에는 누런 송아지 한 마리가 추위를 견디며 웅크린 채로 있었다. 나는 송아지에게 걸어가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말했다.

“이렇게 꽁꽁 싸매도 인간은 하룻밤 견뎌내는 게 고역인데, 너는 어떻게 버텨내는 거야?”

송아지는 말없이 나를 올려다보기만 하다가 안개처럼 사라졌다. 사라진 그 자리에 다 큰 누런 소 한 마리가 나타나 말없이 나를 응시했다.

꿈에서 깬 나는 이런 꿈을 꿨다는 사실도 잠시 잊어버렸다.


사랑하는 그녀를 어루만지듯, 맨손으로 나무를 만질 때 느껴지는 촉감을 사랑한다. 하지만 겨울에는 맨손과 맨살 사이에 차가운 냉기가 끼어들어서 나는 그녀의 맨살을 오롯이 감상할 수 없다. 차가운 나무를 어루만지며 ‘살아있다’라고 말하는 게 어색하고 위태로웠다. 정병산을 오르며 나무를 매만져보지만 ‘차갑다’ 말고는 뚜렷한 게 없었다. 봄이 와서 냉기가 가시고 그 자리에 신록이 번지면 산뜻한 안도감을 느끼겠지.

1월 설 연휴, 산을 한 시간 넘도록 올랐지만 우곡사는 보이지 않았다. 태양이 아직 산등성이를 넘지 못해서 여전히 지난밤에 가라앉아 있는 겨울산은 텅 비어있었다. 텅 빈 겨울산에 부는 바람은 매서웠다. 매섭게 불어오는 바람을 막아줄 초록도 없어서 나에게 날아와 부딪히는 겨울바람이 날카롭게 선명했다. 뼈가 아리도록 파고드는 서슬 퍼런 냉기 탓에 손가락 끝이 얼어 묵직했다. 지도 어플로는 우곡사가 근처라고 나오는 데, 낙엽에 가려진 길이 흐릿하여 분간이 어려웠다. 어스름 겨울 산속에서는 누구도 나를 반기지 않는 외면으로 가득 찬 듯했다. 운동기구가 설치되어 있는 삼거리에서 가방을 열어 살구색 보온병을 꺼냈다. 식도를 타고 흐르는 뜨거운 보이차의 온기는 천천히 흘러 내려가다 명치에서 아스라이 흐려졌다.


고운 황금빛 낙엽 바닥에 흩뿌린 500년 넘은 굵은 은행나무가 입구를 지키는 우곡사는 조용하고 정갈했다. 정병산 계곡 사이 좁은 공간에 이것저것 옹기종기 모아둔 게 아기자기했다. 쩍 벌린 용의 아가리에서 흘러나오는 졸졸졸, 약숫물 소리가 우곡사의 허공을 가득 채웠다.

사찰에서부터 뻗어나간 길을 눈으로 따라가 내려가다 보니 아스팔트와 만났는 데 사람들은 우곡사까지 그 아스팔트 길을 따라 올라와 우곡사 아래 약숫터에서 빈통을 채웠다. 창원시에서 가장 굵다는 벼락 맞은 은행나무가 내려다보는 약수터 주차장에서 몇 안 되는 돌계단을 걸어 오르면 우곡사가 있지만 어느 하나 우곡사를 눈에 담지 않았고, 빈통에 약숫물을 다 담으면 냉기를 털며 서둘러 다시 내려갔다. 우곡사를 찾는 사람들이 모두 바퀴 달린 차를 타고 다니니 등산로에서 우곡사까지 닿는 길은 낙엽에 가려져 있었다.

우곡사의 전경은 트여있어 나의 시야는 막힘이 없었지만 불어오는 맞바람도 나에게 저항 없이 부딪혔다. 인기척 없는 사찰에 홀로 앉아 김이 올라오는 따뜻한 보이차를 홀짝였지만 온기는 생겨나기 무섭게 맞바람 앞에 희미했다. 용 아가리에서 흐르는 약숫물 소리까지도 이젠 차갑게 느껴지는 와중에 우곡사 맞은편 멀리 산등성이에서부터 넘쳐오는 일출 햇살이 너무도 포근했다. 산능선 간지럽히며 아래로 아래로 퍼지는 눈부신 햇살을 보는 것만으로도 설국열차에서 내린 것처럼 기나긴 빙하기가 끝나는 듯한 희망이 설레왔다. 기차에서 내린 나는 찬바람 피해 서둘러 하산했다. 우곡사에서 빠져나와 이제 겨우 100미터쯤 걸었을까. 걷다 말고 뒤돌아 우곡사를 찾아보았지만 앙상한 나무들에 가려진 우곡사는 보이지 않았다.

대웅전 외벽에 그려진 벽화에는 ‘소를 찾는 그림(심우도)’이 그려져 있다. ‘소 우(牛)’자에 ‘골짜기 곡(谷)’자를 쓰는 우곡사. 그제야 나는 우곡의 뜻을 찾아보았다. 그걸 본 순간부터 나는 우곡사를 ‘계곡에서 추위에 떨고 있는 한 마리 소’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저 햇살이 이불이라면 내가 확 끌어다가 우곡사에 덮어주고 싶다.”

소에게 동정심을 느끼며 무심코 내뱉은 말에 어젯밤에 꾸었던 꿈이 머릿속을 스쳤다. 꿈과 함께 스친 기억이 또 하나 있다. 그것은 내가 아주 오래전에 쓴 편지의 한 구절로 나 자신을 시골의 누런 소에 비유해 쓴 글이다.

“저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과 온기를 사랑하지만, 가지지 못한다면 저는 스스로 울타리에 들어가 참견과 시선을 경계하는 예민 보스 시골 누런 소가 되어버리고 말아요.”

뭐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앞뒤 내용은 기억이 흐릿하여 내가 왜 저런 내용으로 편지를 썼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안나는 건지 안 나게 하려고 부정하는 건지. ‘심우도에 그려진 소를 찾아 오랫동안 헤매는 그림 속 소년이 내가 아닐까? 그럼 나는 소를 찾았네. 아버지에게는 혼나지 않겠다. 다행이야.’ 하며 민망한 편지글을 머릿속에서 지우려 엉뚱한 상상놀이를 하면서 산을 내려왔다. 산을 다 내려와도 몸은 여전히 얼어서 관절이 뻐근했다. 요가 선생님의 추천으로 찾았는 데, 허무맹랑한 꿈얘기를 늘어놓고 싶지 않아서 ‘너무 추웠지만 좋았다. 여름에 다시 찾아가 보려 한다.’ 정도로만 후기를 남겼다.

일주일 동안 요가원 방학에다 날도 충분히 풀리고 신록이 풍만하니 다시 찾아가 볼까나. 아, 꽃가루 알레르기 때문에 다음에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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