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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자전거를 타고

나와 자전거의 새로운 시작

by 창민

1. 2024년 8월


2. 2024년 6월

몹시 더운 여름날, 고속버스에 낡은 자전거를 실코서 고향으로 돌아와 바로 직장을 구했다. 주방에서 일하느라 앞치마를 둘렀는데 허리끈이 짧아 손가락 끝에 힘을 끌어 모아 겨우 묶어냈다.

못 마시는 술과 잘 넘어가는 야식으로 포동포동 살이 오른 몸을 굴려가며 좁은 주방에서 땀으로 샤워를 했다. 끈적하게 샤워를 끝내면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또 샤워를 한다. 샤워를 하다 말고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면서 오늘도 고개를 들어 바람에 나풀거리는 파란 현수막을 올려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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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오픈을 앞둔 저가형 헬스장 앞에 내걸린 현수막을 보고 군침을 추릅, 삼킨다. 3킬로그램만 더 찌우면 100킬로그램이다. 이런 주인을 태우고 오늘도 열심히 굴러가는 검은 자전거는 온갖 형태로 자신의 마지막이 임박했음을 알렸다.


3. 2018년 7월

아르바이트를 했던 작은 스테인리스 공장 사장 님의 소개로 검은 자전거를 구입했다. 자전거 가게는 빛바랜 색감과 오래된 폰트, 눅진한 묵은 때로 세월의 흔적을 과시하며 든든하고 구수한 동네 터줏대감의 포근함을 선사해 주는 곳이었다. 터줏대감 님께서는 눅진한 포근함도 주시고 48만 원짜리 검은 자전거도 42만 원에 주셨다.


흰색으로 ‘엘파마’라고 적힌 검은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던 시절에도 나는 다이어트를 하고 있었다. 매일 저녁이면 다음 날 점심에 먹을 식단 도시락을 만들고, 일하는 틈틈이 사장님 눈치를 보면서 공장을 헬스장 마냥 기계들에 매달리거나 투박한 쇳덩이를 들었다 놓으며 여러 가지 운동들을 흉내 냈다. 효과가 나름 만족스러웠다. 헬스로 만들어진 육체미 넘치는 사진들을 뜨거운 시선으로 우러러보며 의욕을 다지곤 했다. “나도 꼭 저렇게 될 거야.”

2024년 6월에 헬스장을 등록한 6년 후의 나도 같은 말을 했다. “이번에야 말로 꼭.”

6년 전의 나도 6년 후의 나도 똑같은 목적을 품었고 똑같은 다짐을 했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느끼는 것도 똑같았는데, 그것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육체나 상태 따위에 대한 인식이었다. 여기서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육체나 상태라 함은, 헬스로 만들어진 우락부락함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움직임이 가능하고 의식대로 통제가 가능한 상태의 육체’를 의미했다.

나는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다는 사실도 잊어버리고 매년 봄이 오면 분위기에 취하다가 콧물, 재채기, 안구 가려움으로 고생을 한다. 그런 것처럼,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을 잊은 채로 사진 속 멋진 몸들에 취해 헬스를 다시 했다. 이후 몸으로 직접 불편함을 호소하고 나면 그제야 다시 상기하곤 하는데, 모지리 같았다.

헬스를 하면 할수록 겉으론 몸이 좋아지는 것 같은데 속은 다 망가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자세 문제인가 싶어 비싼 돈 들여 일 대 일 코치를 받으면서 운동할 때도 관절이 다 박살 나고 있다는 사포 같은 이질감으로 인해 그만두길 반복했다.

요가를 계획하며 헬스를 그만뒀지만 요가원을 찾아갈 용기가 안 나서 유튜브를 보고 처음 요가를 시작했다. 영상 속 선생님을 따라 하며 요가를 했던 6년 전의 나는 한 달 만의 수련으로도 긍정적인 변화와 경험을 만끽할 수 있었고 그걸 잘 품어 보관했다. 하지만 품어내는 행위와 형상을 흉내 내는 것에만 마음을 쓴 탓에 돌봄에는 서툴렀다. 다행히 나의 돌봄은 서툴렀어도 엉덩이는 나름 따뜻했던 모양이다. 어찌저찌 6년을 품어내니 품어왔던 것에 그나마 입이라도 달려서는 이제 그만 알아차리라고 소리 내어 울어주었다.


4. 2024년 9월

약간의 경사만 있어도 체인이 튕겨서 제대로 나아가지 못하는 검은 자전거를 손으로 끌고 가까운 수리점을 찾았다. 원래 계시던 할아버지 사장님은 안 보이시고 아드님으로 보이는 아저씨께서 계셨는데(붕어빵이셨다.), 자부심 같은 것들로 온몸을 칭칭 두른 듯한 기운을 뿜어내시는 분이셨다. 너무 칭칭 둘러 행동이 불편하신가. 아저씨께서는 느긋하게 코팅장갑을 챙기시고 느긋한 걸음으로 나오시더니 마스크를 턱에 걸치신 상태로 자전거를 느긋하게 훑어보셨다. 그리곤 갑자기 돗자리를 펴셨다.

“5년은 넘게 타셨겠네. 그런데 왜 이렇게 많이 넘어지셨어요.”

“좀 험하게 탔지요.”

“이거 경사가 조금만 있어도 잘 안 굴러가죠?”

“네, 페달이 안 밟혀요.”

“오십만 원 정도 주고 사셨겠네요.”

“와, 어떻게 그걸 다 아세요?”

“허허허, 이게 제 일인데 척 보면 알죠.”


지금 다시 떠올려보면, 한 업종에서 오래 일한 사람이라면 이 정도는 눈치껏 알아볼 법도 하다고 생각되는데 그때는 족집게 같은 말씀과 특히, ‘뭔가가 가득한 미소’에 무한한 신뢰를 품고서 홀라당 반해버렸다.

마스크를 벗으신 아저씨께서는 더우신 게 언짢으신지 짧은 찡그림으로 돗자리를 접어 넣으셨다. 그리곤 주변에 공구를 정리하시며 말씀을 이으셨다.

“수리하시려면 하셔도 되는데 얘 중고가 보다 수리비가 더 나와요. 그게 아니라면 탈 만큼 타다가 버리고 새로 하나 사세요.”

알겠다 대답한 나는 바퀴에 바람만 가득 먹이고 돌아섰다. 우리 아들, 잘 먹어야 빨리 낫지.

우리의 6년 동행은 3분 대화로 압축되어 폐차 딱지가 되었다.


폐차 선고를 받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미리 찾아둔 요가원의 SNS를 구경하면서 두근거리는 심장을 무시하려 애쓰고 있었다. 그때는 무시하는 게 방법이라 생각했다. 길게 숨을 내쉬며 설렘으로 인한 두근거림이라고 스스로를 세뇌시키기도 했다. 요가를 하겠다는 다짐은 실현되지 못한 채 한 달이 넘도록 그러고 있었다.


우울증, 대인공포, 사회불안, 강박. 몇 년 전에 정신과에서 진단받은 녀석들이다. 우울증은 고향으로 돌아오기 직전에 극단으로 치닫았지만 지금은 아주 미약하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나머지 녀석들은 지겹도록 나를 괴롭혔다. 앞에서 육체가 어쩌고 하면서 많이도 주절거렸지만 실은 내가 요가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결정적 요인은 여기에 있다.

나는 녀석들을 이야기할 때 ‘이겨낸다’라는 표현을 주로 하곤 한다. 하지만 탈탈 털어내야 하는 것인지, 꽉 쥔 주먹으로 이겨내야 하는 것인지, 보물인 것 마냥 등 뒤에 숨겨두고서 평생 함께 해야 하는 것인지 헷갈렸다. 답안지에 써야 할 답이 객관식이라기보다는 ‘약물로는 한계가 있고 직접 사람들을 사귀고 어울리는 게 치료에 가장 효과적이다’라고 서술하는 게 최선임을 알지만, 하필이면 볼펜 잉크가 굳어버린 탓에 나는 빈칸을 채울 수 없었다.

날뛰는 심장을 다독이는 척 때려본다. 아깝고 서럽다. 녀석들 때문에 지난한 세월 동안 놓친 수많은 기회와 경험들을 습관처럼 반추하고 후회한다. 덩달아 나오는 한숨은 책상 위에 매캐하게 쌓인다. 이 한숨은 수분이 하나도 없는 모래먼지 같아서 책상 아래 바닥으로 자꾸만 흩날려 떨어진다. 그러면 나는 이 한숨모래먼지를 계속 밟고 다니거나 숨을 쉬다가 격하게 기침을 하는 데, 그래서 반추를 멈추질 못한다.

녀석들에게 쉽사리 발목을 잡혀준 나로 인해 눈물 흘린 나 자신과 울화통 터진 그대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다.


5. 2024년 9월 16일, 추석 연휴

오전 6시 30분, 나름 선선해졌지만 나는 또 새벽부터 땀으로 샤워를 한다. 원데이 요가 수련에 참여하기 위해 이동하는 중이었다. 아주 약간의 설렘과 거대하고 부정적인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하다. 더워서 흐르는 땀이 아니다.

수다쟁이 회피 본능이 계속 말을 걸어왔다. “돌아가자. 기회는 또 있을 거야.(아마도)”

얼굴에 땀줄기를 훔치며 그래선 안된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녀석들을 다 털어내지 못하고 옷자락 끝에 묻은 채로 살아갈지언정 등 뒤에 애지중지 숨기며 살고 싶지는 않았다.


진정되지 않는 손떨림으로 절반쯤 왔을 때, 최근 며칠 상태가 급격히 안 좋아진 나의 검은 자전거가 촤라락푸덕쿡콱탁, 괴상한 소릴 내며 쓰러졌다. 한없이 늘어난 체인을 바라보며, 아직 벌어지지도 않은 일에 미리 걱정하길 좋아하는 의미부여는 이때다 싶어 조잘거린다. “거봐, 불길해.”

네가 그러든지 말든지, 나는 검은 자전거를 오토바이와 자전거가 모여 주차되어 있는 곳 옆에 세워두고 걸음을 재촉했다. 새로 산 볼펜으로 빈칸을 채운 답안지를 제출하기 위해 앞만 바라보았다. 명령어가 입력된 기계처럼 목적만을 응시하려 애썼다.


다음 날, 여름 태양의 여운과 색감이 여전히 뚜렷한 초저녁에 검은 자전거를 다시 찾아갔다. 대형폐기물 접수 번호를 적은 종이와 테이프를 가방에서 꺼내 든 나는 검은 자전거가 낯설었다.

안장 아래 말아두었던 얇고 연약한 자물쇠는 사라지고 처음 보는 굵은 자물쇠가 굳게 잠겨있었다. 페달과 체인은 새것으로 교체되어 반짝였지만 감아둔 흰색 케이블타이와 컵홀더는 그대로였다. 폐차 딱지는 떨어지고 없었다. 버려진 자전거라고 생각한 누군가가 그 잠깐 사이에 가져가 수리한 모양이다. 버린 게 맞긴 하지. 오히려 잘 되었다 생각하며 종이와 테이프를 가방에 다시 넣는 와중에, 자전거 가게 아저씨의 ‘뭔가가 가득한 미소’가 스쳤다.


몇 달이 지난 요즘도 나와 동행해 주었던 검은 자전거는 가끔씩 그곳에서 발견된다. 새로운 주인을 만난 자전거는 항상 깨끗한 모습이다. 검은 자전거는 나에게 때때로 안부를 물어온다. “나는 요즘 잘 지내고 있어. 넌 어때?”

아주 오래전에 구입하고 한 번도 펼쳐보지 않은 책의 페이지를 넘긴 듯 벅차고 홀가분한 기분으로 내가 대답했다.

“나는 아주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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