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도무카 스바나 아사나
양평에서의 아침 다섯 시, 커튼 사이로 느껴지는 기운이 어제와는 너무도 달라 활짝 열어젖히니 밤 사이 함박눈 내린 설경이 펼쳐졌다. 강 건너 낮은 산에는 눈꽃을 흐드러지게 피운 나무들의 자태가 흩날리는 눈발 사이로도 장엄하여 정신은 아득한 데, 나와 산 사이로 흐르는 굵은 강줄기도 설경에 감탄하느라 서해까지 닿는 시간이 지체되었다. 이 지체됨은 겨울스러운 것이기에 내륙의 소식을 기다리는 서해 바다는 지체된 강줄기를 탓할 수 없다. 급할수록 보고 들을 수 있는 것은 줄어들기 때문에 강줄기를 재촉한다면 전해줄 소식도 이렇다 할 것 없어진다.
사방으로 쌓인 함박눈이 촘촘하여 오전 다섯 시에도 어둠이 낄 틈 없이 환하게 빛났다. 어두운 조명으로 수련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이런 순간에는 수련을 안 할 수가 없다. 수련을 다니면서 배운 시퀀스 몇 개를 아이패드에 기록해 두었지만 이런 풍경을 담아낸 두 눈에 전자기기를 들이대고 싶지가 않아 생각나는 데로 했다. 하지만 요가 매트가 없어 아쉬운 데로 눈처럼 하얀 이불을 깔았다.
우타나에서 아도무카 스바나, 다시 반복을 하는 와중에 이불이 눈처럼 미끄러져 손목을 삐끗해 버렸다. ‘몸소 경험’으로 또 하나 배웠다. ‘요가는 이불 위에서 하지 말 것.’
여행 중에 경기도 양평까지 거슬러 올라왔다. 목줄 끊어낸 시골 개처럼 마음 내키는 곳으로 무작정 걸으며 여기저기 구경을 한다. 지역만 정하고 도착해서는 그냥 걷는다. 큰길보다는 되도록 사람 냄새나는 골목이나 아니면 아예 적막한 숲길이 좋은 데, 이게 나의 여행 스타일이다. 일행이 없다면 목적지도 없이 걷는 데, 이런 자유가 좋아서 그냥 걷는다. 사람이 많은 게 싫어서 관광지는 가지 않는다. 사람이 좋아 꼬리는 흔드는 데 선 넘어 다가온다면 경계하는 개처럼, 사람이 많으면 많아서 불편하고 적으면 적어서 불편하다. 뭐 어쩌라는 건지.
‘1950-60년대 폴란드 포스터 전시’라니, 구미가 당겼다. 내가 양평까지 굳이 올라온 이유다.
강줄기가 말했다.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어. 뭐 먼저 들을래?” 내륙 소식을 기대하며 강줄기를 반기는 서해의 마음처럼 전시를 향한 나의 기대감도 서해처럼 넓었다. 기대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이 크다는 것은 실망이 담길 그릇도 그만큼이나 크다는 뜻이겠지. 내가 느꼈던 아쉬운 마음도 ‘몸소 경험’을 바탕으로 한 마음이기 때문에, 이 경험을 소중히 여겨 전시 소식을 전해준 SNS 강줄기를 나는 탓하지 않는다. 덕분에 올 겨울에는 못 보는 줄 알았던 장엄한 눈꽃 설경까지 보았으니 오히려 감사하다.
전시가 끝나고 나왔는 데 설경도 끝나 있었다. 오전 햇살에 눈이 다 녹아 질퍼덕거렸다. 점심시간이 다 되도록 만난 사람이라곤 매표소 직원 한 명뿐이었다. 사람이 많은 건 싫지만 안 보면 그리워하는 마음이 또 슬금슬금 올라오는 데, 기척 소리에 주변을 살폈다. 어두운 갈색에 다리가 짧은 시고르자브종 아이 하나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눈덩이에 신나서 뛰놀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아이가 아도무카 스바나를 하길래 망설임 없이 다가가니 수풀 사이로 내달려 사라졌다. 아이의 표정이 상기되어 있어서 겁이 나 내달린 것인지 신이 나 내달린 것인지 헷갈렸다. 후두둑, 떨어진 눈뭉치에서 눈 비린내가 풍겼다.
시린 손을 주무르며, 다음 목적지는 강화도였지만 따뜻한 곳을 찾아 유채꽃이 피었다는 제주도로 방향을 틀었다. 다시 한 번, “이게 나의 여행 스타일이다.”
김포공항 가는 지하철 안에서 운이 좋게도 딱 맞는 시간에 만 팔천 원으로 티켓을 예매했다.
아침 여덟 시에 먹은 따뜻한 몸국 한 그릇과 카페라떼 한 잔의 힘으로 뭐가 그리도 재밌는지 끼니도 거르고 일곱 시간을 내리 걸었다. 누군가 나에게 “넌 전생에 봇짐장수였어.”라고 확언해도 나는 마땅히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제주의 거센 바닷바람 이겨내고 피어난 유채꽃이 자아낸 봄내음은 나 같은 사람이 견뎌내기 어지럽고, 제주의 거센 바닷바람 이겨내며 꿀을 모으는 검은 토종벌들의 밥벌이를 보고 있자면 숨이 막힐 정도로 치열하고 고돼서 바라보는 이의 삶을 가볍게 만든다.
거센 바닷바람 부는 제주 서귀포를 걷다가 많은 개들을 만났다. 스스로가 주인인 들개인지, 아니면 산책 나온 저기 저 감귤댁 흰둥이인지 나로선 알 수 없다. 그 개들 중 몇몇은 간혹 나에게 기꺼이 시간을 내어주곤 했다. ”그러다 길 잃어버린다. 이제 그만 돌아가.“ 밀어내도 갈 생각을 않는다. 나처럼 목적지 없이 걷는 걸까. 짐작건대, 들개들의 지침서에는 ‘폼포코 너구리(지브리 애니메이션)’들처럼 ‘1. 인간의 말을 그대로 믿지 말 것’이라는 항목이 있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등을 긁어주는 내 손맛이 아무래도 썩 맘에 든 모양이다.
아이들이 걸을 때 힘차게 뻗어내는 다리 근육과 발바닥 젤리(육구)를 보고 있으면 땅을 밀어내는 힘찬 저항력이 내 손바닥 위에서도 거칠게 느껴진다. 그 힘으로 걸을 때 생겨나는 작은 흙먼지와 발톱으로 땅을 긁으며 내는 소리도 듣는다. 착- 착-. 그러면 나는 이 아이들의 생명력과 여전히 남아있는 야생성에 감탄한다.
잠시 앉아 쉴 때, 아이의 검은 눈은 아득히 먼 곳을 바라보고, 나의 탁한 눈은 아이의 검은 눈을 아득히 바라본다. 인간과 정서를 교감하는 동물들의 눈은 넓고 깊다. 너무 넓고 깊어서 아차 하면 쉽사리 빠지고 말지만 구조대가 따로 없는 탓에 다시 나오기도 힘들다. 특히 소와 개의 눈이 그렇다.
먼 곳을 응시함에 무엇을 보는지 궁금해 아이 시선에 함께 가 닿으면 그저 먼 곳 어딘가. 뭘 보느냐 물으면 반응도 없이 여전히 적막한 침묵이다. 양평에서 본 시고르자브종 아이처럼, 목줄도 울타리도 보살핌도 없이 자유롭게 걷는 아이들이 가장 아름답다. 그렇게 걸으며 보고 듣고 딛고 맡고 핥은 세상으로부터 아이들은 가르침 없이 배운다. 자유가 없다면 배움도 없다.
그 많고 많던 편의점이 안 보이다 겨우 발견한 곳에서 애견 간식을 하나 샀다. 그런데 아이가 보이지 않아 두리번. 아이는 작별인사도 없이 멀리 뒷모습만 보인다. 처음 보는 다른 여성분을 따라간 것이다. 여인 앞에서 수컷들의 오십 분짜리 의리는 밀물 만난 모래성이다. 아니, 아예 세워지지도 못한 걸지도.
저 젊은 여인은 스마트폰으로 아이를 찍고, 봇짐장수는 또 다음에 마주칠 아이를 위해 간식을 가방에 쑤셔 담는다. 헤어짐으로 인한 아쉬운 마음은 아주 깊숙이 쑤셔 넣는다. 한번 쑤셔 넣은 아쉬움은 진하게 숙성되어 꼬릿꼬릿 묵은 냄새나는 추억이 될 때까지 꺼내지 않는 게 좋겠다. 이런 종류의 아쉬운 마음도 혼자서 여행하는 봇짐장수라야 느낄 수 있는 귀한 마음이다.
지도를 보니 이곳은 올레길 6번 코스란다.
“배고프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