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로 가득 찬 종이에 불과했던 달력은, 이제 사라졌다. 동그라미 아니 점 하나 찍은 흔적 까지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달력은, 내게 달력 이상이 되어버렸다.
한 장을 넘기고 천천히 들여다본다.
정사각형 속 예쁘게 적힌 글자들을 읽어가며 생각에 잠긴다. 빨간 동그라미와 그 밑으로 새겨진 글씨를 보며, 내 마음은 평온해졌다가 요동을 쳤다가 찌푸려졌다가 셀 수 없을 만큼 반복 중 이다.
그런 내 마음과 달리 달력은,
기쁜 일도, 슬픈 일도, 그냥 그런 일도, 싫은 일도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담담하게 말해주고 있다.
그냥 지난 일 처럼, 스쳐 지나가듯이, 그리고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아무렇지 않게
다가오고 있다.
달력은 수 많은 숫자 만큼이나 사랑스럽지도, 아프지도 않게 살포시 모든 걸 품고 있나 보다.
그 품 속에, 나는 또 어떤 일을 새길 수 있을런지.
오늘도, 조그만 칸 속에 글씨를 채워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