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만 붙잡고 있다가 현재도 과거처럼 될까봐...
돌돌돌 예쁘게도 말려있는 두루마리 휴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공손한 두 손 마냥 참 예쁘다.
응애응애 우는 것 조차 사랑스러운 내 새끼처럼, 아무것도 해보지 않은 새내기 처럼.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당연하게도 깨끗한 휴지의 첫 장이 뜯겼다. 조심스러우면서도 세다.
그런 녀석은,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을 수도,
그녀의 입에 맞춘 커피를 닦아주었을 수도,
그녀의 기다란 손가락에 묻은 새빨간 피를 닦아주었을 수도,
그녀의 스커트에 묻은 케이크를 닦아주었을 수도,
묵직하고 통통했던 그런 녀석이 이젠 한 손에 잡힐 만큼 작아졌다.
나를 누구보다 사랑해주고, 누구보다 아껴주던 그녀의 마음이 누구보다 작아진 것 처럼.
이제 이 휴지를 어디에 써야하나 고민 하고 또 고민하다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데구르르 한참을 구르고 나서야 멈춘 휴지는
내 마음처럼 헝클어진 흔적을 바닥에 그대로
남겨 놓았다.
어디서 집어야 하나. 어떻게 잡아야 하나. 다시 주울 순 있긴 한 걸까, 아님 버려야 하나
짧은 순간 많은 생각들이 스쳐갔지만 결론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듯,
처음 부터 당연히 그랬던 것 처럼, 휴지를 집어들었다. 그냥 무작정 들고 돌돌 말았다.
처음 처럼 똑같이 말릴 거라 생각하고, 그 때로 돌아갈 수 있을거라 생각하고, 나는 할 수 있을거라 생각하고, 당연히 그럴거라 생각하고. 그런데 손에 쥐어진 휴지는 삐뚤빼뚤 삐뚤빼뚤 울퉁불퉁 요란해져만 갔다. 내 생각과 달리.
그녀에게 가려던 발걸음을 멈추었다. 한동안 가만히 머릿 속을 들여다 보았다.
그녀와 함께한 추억 속의 우리를.
그리고 추억에서 빠져 나온 우리를.
다시 그녀에게 돌아가면, 다시 그 추억 속으로 들어가면 연속극 처럼 해피엔딩으로 이어질 줄 알았던 하얀 사랑이 헝클어진 휴지 덩이 였음을.
만지면 만질수록 완벽과 더 멀어지고, 더 이상하게 꼬이고, 후회만 남음을. 차라리 그냥 놔둘걸.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그 때가 최선이었음을 깨닫는데 왜 이리 오래 걸렸는지...
내 그녀를 위해, 내 사랑을 위해, 지금을 위해 이젠
힘들었던 과거, 그리고 소중한 현재.
안녕, 그리고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