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까지만 해도 50~70대들이 주로 찾던 서울 을지로가 젊은이들 사이에서 ‘힙지로’라는 애칭을 얻으며 새로운 핫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다. 유행에 밝다는 뜻의 영어 단어 ‘힙(hip)‘과 을지로의 합성어이다. 을지로의 변화는 젊은이들이 힙스터 인증을 위해 경쟁적으로 자신들의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린 것이 계기가 됐다.
을지로가 힙지로로 변화하게 되면서 주목해야 할 특이한 점은 ‘기존 노포가 밀려나거나 사라지지 않고 새롭게 유입된 가게들과 동반 성장하는 모습이 발견된다는 점이다.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연구팀이 진행한 조사에 의하면 을지로 일대에서 오랫동안 장사를 이어온 만선호프, 을지면옥, 동원집 등 노포에 대한 인스타그램 게시건수는 20배 이상 크게 늘어났다. 을지로 지역 전체가 활력을 띠고 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을지로 복고풍에 열광하는 젊은이들
그렇다면 밀레니얼 세대(1981~1995년 출생)들이 힙지로에 모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질문에 을지로만이 가진 ‘낡았다. 그래서 새롭다’라는 뉴트로(새로움+복고) 문화를 얘기하는 사람이 많다. 힙지로에는 ‘커피한약방’이라는 독특한 가게가 있다. 힙지로 초기부터 있었고, 실제 힙지로 열풍을 가져온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 명실상부 힙지로의 명소로 통한다. 이 가게는 1960년대와 1970년대 화려했던 을지로의 멋과 그 시절의 부귀영화를 복원했다. 30년 경력의 연극·뮤지컬 배우가 모던보이와 모던걸이 튀어나올 것만 같은 이 골목에, 중국 상하이와 유럽을 돌며 모은 괘종시계와 찬장 등 근현대 소품을 갖춰 오픈했다고 한다. 지역시장에서 지역자원, 문화, 커뮤니티를 연결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내는 창의적 소상공인들을 로컬 크리에이터라고 하는데, 커피한약방 주인이 바로 로컬 크리에이터의 대표적 사례다. 이 로컬 크리에이터들이 바로 힙지로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 지방은 ‘지방 소멸’이라는 단어가 큰 화두이다. 지방 소멸의 대안은 청년의 유입과 정착이다. 청년들이 좋아할 만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광주·군산 등 일부 지역에서는 지역 상생형 일자리를 경쟁적으로 만들고 있다. 그러나 생존을 위한 일자리 문제의 해결이라는 필요조건만이 밀레니얼 세대 청년들의 삶을 매만져 주는 정책이라고는 볼 수 없다. 라이프 스타일이라는 충분조건이 충족되어야 젊은이들이 지역에 머물게 되고 정착하게 된다. 그렇다면 누가 그 일을 할 것인가?
지난 5월 마늘로 유명한 경상북도 의성에 때묻지 않은 시골을 배경으로 예술성을 강조하는 웨딩사진 전문 사진관 ‘노비스르프’가 생겼다. “당신만의 이야기를 전해주세요. 저희만의 예술작품으로 돌려드리겠습니다”를 모토로 운영중인 이 사진관은 의성에 새로운 문화를 더하고 있다. 문경에는 저녁마다 마을 사람들이 바이올린 공연을 위해 연습하는 연습실이 생겼다. “쓴 커피에 달콤한 커피 한 스푼을 더하면 맛이 달라지듯 우리네 삶에 클래식을 한 스푼 더하면 우리 삶이 달라질 수 있다”고 믿는 젊은 바이올리니스트들이 ‘클래식 한 스푼’이라는 이름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이들은 독일 국립 오케스트라에서 바이올린 단원으로 활동했던 경력을 살려 예술 사각지대였던 문경의 시골마을에 클래식을 전파하고 있다. 울릉도에는 ‘도시 청년들의 울릉도 2주 살아 보기’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35세 서울 청년과 31세의 일산
청년이 있다.
이들 모두는 경상북도와 경상북도 23개 시·군에서 진행하는 도시청년 시골 파견제 사업의 창업팀들이다. 아직은 지역사회에 청년창업이 활성화되지 않아 각 지역에서 이들의 역할이 섬처럼 조심스럽다. 하지만 이들이 각자 하나의 성공을 넘어 로컬 크리에이터로서 지역의 상생과 부활을 엮는 마중물 역할을 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