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신문 12월 3일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유명한 영화 제목이기도 하지만, 원래 아일랜드의 시인 예이츠의 시 ‘비잔티움으로의 항해(Sailing to Byzantium)’의 구절이다. 뜻은 노인의 경험과 지혜대로 예측 가능하게 흘러가는 사회라면 그 곳에서 노인들은 대접받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지혜로운 노인이 예측한 대로 흐르지 않고, 복잡하고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몇일 전 기업을 하나 방문했다. 영덕에 있는 수산물관련 사업을 하는 3년된 기업이었다. 원래는 영덕에서 큰 횟집을 하다가 그때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좀더 사회에 더 기여하고 싶어서 사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사업 이윤의 60%이상은 사회에 기여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는 사회적 기업이었다. 짧은 시간에 20억 매출을 올릴 정도로 회사는 커졌고, 한단계 더 성장하기 위해 좋은 사람을 뽑는데 자꾸 나간다고, 대표는 회사를 어떻게 성장시켜야 하는지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생존을 걱정하는 중소기업이 대부분인데 성장을 걱정한다면 분명히 좋은 일인데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4차 산업 혁명 시대 중소기업의 성장 방식은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에 대한 나의 대답이 선명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4차 산업 혁명 시대의 특징은 기하급수적 변화와 그 변화의 속도로 인한 기하급수적 성장의 시대라는 것이다. 이 시대의 특징을 가장 잘 활용하는 것이 유니콘으로 성장한 스타트업 들이다. 과거 포츈 500대 기업이 시총 1조에 도달하는 기간이 20년이었다면 지금 스타트업 들이 유니콘에 도달하는 기간은 18년 기준 5.5년이었고 지금은 점점 더 빨라지고 있고, 2010년에 창업한 배민은 2019년 4.8조에 인수되었다.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의 차이는 무엇인가? 단순히 업력의 차이인가? 2015년 창업한 마켓컬리는 처음부터 중소기업이라고 불리지는 않았다. 몇 년 전 블룸버그는 GE를 124년된 스타트 업이라고 불렀다. 우리 중소기업들이 스타트업처럼 이 기하급수적 성장의 시대 혜택을 보기 위해서, 인재들이 일하고 싶어 몰려오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첫째는 시선의 지향이 변해야 한다. 현재가 아닌 미래로 시선의 지향이 변해야 한다. 중소기업이 현재에 시선을 맞추고 있다면 스타트업은 미래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래서 스타트업들은 세상을 바꾸겠다는 담대한 목표(MTP: Massive Transformative Purpose)를: 가지고 있다. 구글은 아주 작을 때부터 “세상의 정보를 누구나 쉽게 사용하고 접근할 수 있게 한다”라는 비전을 가지고 있었고, 배민은 창업기 첫 사명은 ‘정보기술을 활용하여 배달산업을 발전시키자’였지만, 나중에는 ‘좋은 음식을 먹고 싶은 곳에서’라는 좀더 크고 담대한 비전으로 발전시켰다. 이렇게 시선이 미래에 있으니 스타트업들은 그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전속력으로 성장을 지향한다. 그래서 다니엘 테너(Daniel Tenner)는 스타트업을 ”향후 5년 이내에 10배 이상을 성장하기 위한 야망과 목표를 가진 기업이다.”고 정의했다.
둘째는 개방형, 수평적 조직문화에 기반한 일하는 방식이다. 기하급수적 변화의 시기는 코로나와 같은 통제할 수도 예측할 수도 없는 변화가 일상인 시대라는 것이고 이 시대 어떤 조직도 조직내부의 자원만 가지고는 이 변화를 따라갈 수 없다. 넷플릭스의 핵심 경쟁력인 시네매치 알고리즘도 넷플릭스 경진대회를 통한 전세계 천재들의 힘을 빌려 만들어 졌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이 외부 천재들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조직의 시선은 외부로 향해져 있어야 하고 이런 협업을 가능하기 위해서는 조직의 문화가 개방적 수평적 실험을 즐기는 문화이어야 한다.
셋째는 제품이나 비즈니스 모델에서 파괴적 혁신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부분을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세상 대 부분의 창조는 배열을 달리한 편집이라는 얘기가 있다. 시각을 다르게 하면 된다. 맞벌이 부부의 경우 집에 있지 않은 시간에 배송이 되고 그러다 보니 배송과 사용 간에 큰 불일치가 있었다. 마켓컬리는 단지 배송시간을 새벽으로 바꿈으로, 받은 제품을 바로 요리해 아침으로 먹게 함으로써, 배송과 사용 간 불일치를 해결했다. 그 결과 2015년 연 매출 100억원 규모였던 새벽 배송 시장은 2018년 4000억원 규모로, 2019년 1조원 정도로 성장했다. 완전히 새로운 기술의 혁신도 있겠지만 대부분 기존 비즈니스 모델의 변형에서 출발한다. 항공기 제트 엔진을 판매에서 센서부착을 통한 관리 멤버십 모델로 바꿈으로 GE는 124년된 스타트업이라는 (물론 일하는 방식의 변화도 있었지만) 얘기를 들었다. 영덕의 그 업체는 생산하는 간장의 색깔을 흰색으로 바꾸어서 시장의 통념에 도전했다. 어디에나 혁신은 있다. 아니 우리는 매일 매일 혁신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혁신은 인식의 문제일 수도 있다. 나의 혁신에 가치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
“중소기업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과거 중소기업의 성장 방식이 이제는 유용하지 않다는 뜻이다.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대기업으로 가는 성장방식은 파이가 커지는 고도 성장기에 가능한 산술급수적 성장 방식이다. 세계적으로 저 성장으로 대변되는 오늘은,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에서 처럼 힘껏 달려야만 제자리인 시대로, 기하급수적 성장이 아니면 정체 또는 죽음인 시대이다. 종업원 30만명의 GE가 124년된 스타트 업으로 불린다는 얘기에서 GE가 느낀 절실함을 생각해 봐야 한다. 이제 크기에 기반한 중소기업이라는 말은 없어져야 한다. 중소기업이라는 말은 기업을 규정하는 얘기가 아니라 기업 성장 단계의 한 시기를 지칭하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중소기업 모두가 스타트 업으로 거듭나 4차 산업 혁명 시대, 이 기하급수적 성장의 시기를 즐기기를 기대한다면 지나친 바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