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배포 2021-07-16
경북도와 경북경제진흥원이 2018년부터 추진했던 도시청년 시골 파견제 사업이 종료됐다. 이 사업을 통해 지금까지 도시청년 131개팀, 2천517명이 경북에 자리를 잡았다. 이들은 천년이 넘은 마을, 문경 산양면 현리의 카페화수헌을 비롯해 울릉도 한달 살아보기를 진행하는 노마도르, 경산의 버려진 대추나무를 통해 수족관 사업을 하는 코리우드 등 라이프 스타일의 다양성을 통해 지역에 문화를 더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이제 이 사업은 '청년창업 지역 정착 지원사업'이란 이름으로 바뀌어 청년의 정착이라는 보다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진행하게 된다. 이름은 바뀌었지만 2018년 시작부터 로컬크리에이터를 양성해 지역의 문화를 풍성하게 만들어 청년들의 유출을 막는다는 목표는 변함이 없다. 도시청년 시골 파견제 사업의 시즌 2를 시작하면서 로컬 크리에이터에 대한 정의를 다시 생각해본다. 얼마전 문경에서 로컬 개더링이라는 로컬 크리에이터들의 전국 모임을 개최했다. 당시 발표됐던 '제주 해녀의 부엌'이란 팀의 사례를 통해 로컬크리에이터의 조건을 살펴보자. 제주 해녀의 부엌은 식사가 포함된 2시간 반짜리 공연인데, 2019년에 시작했고 금·토·일 공연을 하는데 매회 44석 공연장이 만석일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인기의 비결은 바로 로컬 크리에이터의 3가지 요소가 잘 구현되었기 때문이다.
첫째는 다움이다. 해녀의 부엌에는 한예종 출신 배우 김하원 대표와 제주도 종달리 해녀라는 지역적 특성이 만나 연극+해산물 이야기+식사+해녀와의 인터뷰로 구성된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진정성 있는 2시간 반 다움의 이야기를 만들었다. 나음도 다름도 아닌 다움의 시대다 지금은.
둘째는 감동이 있어야 한다. 감동은 오롯한 집중을 통해 로컬 콘텐츠를 반짝 반짝 빛나게 할 때 가능하다. 해녀의 부엌은 오롯이 해녀를 영웅으로 만듦으로써 감동을 창출하고 있다. 원래 해녀 대부분은 초교도 졸업 못하고 물질을 시작한다. 그삶은 고되고, 그들은 많은 경우 스스로의 삶을 부정하고 감추려 한다.
그러나 해녀의 부엌에서 그들의 삶은 재조명되고 당당해진다. 마지막 인터뷰 시간에 90세 해녀 할머니가 사람들이 자기를 보러 오고, 얘기를 들으러 오는 것이 너무 행복하다고 말하며 눈을 반짝 거리시던게 생각이 난다. 로컬 콘텐츠를 장식으로, 변두리로 몰아서는 감동이 창출되지 못하고 그것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셋째는 선한 영향력이다. 제주도에는 해녀들에 의해 '뿔소라'가 연간 2천t 정도 생산된다고 한다. 문제는 약 80% 정도가 일본으로 수출되는데 엔저(円低)나, 한국제품 불매운동 등으로 지속적으로 가격이 하락하고 있다고 한다. 해녀의 부엌은 시가보다 비싸게 연간 약 5t 정도의 뿔소라를 소비하고 있고, 배민과 손잡고 온라인으로 진출, 뿔소라·톳 등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즉 로컬 크리에이터는 지역의 버려지거나 잊혀졌던 자원을 크리에이터의 눈으로 오롯이 집중해 다시 반짝 반짝 빛나게 하고 이를 통해 지역에 선한 영향력을 만드는 사람인 것이다.
'빈티지(vintage)'란 말이 있다. 원래 이 말은 '와인의 원료가 되는 포도를 수확하고 와인을 만든 해'를 의미한다. 그러나 요즘 '빈티지'란 용어는 일정한 기간을 경과해도 광채를 잃지 않는, 광채를 잃어도 어떤 계기로 돌연 불사조와 같이 되살아나는 매력을 가진 것을 의미한다. '오래되어도 가치가 있는 것(oldies-but-goodies)', 혹은 '오래되어도 새로운 것(new-old-fashioned)'을 말한다.
문경 화수헌의 화수는 꽃과 나무처럼 자손이 번성하라는 소망을 담고 있는 말이다. 이제 빈티지처럼 새로운 '화수'의 시대 시작이 로컬 크리에이터를 통해 활짝 열리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