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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비 Jul 07. 2024

우리는 왜 회고를 써야 할까 : 나라는 캐릭터 만들기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답하기란 쉽지 않다. 


단순히 내 이름을 말하기엔 그게 나의 전부가 아니고, 외부적 조건을 나열하자니 꺼림칙하다. 내 생각이 곧 나라고 하기엔 너무나 일부분만을 다루는 것 같다. 이 질문을 파고들다 보면 마치 끝없는 땅굴을 파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인지 우리 인생에서 이런 질문을 진지하게 고민할 기회가 그리 많지 않다.


그 드문 기회 중 하나가 바로 이직을 준비할 때다. 새로운 회사에 이력서나 포트폴리오를 제출하는 것은 단순한 경력 나열을 넘어서, 과거의 경험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선언하는 것과 같다. 마치 할아버지가 손주들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듯, 동생이 형에게 자신의 모험을 자랑하듯, 친구들끼리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듯, 우리는 이직의 순간에 우리의 삶을 하나의 이야기로 재구성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종종 깨닫게 된다.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우리 경험의 의미와 가치를 소홀히 여겼는지를. 과거를 돌아보면 수많은 일터에서의 경험들 속에 숨겨진 교훈과 의미들이 보인다. 한때는 무의미하다고 여겼던 프로젝트가 실은 우리 커리어의 중요한 전환점이었음을,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일들이 타인의 눈에는 대단해 보였음을, 너무나 힘들었던 시간들이 사실은 가장 많이 배우고 성장한 시기였음을 깨닫는다.


이런 '깨달음의 순간들'은 과거를 되돌아보고 그 속에서 의미를 찾으려 할 때 발견되는 보물과도 같다. 우리의 정체성이 우리가 스스로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로 만들어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회고를 통해 새로운 맥락의 이야기를 만드는 것은 새로운 '나'라는 캐릭터를 창조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렇기에 주기적으로 인생을 되돌아보고, 과거의 경험들을 새롭게 해석하여 진부해진 '나'의 이야기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은 자신에게 실망한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강력한 행위다. 이는 꼭 이직의 순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매일 아침 일기를 쓰거나, 잠들기 전 하루를 되새기는 짧은 순간에도 우리는 우리의 이야기를 조금씩 다시 쓸 수 있다.


이렇게 우리가 겪은 하루하루라는 날실과 씨실을 회고라는 붓으로 색칠해 나가면서, 우리는 점점 더 흥미진진한 이야기 속에서 살아가는 매력적인 캐릭터로 우리 자신을 만들어갈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회고가 단순한 과거 회상을 넘어, 우리 삶의 필수적인 부분이 되어야 하는 이유다. 회고는 우리를 더 나은 버전의 우리로 만들어가는 강력한 도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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