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c Miller - [Swimming]
간혹 분당선을 타고 모란역을 지날 때마다, 나는 흠칫하고 놀라게 된다. 꾸릿한 세월을 온전히 담아내고 있던 승강장의 파란색 타일의 벽이 인공적인 흰색의 무언가로 뒤덮였다. 깔끔하고 미래적이다. 내가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면 미안하지만, 그 두 표현 모두 모란역과 어울리지 않는다. 지금 모란역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
몇 년 전 내가 사회복무요원, 소위 공익으로 근무했던 모란역은 내가 살면서 본 공간 중 가장 솔직한 곳이었다. 그리고 난 그 투명함이 싫었다. 그곳은 항상 혼돈으로 가득했다. 아무리 혼돈이 가득한 세상이라지만, 혼돈을 숨기지 못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평화롭지 않았다. 잠시 역사 안이 잠잠해지는 것 같아도, 그것은 평화가 아닌 다음 전쟁을 준비해야 하는 시간이라는 것을 역무실에 있는 직원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5번 출구에는 성대한 모란 시장이 어르신들을 불러 모으고 있었고, 반대편인 2번 출구 쪽에서는 화려한 번화가가 젊은이들을 홀리고 있었다. 그 한가운데, 땅 밑 속에서는 내가 신경을 잔뜩 곤두 세우고 있었다.
우습지만 열댓 명 되는 모란역 공익들 사이에도 짬(?)이라는 것이 있었다. 짬이 차면 찰수록 야간 근무 수가 늘어났는데, 야간 근무는 한번 출근해서 이틀 치의 근무 수를 채울 수 있었고 막차~첫차 사이에는 사실상 자유시간인 점, 전반적으로 근무 강도도 주간에 비해 낮아 많은 이들이 선호했다. 나 역시 매월 늘어가는 야간 근무 수를 보고 뿌듯해하며, 그냥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게 나의 2018년이었다.
우울의 감정을 처음 직면한 것도 그맘때쯤이었다. 야간 근무가 끝나고, 누군가의 출근 열차를 타고 퇴근을 했다. 밝게 떠오르는 해가 내내 나를 쫓아왔지만, 내 방 커튼 앞에서 멈췄다. 그럼에도 나는 잠에 들지 못했다. 내가 누워있던 침대는, 아주 잔잔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내 감정은 배멀미를 했다. 내 마음속은 지나치게 고요했지만, 조금도 쉬지 않고 흔들렸다. 아주 조금씩, 쉬지 않고 계속. 그래서 나는 그런 작은 일렁임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강력하고 큰 해일이 나를 뒤덮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 고요함을 도무지 견딜 수가 없었다.
침대에서 멀미를 하느라 반나절이 지나도록 잠에 못 드는 날이 많아졌다. 멀미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기관은 언제나 항상 귀였다. 그래서 나는 키미테를 붙이듯, 일렁이는 침대에 누워 이어폰을 꽂았다. 그 당시 발매되었던 맥 밀러의 [Swimming]이었다. 참 음울한 앨범이었다. 그전까지 맥 밀러에 대한 나의 이미지는 약에 취해 들떠있는 미국의 소년이었는데. 이런 앨범을 내기까지 도대체 무슨 시간을 거쳤던 걸까. 하고 생각했다. 미디어에서 맨날 떠들어대는 그의 연애사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약을 너무 많이 해서일까. 아니면 그도 그저 나처럼 침대가 일렁이는 게 버거웠던 것일까.
그냥 그런 생각과 함께 가사를 찾아보지도 않고 몇번이고 그 앨범을 들었다. 2019년 9월 7일, 맥 밀러가 세상을 떠났다. 갑작스러웠다. 허탈한 마음이 시간이 지나도 좀처럼 가시지 않았고, 참 간사하게도, 그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야 난 그가 생전에 발매한 마지막 앨범을 진중하게 듣기 시작했다.
첫 곡인 'Come Back to Earth'에서 [Swimming]을 설명하는 한 줄이 있다.
And I was drowning, but now I'm swimming
나는 익사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헤엄을 쳐
- Mac Miller, 'Come Back to Earth'
물이 없으면 살지 못하지만, 물 안에서는 살 수 없다. 그래서 나의 감정은 물과 같다. 감정에 익사하지 않으려면, 일렁이는 감정과 호흡하기 위해서는 헤엄을 쳐야 한다. 저 가사 한 줄은 내게 크게 와닿았다. 물속에서 벗어나는 희망이 아닌, 그 물속에서 살아가는 방식을 이야기한 것이 좋았다. 그것은 지나치게 현실적이었지만, 또 동시에 나의 현실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태도였다. 해치우거나 도망가거나. 양자택일이었던 나의 삶. 헤엄치기에는 몸에 힘이 너무 들어갔었다.
2022년. 여전히 나다. 어느 순간부터였는지 침대는 일렁이지 않고, 시끄러운 세상에서 한 발짝 떨어지면 내 마음의 고요함을 느끼기도 전에 곯아떨어진다. 내가 헤엄을 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살기 위해 첨벙거리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종종, 아닌 어떤 초월적인 공간에서 물결을 가르며 원을 그리고 있는 내 모습을 떠올리며 잠에 든다.
맥 밀러의 인생에 대해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없다. 왜 끝내 그가 약물 과다 복용으로 세상을 떠나야 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가 마지막 순간에 행복했는지, 아니면 그 어떤 미련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었는지 나는 모른다. 그가 적은 가사처럼 그도 나와, 나도 그와 다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앨범의 마지막 트랙 'So it goes'가 말하는 것처럼, 그냥 그렇게 흘러가는 거였으면 좋겠다.
그냥 그렇게 흘러가다 보니, 모란역이 꾸릿한 파란색 타일을 숨기는 날까지 왔다.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는 뜻이다. 2018년을 돌아본다. 그때의 나에게 전해줄 위로의 말은 없지만, 숨김없는 모란역 승강장에서 퇴근 열차를 기다리고 있을 나에게 [Swimming]에서 노래 한곡을 골라주고 싶다. 이 가사 한 줄이 닿았으면 한다.
Yeah, okay you gotta jump in to swim
헤엄을 치려면 일단 물에 뛰어들어야겠지
- Mac Miller,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