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Cole - [The Off-Season]
농구가 내 삶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0대에 들어서고 나서부터 매년 조금씩 줄어들었다. 최근에서야 다시 농구공을 만지고 있지만, 매번 한계를 맛보고 있다. 코트를 왕복하기도 버거워진 체력, 덩치 좋은 형님들 사이에서 한 없이 왜소해지는 피지컬, 그리고 원체 높지 않았지만 전체적으로 하락한 기본 능력치가 절망스럽다. 그럼에도 중학생 때부터 농구를 해왔던 친구들과의 팀워크, 농구는 쉬었어도 시청은 쉬지 않았기에 유지하고 있는 농구 센스에 의존하여 상대팀에 어떻게든 비비는 모습이 대견할 나름이다.
하지만 어제의 패배는 꽤 참혹했다. 체육공원에서 만난 그 형님들은 피지컬, 실력 그리고 트래쉬 토크까지 모든 면에서 우리보다 우위였다. 넘을 수 없는 벽에 몸이 부서질 때까지 부딪힌 결과는 5연패였나, 6연패였나. 공원 불이 꺼지기 직전까지 진행된 한바탕의 농구가 끝나고 코트 바닥에 주저앉아 거친 숨을 몰아쉬며 깊은 패배감을 음미했다. 오랜만에 농구를 못해서 분했다. 그것은 진실된 감정이었다. 내게도 아직 이런 승부욕이 남아있다니. 내심 기쁜 마음이 들었다.
농구에 있어서 나는 언제나 언더독이었다. 농구와 어울리지 않았던 학창 시절 나의 작은 키도, 순수 열정 이외에는 크게 내세울 게 없었던 중/고등학교, 대학교 동아리 팀도. 딱 언더독과 어울렸다. 그런 내게 분한 감정과 승부욕은 익숙한 것이었다. 반전을 담당하는 역할은 오히려 부담이 없다. '언더독'이라는 역할은 나의 동기부여였고, 내가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최적의 컨디션이었다. 그래서 항상 내가 속한 팀의 사진이 표지로 사용되는 일은 없었다... 경기를 본 사람들의 기억 속 간신히. 아니 그냥 우리들의 기억 속 큼지막하게 한 컷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슬램덩크는 '언더독' 서사를 훌륭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의심의 여지없이 뛰어난 작품성과 별개로, 그 이야기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북산이 정말 매력적인 언더독이기 때문이다. 북산은 지역 내에서도 주목받지 못하는 팀이었고, 강백호는 농구를 시작하기 전에는 그냥 양아치였다. 만화를 보는 독자들은 북산의 잠재력을 알고, 그에 대한 믿음도 있다. 그들의 능력을 어서 빨리 세상에 보여주기를 소망하게 된다. 북산과 강백호는 무려 24권 분량 동안 증명을 하지만 지겹기는커녕 오히려 아쉽다. 북산은 정말 매력적인 언더독이다.
도전적인 기회가 생길 때마다, 난 북산의 마음가짐을 내재화하고자 했다. '어떻게 봐도 지금 상황에서 나는 도전자이지만, 이 기회에 보여줘서 관중들을 놀라게 해야 한다.' 같은 생각을 말이다. 하지만 그 마음가짐은 점점 차게 식어갔다. 일상의 대부분은 북산의 명경기보다는 강백호의 여름 특훈에 가깝다. '이게 진짜 경기에서 통할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일단 개수를 채워야 하는 그런 시간 속에서 버텨야 한다. 물론 강백호처럼 발전하는 스스로를 보며 즐겁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당장 보이지 않는 성과를 다뤄야 한다.
나도 북산도 언더독이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북산은 단지 기회가 조금 부족했던 재능러들의 모임이었다. 노력한 만큼 성과를 낼 수 있는 그런 팀이었다. 강백호의 몇 개월 간의 폭풍 성장은 약간은 비현실적이다. 하지만 그 비현실성이 나를 위로한다.
여기에 날 위로하는 또 한 명의 슬램덩크 등장인물이 있다. 농구 명문 해남의 슈팅 가드 홍익현. 160cm, 42kg의 왜소한 피지컬을 보유하고 있고 농구부에 들어와 농구를 처음 해본 초보자였다. 그러나 훈련 강도가 가장 높기로 소문난 해남에서 견디고 끝내 살아남아 해남의 일원으로서 활약하고, 팀원들의 선망을 받는다. 한마디로 오기로 버텨낸 것이다.
경기장에 고글을 쓰고 등장한 그가 인상 깊은 퍼포먼스를 보여준다는 결과보다, 누가 봐도 남들보다 나은 것이 없는 상황에서도 버텨낸 그의 모습에 묘하게 마음이 갔다. 여러 방면에서 나는 강백호가 아니었다. 이를 깨닫고, 본작에서 배경에 적힌 굵은 명조체 몇 줄로 설명된 홍익현의 삶이 더욱 궁금해졌다. 도대체 홍익현은 어떻게 그 시간들을 버틸 수 있었을까? 모든 조건이 그에게는 불리한 농구라는 게임에 그는 왜 그렇게 진심이었을까?
홍익현은 내가 학창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농구가 그냥 너무 좋았던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순수한 열정으로 농구에 임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어쩌면, 그냥 별 생각이 없었을 수도 있다. 정말 뻔한 대답이어서 화가 날 지경이지만, 그에게는 팀 훈련을 버텨낸다는 것 이외에는 다른 옵션이 없었을 확률이 높다.
작년에 발매한 제이콜의 [The Off-season]은 복잡한 생각과 항상 함께하던 나에게 "제대로 해!"라는 메시지를 던져 준 앨범이었다. 농구 선수들에게 "오프 시즌(비시즌)"은 이전 시즌을 마치고 보내는 휴식기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시즌에 향상된 퍼포먼스를 보여주기 위한 준비기이기도 하다. 강백호의 여름 특훈도, 홍익현이 버텨낸 해남의 훈련도, 한 단계를 높이기 위한 오프시즌이다. 제이콜은 앨범의 다큐멘터리에서 다음과 같이 이 앨범을 설명했다.
"...그러고 나서, 나는 농구를 생각했어. 농구하기를 좋아했는데, 21-22살 그쯤에. 스스로에게 물어봤지. 왜 너는 농구로 해내지 못한 거야? 왜냐면 (욕설) 훈련을 하지 않았잖아! 바깥에 나가 공을 튀기며 뭔가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진짜 선수들은 훈련장에서 트레이너들과 제대로 된 훈련을 하며 하루에 슛을 1,000개는 던진다고. 근데 저기 멍청이들은 아이버슨을 흉내 내면서 뭔가를 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거지."
"20년 뒤에 음악 커리어를 돌아봤을 때, 음악으로 성공하지 못한 이유가 제대로 노력을 붓지 못해서라면. 용납이 안 되는 거지. 그때부터 훈련을 하는 것처럼 음악을 만들었어. 매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비트를 만들고, 가사를 쓰고. 이 앨범도 같은 컨셉인거지"
- J Cole, The Off-Season 다큐멘터리 中
언더독은 오로지 발전만을 생각하는 오픈 시즌이라는 지독한 시간을 보내야 한다. 강백호가 아니라면, 짧은 시간 안에 성과가 눈에 보이지 않는 그런 시간일 수도 있다. 그때 발생하는 초조함과 부정적인 기운은 발전하고자 하는 동기보다 강할 때도 많다.
하지만 언더독은 초조할 필요가 없다. 언더독은 기대와 싸우지 않고 부족한 기회와 싸운다. 그렇기 때문에 홍익현처럼, 제이콜처럼 시즌이라는 기회를 생각하며 오프시즌을 버텨내야 한다. 내가 두려운 것은 초조함, 기회에 대한 열망과 간절함 조차도 옅어지는 그런 순간이다.
나에게 아직까지 언더독의 기운이 살아있을까. 승부가 예상이 가는 승부에서 너무 모르게 너무 많이 패배한 나머지, 나조차도 언더독 신화를 믿게 되지 않게 된 것일까. 송정동에서의 농구 한바탕은 떠올리게 했다. 강백호, 홍익현, 제이콜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거의 매일 공을 튀기던 중학교 시절의 나를. 내일은 오랜만에 헬스장에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