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이 러브

BROCKHAMPTON - [GINGER]

by 창문밖일요일

릴스와 쇼츠같은 숏폼 콘텐츠들이 늘어나면서, 넋 놓고 짧은 영상들에 눈을 맡기는 시간이 늘어났다. 인스타그램에 지인들이 올린 릴스를 소리를 키지도 않고 흘려 본다. 손가락으로 쭉쭉 영상들을 올리다, 노을을 배경으로 디제잉을 하는 루카의 모습이 나타났다. 음악 크레딧 부분을 확인하고 조심스레 소리를 켰다. 브록햄튼(BROCKHAMPTON)의 [GINGER] 앨범에 수록된 동명의 곡 'GINGER'. 참 좋아하는 앨범이지만, 곡 자체는 익숙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방금 전과는 조금 다른 의미로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루카는 나의 교환학생 시절의 많은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는 친구다. 브라질에서 온 루카와 처음 만난 날, 루카는 나의 차분함이 마음에 든다고 뜬금없이 고백했다. 브라질에서는 차분한 친구를 찾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나도 그에게서 비슷한 인상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 대화는, 우리가 만난 지 1시간도 채 안되었을 때 이루어졌다.


그러나 우리가 함께 보낸 파티의 밤들은 차분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날 밤, 서로 브록햄튼을 좋아하는 것을 알게 되고 루카의 집에서 스피커 볼륨을 키웠다. 그 집에서 보냈던 밤들은, 힘껏 취한 상태로 음악을 사람들과 함께, 순수하게 즐기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해 줬다.


그런 의미에서 브록햄튼은 우리의 커넥션이었다. 브록햄튼은 여러 인터뷰에서 자신들을 릴 우지 버트와 저스틴 비버의 사이를 지향하는 보이그룹이라고 정의했다. 내가 이를 말해주자, 크게 감명받은듯한 루카의 표정이 기억에 남는다. (루카의 부탁에 나는 이 내용을 그의 브라질 친구들에게까지 보이스 메시지로 전했다.) 릴 우지 버트와 저스틴 비버의 사이라니. 놀랍게도 그들은 어느 한국인과 어느 브라질인의 사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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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는 낭만적인 친구였다. 루카는 '사랑'과 같은 단어를 입 밖으로 꺼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루카에게 사랑은 단순히 연인 사이의 감정을 정의하는 단어가 아니었다. 그것은 루카가 사람을 대하는, 삶을 대하는 태도였다. 해가 떠있지 않은 거의 모든 시간에 루카는 술과 떨에 취해 있었다. 뻗어 있다가도, 좋은 음악이 나오면 눈을 떠 리듬을 타며 감탄하곤 했다. 그에게 음악은 분명 사랑이 표현되는 또 하나의 모습이었을 거다. 브록햄튼의 노래를 틀고 있는 릴스 속 루카의 모습이 그랬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미처 답장하지 못한 그의 최근 메시지가 떠올랐다. 자신의 첫 믹스셋이라는 설명과 함께 사운드클라우드 링크를 보내왔다. 믹스셋의 이름은 'DJ Love(디제이 러브)'. 설명란에는 'For lovers(사랑꾼들을 위하여)'라는 단출한 두 단어가 적혀 있었다. 몇 개월도 더 전에, 새로운 연인을 만나 자신이 역대급으로 로맨틱해졌다는 근황을 전하던 게 불현듯 떠올랐다. 지나치게 정직한 제목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디제이 러브라니. 얼마나 뻔하면서 아무도 안 할 이름인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브라질의 여름을 떠오르게 하는 믹스셋이었다. 브라질은 지금 겨울일 텐데, 계절 개념으로는 가둘 수 없는 브라질의 기본 바이브인가 싶었다. 뭐 어쨌든 한국의 습한 여름과 하나도 어울리지 않는 것이 꽤 마음에 들었다.


왓쓰앱을 키게 되면, 나도 그때보다 더 많이 로맨틱해졌다고, 그래서 더 즐겁게 들었다고.

그렇게 피드백을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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