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은 그리는 사람을 닮는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고개를 갸웃했다.
적어도 나에게는, 별로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나는 밖에 나가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집순이’라는 말로 가볍게 표현되곤 하지만, 1년 전까지만 해도 ‘붙박이장’이나 다름없었다. 그래도 요즘은 하루에 두 번씩 바깥바람을 쐬니, 장족의 발전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데 그런 내가 그리는 그림에는 계절감이 뚜렷한 야외 풍경이 유독 자주 등장한다.
벚꽃이 흐드러진 봄 거리와 청량한 여름 하늘, 단풍이 내려앉은 가을 숲길, 그리고 눈 내리는 겨울 풍경까지.
직접 그 시기를 온몸으로 느끼지 않아도, 그림을 그리는 일만으로도 계절을 충분히 만끽하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바람의 온도가 달라질 때면, 그에 어울리는 장면을 한 장쯤은 남겨두려 한다.
색감도 마찬가지다.
평소 검은색이나 회색 같은 어두운 옷만 즐겨 입지만, 내 그림은 부드럽고 따뜻한 파스텔톤으로 가득하다.
그림 속 인물들에게도 실제로는 내가 절대 입지 않을 법한 옷들을 입힌다.
어른스러운 롱스커트, 샛노란 나시 원피스, 포인트가 되는 빨간 스카프 같은 것들.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치마와도 작별하고, 1년 내내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지내는 나와는 사뭇 다르다. 어쩌면 현실에서는 감히 시도하지 못하는 스타일들을 그림으로 대리만족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물론 옷에 워낙 문외한이다 보니, 그리면서 "이 조합, 혹시 패션 테러는 아닐까?" 싶은 순간도 있지만 다행히 내 그림에는 인물이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가끔 그들의 옷차림을 보면서 "얘는 나보다 옷을 훨씬 잘 입네" 하고 헛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그림과 나 사이에는 분명한 간극이 있다.
내 그림을 여기저기 열심히 소개하고 다녀주는 대학친구, 일명 ‘마케팅 부장’ J의 말에 따르면 사람들은 작가인 나를 부드럽고 감성적인 이미지로 떠올린다고 한다. 나라도 그렇게 생각할 것 같다.
그림만 본다면, 그런 오해를 살 만하다.
그림은 정말 그리는 사람을 닮는 걸까.
나처럼 예외로 느껴지는 경우도 드물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이의 그림 속에는 일상에서 온전히 느끼지 못한 감정이나 결핍, 혹은 마음 깊이 간직한 열망이 본인도 모르게 스며들어 있는 것은 아닐까.
무심코 지나쳤던 풍경,
익숙하지 않은 옷차림,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낯선 도시의 계절 같은 것들.
겉보기엔 전혀 딴판인 것처럼 보이던 것들조차, 사실은 가장 은밀한 방식으로 무의식의 나를 드러내고 있었던 것일지도. 닮고 싶었지만 닮지 못해, 그림 속에서만 겨우 존재하는 그런 ‘나’의 얼굴 말이다.
별개의 것처럼 여겨졌던 장면 어딘가에 나의 일부가 숨어 있음을 인정한다면, 그림은 결국 내 모습을 비추는 거울임을 받아들이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그림과 나 사이의 틈을 수용하는 일이자, 스스로를 더 깊이 들여다보는 과정일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