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_15년째, 가늘고 길게 이어온 취미

클레이아트

by 찬H

그림을 제외하고는, 취미로 무언가를 시작해 2년 이상 이어간 적이 거의 없다.

그런데 그런 내가 15년째 놓지 못하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클레이 만들기다.


그림 독학을 막 시작했을 무렵, 클레이에도 흥미를 느껴 잠시나마 ‘클레이 아티스트’를 꿈꾼 적도 있다.

손끝에 전해지는 말랑한 촉감, 손바닥 위에서 서서히 형태가 잡혀가는 과정, 그리고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빠져드는 그 몰입감이 나를 단숨에 사로잡았다.




클레이 작업은 즉흥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먼저 키보드와 태블릿을 치우고, 책상 위를 물티슈로 꼼꼼히 닦는다. 완성한 아이들을 올려놓을 건조대를 꺼내고, 작업하는 동안 틀어놓을 영상도 미리 리스트업 한다. 마지막으로 손을 깨끗이 씻은 뒤에야 비로소 시작할 수 있다. 이 준비 과정이 어느새 하나의 ‘의식’처럼 굳어졌다.


한 번 작정하면 2-3일 동안 그림은 아예 손을 놓고 클레이에만 몰두한다. 진행 중인 외주 작업이 없고, 포트폴리오가 충분히 채워져 마음이 편안할 때만 클레이를 꺼낼 수 있어, 그 시간이 더욱 특별하다. 이번 7월 말에 다시 꺼내든 것도 무려 2년 만이었다.


하루 종일 조몰락거려도 손가락 두세 마디 크기의 것들을 15~20개 남짓 만드는 게 전부다. 실력은 15년 전이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어 보이고, 오히려 손이 굳은 건 아닌가 싶은 순간도 많다.



↑2012-2013년에 만들었던 동물들



↑2014년에 만들었던 눈사람들





내가 만든 클레이 중 가장 ‘나답다’고 할 수 있는 캐릭터는 2014년 말부터 본격적으로 만들기 시작한 ‘꺼꾸리’다. 눈사람이 물구나무 선 모습을 형상화한 캐릭터로, 그 거꾸로 선 모습이 왠지 나를 닮았다고 느꼈다. 정석적이지 않은 인생, 그리고 밤낮이 뒤바뀐 생활 습관이 이 모습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듯했다.


2014.12 作



꺼꾸리의 얼굴은 단순하다.

단추구멍 같은 콩알 눈, 당근을 박은 듯한 기다란 코(혹은 동그란 빨간 코), 그리고 점점이 찍힌 입이 전부다. 하지만 눈의 크기와 간격, 코 모양, 입꼬리의 각도만 조금 달라져도 완전히 다른 성격을 가진 캐릭터처럼 보인다.


시간이 흐르면서 꺼꾸리에도 다양한 변주가 생겼다. 하얀 눈사람뿐 아니라 초콜릿 쿠키처럼 보이는 갈색 꺼꾸리, 머리카락이 있거나 히어로 슈트를 입은 버전도 포함되었다. 사실은 남은 자투리 클레이를 뒤섞어 만든 부산물이지만, 의외로 사람들이 “이게 제일 귀엽다”고 말하곤 한다.


↑2016년에 만들었던 꺼꾸리들





완성된 꺼꾸리는 일주일 정도 바짝 건조한 뒤, 지퍼백에 완성한 날짜를 적고 밀봉해 보관한다.


이후의 행방은 제각각이다. 지인을 만날 때 가볍게 건네기도 하고, 내 일러스트 엽서를 구매해 주신 분들께 깜짝 '덤'으로 보내드리기도 한다.


입양 보낼 때는 이렇게 캡슐에 넣어서 안전하게ㅎㅎ


예상치 못한 어느 날 전해지는 이 작은 선물은 받는 사람에게 잠깐의 웃음을 안겨준다. 물론 입양 보낸 꺼꾸리가 언젠가 부서지고 버려질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하면 아쉬움이 남는다. 그럼에도 건네는 찰나에 눈앞에 피어나는 환한 표정이, 나의 허전한 마음을 따스하게 채운다.




↑가장 최근, 2025년 7월에 만들었던 꺼꾸리들

스파이 꺼꾸리와, 돌멩이 꺼꾸리, 배트맨에 나오는 로빈을 모티브로 만든 꺼꾸리가 새로 탄생했다!ㅎㅎ




내가 쓰는 재료는 ‘아이클레이’다.

어린아이들도 사용할 수 있는 저렴하고 부드러운 초보자용 클레이로, 충격과 물에 매우 약하다. 먼지가 쌓이면 닦아내기 어렵고, 부서지기도 쉽다.


그래서 한 번은 전문가용 클레이를 시도해 본 적이 있다. 하지만 가격이 높아 실패했을 때의 손해가 컸고, 굳히려면 오븐에 구워야 하는데 집의 오래된 오븐은 제 역할을 못 했다. 일부는 타버리고, 일부는 울퉁불퉁하게 변형되어 결국 슬픈 결과만 남았다...


망가질 수도 있고, 때가 타도 어쩔 수 없는 걸 왜 이렇게 오래도록 계속 만들게 되는 걸까.

그 답은 단순하다. 만드는 과정 자체가 너무나 즐겁기 때문이다!


색과 질감을 섬세히 조율하며 형태를 완성해 가는 즐거움,

눈코입의 위치를 고민하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순간,

그렇게 새로 태어난 꺼꾸리를 마주하는 반가움…

이 모든 감정이 나를 15년 동안 클레이 앞에 다시 앉게 만들었다.




가끔 꺼꾸리들이 공식 피규어로 제작되어 판매되는 모습을 상상하곤 한다. 정갈한 박스 안에서 미소 짓고 있는 꺼꾸리를 떠올리면, 괜히 웃음이 난다. 하지만 나는 SNS 홍보에 적극적이지도 않고, 단독으로 판매할 계획도 없다. 그저 말 그대로 ‘꿈’ 일뿐이다.


그래도 언젠가,

누군가의 책상이나 선반 위에서 내가 만든 꺼꾸리가 오래도록 물구나무를 서 있는 모습을 보고 싶다.



2023.02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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