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광인 동시에 즉흥주의자
일상에서의 나는 작은 변수에도 크게 흔들린다.
뜻밖의 일이 생기면 불안하고,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면 쉽게 긴장한다.
그런데 그림을 그릴 때만은 그 성향이 정반대로 뒤집힌다. 통제 대신 즉흥을 즐기고, 계획 대신 우연을 받아들인다. 보통이라면 감당하기 힘든 ‘변수’들이, 작업할 때는 오히려 흥미로운 요소가 된다. 그래서인지 작업에 들어갈 때조차 대부분의 작가들과 달리 스케치를 꼼꼼히 하지 않는다. 어차피 밑그림이 있어도 그대로 색칠하지 않을 걸 알기 때문이다. 손이 가는 대로, 떠오르는 대로 색을 얹으며 그려나가는 경우가 많다.
작업의 순서도 일정하지 않다. 주제를 먼저 그리기도 하고, 배경부터 잡아가기도 한다. 일단 무언가 하나를 그려 넣고 나면, 그때부터 본격적인 고민이 시작된다.
“여기에 어떤 이야기를 얹으면 좋을까?”
내 작업은 결국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답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아이디어가 막히면 몇 달이 훌쩍 지나가고, 길게는 몇 년 동안 ‘일시정지 폴더’에 묵혀두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지난주에 브런치에 올린 <수집가의 방>은 4년 전 그려둔 배경을 가끔 꺼내어 들여다보다, 이제야 갑자기 주제가 떠올라 마무리했다.
작품 크기가 커서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하지만, 사실 더딘 부분은 머릿속에서 이야기를 조립하는 일이다. 그래서 내 개인 작업물은 형태를 완전히 갖추기까지 평균 두어 달은 족히 걸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방식이 좋다.
단조로운 일상이 주는 안도감과는 달리, 그림까지 모든 과정이 뻔하다면 금세 흥미를 잃어버릴 것이다. 나조차도 작업의 다음 한 걸음을 짐작할 수 없다는 점— 그 불확실성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며, 끝없이 몰입하게 한다.
처음 상상한 대로 끝난 그림은 거의 없다. 막상 채색에 들어가면 시작할 때 품었던 이미지는 늘 변형되고, 사라지고, 새롭게 태어난다. 그 변화의 흐름이 언제나 놀랍다.
작업 중에 즉흥적으로 요소를 더하기도 하고, 다음 날 변덕을 부리며 과감히 없애버리기도 한다. 전날 공들여 그려 넣은 부분을 지워도 아쉽지 않다. 디지털 작업이 주는 자유다. 사라진 조각은 언젠가 다른 그림에서 다시 쓰일 수 있으니, ‘삭제’라기보다 잠시 스위치를 꺼놓는 것에 가깝다.
물론 의뢰작업은 다르다.
누군가의 요청을 받았을 때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단계를 설계하고, 디테일한 스케치로 방향을 고정한다. 의뢰인은 결과물을 가늠할 수 있기를 원하기에, 그 기대에 부응하려면 나 역시 통제력을 발휘해야 한다. 하지만 그럴 때조차도 마음 한편에는 이런 생각이 스친다.
“만약 개인 작업이었다면 지금쯤 삼천포로 빠져 있겠지.”
결국 내 그림은 ‘일상 속의 나’와 ‘그림 앞의 나’가 얼마나 다른지를 드러낸다. 일상에서의 나는 예측을 갈망하는 사람이고, 그림 앞에서는 예측을 거부하는 사람이다. 통제광이면서 동시에 즉흥주의자.
그림이라는 매체는 그 모순을 가장 너그럽게 받아주고, 그 모순 덕분에 나는 계속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아마 이것이 내가 그림을 좋아하는 이유일 것이다.
완성이라는 목표보다, 그 여정 속에서 나조차 알 수 없는 가능성을 마주하는 순간들이 나를 다시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나는 조금씩 다른 ‘나’를 발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