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마운트, 밤하늘의 별을 찾아서

어두운 곳을 찾아 헤매기는 처음입니다만

by 찬희

아침부터 짐을 실어 나르느라 분주했다. 트렁크에 캐리어 네 개를 욱여넣고는, 그 위에다 배낭 세 개와 전기밥솥까지 쌓아놓았다. 흡사 야반도주를 하는 느낌이었다. 엄마는 이민 가는 거냐며 실소를 터뜨렸다. 짐을 한가득 실어 무거워진 자동차는 조용한 엔진음을 내며 베일마운트로 향했다.

이민 가는 거 아닙니다

베일마운트는 하나의 경유지에 불과했다. 밴쿠버에서 재스퍼를 지나 캘거리까지 가려면 1200km를 달려야 했기 때문에, 베일마운트를 베이스캠프로 잡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구불구불한 도로를 몇 시간이고 달렸다. 캐나다도 미국처럼 직선도로가 끝도 없이 이어져 있을 것 같았는데, 산악 지대라 그런지 길이 구불구불했다. 사실 터널을 뚫을 법도 한데, 이 나라는 자연을 함부로 훼손하지 않았다. 물론 땅덩어리가 넓기도 하겠지만.

점심 즈음, 우리는 캠룹스에 있는 코스트코에 도착했다. 뜬금없이 웬 코스트코냐고 하겠지만, 사실 밥을 먹을 데가 마땅치 않았다. 밥도 먹고 장도 볼 겸, 우리는 카트를 끌고 안으로 들어갔다. 평일인데도 불구하고 코스트코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들어가자마자 거대한 패들보드가 냅다 꽂혀있었다. 그야말로 미친 존재감이었지만 아무도 사는 것 같지는 않았다.

캠룹스의 코스트코는 생각보다 다채로웠다. 겨울스포츠 강국답게 하키채가 메인으로 팔리고 있었고, 큼지막한 포켓몬스터 인형도 박스에 한가득 담겨있었다.

캐나다의 코스트코

코스트코의 피자는 맨홀보다도 컸다. 딱 봐도 혈관을 틀어막을 것 같은 음식들이지만, 가성비에 이만한 것도 없다. 피자와 핫도그, 감자튀김과 콜라 두 잔을 모두 합쳐도 3만 원이 채 안 나왔다.


베일마운트까지 가려면 우리는 또 차를 타고 주구장창 달려야 했다. 선팅이 안된 차 안으로는 강렬한 햇빛이 그대로 들어왔다. 선팅이 안되어 있다니, 처음엔 의아했지만 알고 보니 나라에서 차량 선팅에 규제를 두고 있었다. 때문에 우리는 차 안에서도 햇빛을 피하기 위해 창문에 종이를 끼워 넣거나, 모자를 꾹 눌러써야 했다. 종종 벙거지를 얼굴에 덮어쓰고 깜빡 잠이 들곤 하면, 엄마와 아빠가 조곤조곤 대화하는 소리가 기분 좋게 나를 깨웠다.

저녁 6시, 우리는 베일마운트에 위치한 숙소에 도착했다. 체크인을 하러 프론트 데스크를 찾아갔지만 데스크는 텅 비어있었다. 대신에 나는 벽에 붙어 있는 지도를 발견할 수 있었는데, 이곳을 묵었던 수많은 투숙객들이 꽂아둔 핀이 곳곳에 박혀 있었다. 그런데 그 넓은 러시아가 가장 텅 비어있었다. 러시아 사람들이 이곳을 잘 방문하지 않는 건지, 아니면 러시아 사람들이 이런 핀 꼽기에 무심한 건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당신은 어느 나라에서 왔나요

지도를 빤히 들여다보고 있던 도중 반가운 모국어가 들렸다.

"안녕하세요."

한국말로 인사를 건넨 분은 다름 아닌 머리가 희끗한 한국인 사장님이셨다. 사장님은 우리가 반가우셨는지 꽤 오랫동안 대화를 이어나가셨는데, 심지어 한국인이라며 객실도 특별히 업그레이드해 주셨다.

우리가 묵을 방은 2층이었다. 방 키를 받아 들고 삐걱거리는 목조 계단을 오르자, 침대가 네 개 딸린 넓다란 숙소가 나왔다.


베일마운트는 산골이라 데이터가 터지질 않았고, 날벌레가 아주 많았다. 대신 마을은 아주 적막했고, 큰 도로하나를 중심으로 마을이 펼쳐져 있어서 거대한 휴게소를 보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아빠와 마을 안쪽 숲길을 따라 걸어 들어가 보았는데, 이글루를 본따 만든 특이한 집도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베일마운트 (Valemount)

귓가에는 풀벌레 울음소리가 점점 울려 퍼졌다. 종종 기차 경적소리가 마을의 고요함을 뚫고 들어왔는데, 소리가 어디서 나는지 알 수 없었던 우리는 기찻길을 찾기 시작했다. 경적소리를 쫓아 마을 안쪽으로 꽤 걸어 들어가면, 엑스 표시의 표지판이 달린 기차 신호등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기찻길에 들어서자 화약 냄새가 났다. 아빠를 통해 알게 된 것이지만, 화약 냄새의 정체는 기차 레일 아래에 까는 침목이 썩지 않게 하기 위해 바르는 크레오소트유 냄새였다. 기찻길 바로 옆에 침목 더미들이 덩그러니 쌓여있었는데, 아마 여기서 나는 냄새였으리라.

아빠와 나는 철로 한복판에서 양팔을 벌리고 사진을 찍었다.

경적소리를 쫓아서

나는 기차를 왜 이렇게 좋아하는 걸까. 뭐, 나만 좋아하는 건 아니겠지만.


밤 10시 반, 나는 별을 보러 간다는 아빠를 따라나섰다. 어둑한 마을을 기대하고 집을 나섰지만, 가로등이 생각보다 밝아 밤하늘의 별을 지워내고 있었다. 시골의 밤은 아주 깜깜할 줄만 알았는데.

가로등 눈치 챙겨

우리는 어둠을 찾아 헤맸다, 하늘이 충분히 별빛을 담아낼 때까지. 우리는 차를 타고 마을 구석구석을 들어가며 아주 어두운 곳을 찾기 시작했다.

10분쯤 지났을까, 조금 위험해 보이지만 아주 깜깜한 곳을 발견했다. 숲 속 도로 한가운데에 차를 멈춰 세우고 발을 내리려는 순간, 뒤에서 전조등을 밝히며 차 한 대가 오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곳은 충분히 어둡지만 차에서 내릴 수는 없는 곳이었다.


도로 한복판에 차를 세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이젠 어두운 산책길을 찾아보기로 했다. 하지만 웬만한 산책길에는 다 가로등이 빛나고 있었다. 캐나다의 시골에서도 어둠을 찾기가 이렇게 어렵다니. 반쯤 포기한 우리는 집으로 방향을 틀었는데, 아까 갔던 기찻길 근처에서 우연히 어두운 마당을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저 멀리 희미한 불빛이 보이기는 했지만, 이만하면 꽤나 어두웠다. 우리는 차에서 내려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빠는 탁 트인 마당에서 단번에 전갈자리를 찾아냈다. 사실 은하수가 전갈자리 부근에 위치하는지도 몰랐지만, 밤하늘을 보면 항상 전갈자리부터 찾는 아빠를 통해 알게 되었다. 아까 숲 속 도로에서도 아빠는 높은 나무가 전갈자리를 다 가렸다며 아쉬움을 토했었다.


어느 집 마당인지는 모르지만, 아까와는 다르게 사방이 탁 트여 있다. 전갈자리를 찾아낸 아빠가 은하수를 가리켰다. 맨눈으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카메라 렌즈로 빛을 한동안 모아내면 뿌연 은하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밤하늘의 등뼈, 은하수

'밤하늘의 등뼈'라고도 불리는 은하수를 처음 본 순간이었다. 캐나다에서 은하수를 처음 볼 줄은 몰랐는데, 내가 은하수를 보다니. 나는 사진에 담긴 은하수를 맨눈으로도 느껴보고 싶어 한참 동안 남쪽 하늘을 바라봤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들어 밤하늘의 반구를 올려다보니, 마구 흩뿌려진 별들이 숨 막히게 빛나고 있었다. 나는 반대쪽 지평선 근처로 시선을 내렸다. 그림자진 뾰족한 숲나무의 검은 실루엣 너머로 밤의 천막은 광활한 우주를 비추어내고 있었다.


적막한 밤하늘엔 어릴 적 『Why?』 책에서만 보던 북두칠성도 아주 또렷하게 빛나고 있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북두칠성은 더 거대하게 빛났다. 만화책을 읽던 어린 나는 굳이 왜 '별자리'라는 것을 만들었을까 싶었는데, 수없이 빛나는 새까만 밤하늘을 직접 마주해 보니 '저 별들을 이을 수밖에 없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북두칠성

국자 모양의 일곱 개의 별, 북두칠성의 머리에서 오른쪽을 따라 시선을 옮겼더니, 북극성이 홀로 빛나고 있었다. 그 옆을 따라 시선을 계속 옮겨 보면, 더블유 모양의 카시오페아 자리도 단번에 발견할 수 있었다.


"북두칠성이다, 아빠!"

나는 연이어 소리쳤다.

"오른쪽에 북극성, 그 옆에 카시오페아...!", "우와, 완전 신기해!"


추운 밤공기에 날벌레는 온데간데 없었고, 나는 우주를 처음 본 아이처럼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빠도 매한가지였다. 아빠도 어느새 아이가 되어 은하수를 보고 있었다. 별은 이렇게 모두를 아이로 돌아가게 한다. 칼 세이건이 『코스모스』에서 말했던 것처럼 우리는 모두 '별의 자녀'들이기 때문일까.



우리의 DNA를 이루는 질소, 치아를 구성하는 칼슘, 혈액의 주요 성분인 철, 애플파이에 들어있는 탄소 등의 원자 알갱이 하나하나가 모조리 별의 내부에서 합성됐다. 그러므로 우리는 별의 자녀들이다.

칼 세이건, 『코스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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