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사람도 가기 어렵다는 호수
오하라 호수(Lake O'Hara)는 요호(Yoho) 국립공원에 위치한 호수로, 생태 보호를 위해 하루에 두 대의 셔틀버스만 들어갈 수 있다. 이용가능한 인원은 하루에 42명 남짓이다. 셔틀버스 예약은 추첨을 통해서만 받기 때문에, 캐나다 현지인도 가기 어렵다고 한다.
우리는 추첨에 실패했다.
그렇다고 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오하라 호수를 정 가고 싶다면, 도로를 따라 왕복 22km를 직접 걸어가면 된다. 이에 대한 고민은 어제저녁부터 치열하게 이어졌는데, 당일 아침까지도 우리는 결정을 못 내리고 있었다.
우리는 그간 빡빡한 일정으로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어제만 해도 모레인 호수 트레킹에만 예닐곱 시간이 걸렸다. 더군다나 아빠의 허리 통증이 좀처럼 낫질 않아서, 엄마는 아무래도 무리라며 캔모어(Canmore)로 일정을 변경하자는 눈치였다. 그럼에도 아빠는 엄마가 오하라 호수를 얼마나 보고 싶어 하는지 알았기에, 후회를 남기지 말자며 강행을 주장했다.
엄마와 누나는 전날 밤늦은 시간까지 구글 맵 리뷰를 보고 있었다.
엄마가 주로 읽어 준 것은 위와 같은 리뷰들이었다. 엄마의 가고 싶은 심정들이 한껏 투영되어 있다.
반면, 누나가 걱정하던 것은 위와 같은 리뷰들이었다. 곰이 우리를 공격할까봐 겁이 났던 누나는 오하라 호수에 가지 말자며 졸랐다.
당일 아침, 이른 새벽에 일어난 우리는 일단 차를 몰고 오하라 호수로 향했다. 차 안에서도 열띤 토론이 계속되었는데, 솔직히 나는 너무 가기 싫었다. 그동안 우리가 호수를 얼마나 많이 봤는데, 굳이 그 고생을 하면서까지 봐야 하나, 뭐 이런 생각이었다. 자전거라도 타면 되지 않나 싶겠지만, 자전거도 통행이 불가하다. 나는 차 안에서 조용히 말을 아끼며 내심 일정이 취소되기를 빌었다.
오전 9시 즈음, 우리는 두 시간을 넘게 달려 오하라 호수 주차장에 도착했다. (사실 도착했다기보다는 도착해 버렸다는 표현이 더 맞는지도 모른다) 우리 가족은 기어이 걸어가보기로 결정을 내렸다. 산행에 앞서 우리는 차 안에서 간단히 식사를 하며 에너지를 먼저 비축했다.
차 문을 열고 나가자 바깥의 날씨는 티 없이 화창했다. 나는 베이지색 벙거지를 눌러쓴 채 검은색 배낭을 둘러멨다. 그리고 트렁크에서 등산 스틱 하나를 꺼내, 괜히 바닥을 짚으며 입구로 걸어갔다. 강렬한 햇빛에 아스팔트에 선명하게도 비친 내 실루엣이 꽤 산악인 같았다.
트레일 입구에 들어서자 '주의' 표지판이 우리를 멈춰 세웠다. '셔틀버스 외의 어떠한 탈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걸어가는 길 내내 식수대와 화장실은 없다.' 등등... 제약이 너무 많았다. 휴대폰 화면에는 인공위성 아이콘 옆에 SOS 문구가 나타났다. 그러니까 여기는 GPS도, 통화도, 데이터도 안 되는 오지에 가까운 환경이었다.
멍하니 표지판을 바라보던 것도 잠시, 딥그린색 유니폼을 입은 직원 한 분이 우리 앞으로 걸어왔다.
"곰 스프레이(Bear Spray) 가져오셨나요?"
우리는 '곰 스프레이'는커녕 에프킬라 하나 없었다. 직원은 우리에게 곰이 나올 수도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만약 곰이 나타나면, 음악을 틀거나 말소리를 내세요, 그러면 곰이 알아서 자리를 뜰 거예요."
직원은 곰이 나올 수도 있으니 음악을 계속 틀어놓고 가는 것도 좋다며 일러두었다. 구글 맵에서 봤던 리뷰가 진짜였다, 정말 곰이 나오는 곳이라니. 데이터가 터지질 않았기에 미리 다운받아온 음원을 반복재생할 수밖에 없었는데, 플레이리스트에 있던 곡은 다음과 같은 노래들이었다.
트레일 초반에는 아무도 없었다. 도로 한복판에는 우리 네 명만 덩그러니 아스팔트 위를 걸어가고 있었다. 저번에 밴쿠버에서 느꼈던 고립에 대한 공포감을 느꼈다. 곰이 나타나 우리 가족을 공격해도 발견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발걸음이 빠른 탓에 혼자 걷게 될 때면, 음악을 걷어내고 혹시나 있을지도 모르는 곰의 발자국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가끔 아빠의 멈칫거리는 발소리에 놀라 뒤를 돌아보기도 했지만, 곰이 나오지는 않았다.
숲 사잇길 너머에는 흰 눈으로 빛나는 봉우리가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저 지루한 길을 언제 다 걸어내나 싶었던 내 마음은 어디 가버렸는지, 선선한 날씨와 푸르른 숲의 풍경이 나를 계속 걷게 만들었다. 곰을 쫓기 위해 틀어놓은 음악을 듣다 보면 어떤 곡들은 발걸음을 빠르게 하고, 또 어떤 곡들은 발걸음을 느리게 한다.
걷는 내내 가장 힘이 되었던 표지판이다. 1km마다 표지판이 나타났는데, 지친 도보 여행자들에게 오아시스처럼 희망을 1km씩 끼얹었다.
발걸음이 빠른 외국인들이 우리를 지나쳐가기 시작했다. '우리 말고도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이렇게나 큰 안도감을 가져다주다니. 곰이 나타나도 이제 스프레이를 뿌려줄 사람들이 있었고, 통화가 안되어도 우리를 도와줄 사람이 있었다.
아스팔트 위를 저벅저벅 걷는 소리가 텅 빈 공간에 청명히 울려 퍼진다. 푸른 하늘에는 달처럼 구름 한 조각이 걸리어 있고, 길가를 따라서는 올리브빛 이끼가 아름답게 깔린 흙바닥 위로 침엽수들이 창을 든 기사처럼 하늘을 찌르고 있다.
앞에는 알록달록한 등산복을 입은 네 명의 여행자들이 나란히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페이스에 맞춰보려 애써봤지만, 끝내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역시 DNA가 다르다.
작은 시냇물이 졸졸 흐르는 길가를 따라 걷다 보면,
거대한 숲을 마주하기도 하고
드높은 산맥을 올려다보기도 했다.
그렇게 계속 걷다 보니 아까 앞서 갔던 사람들을 다시 마주쳤다. 저들은 모르겠지만 나는 엄청나게 반가웠다. 내적 친밀감이 극대화되는 순간이었다.
10.5km 지점, 레이크 오하라 캠핑장에 도착했다. 캠핑장에는 식수대가 딸린 화장실도 있었고, 실내 공간 및 야외 테이블도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오하라 호수로 가기 전에 이곳에 들러 밥을 먹고 있었고, 우리 가족도 테이블 한구석에 자리를 잡아 엄마가 만든 삼각김밥으로 점심을 대신했다.
오하라 호수까지는 큰 도로를 따라 15분이면 걸어가지만, 누나가 갑자기 나를 불러 세웠다. 누나는 블로그에서 봤다며 갑자기 갓길에 난 험한 산길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오하라 호수로 가는 길이라며 걸어갔던 길에는 날벌레가 아주 많아 불쾌했다.
얼마 안 가, '오하라 호수'라며 누나가 외쳤다. 우거진 나무 사이로 작은 호수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다들 예쁘다며 탄성을 질렀지만, 아무리 봐도 실망감만 가득했다. '이걸 보러 일 년 전부터 셔틀을 예약한다고?' 그렇게 수요가 많은 곳이 길이 이렇게 험하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나는 혹시나 싶어 구글 맵을 켜봤는데, 아니나 다를까 여기는 오하라 호수가 아니었다.
여기는 오하라 호수 옆에 딸린 이름도 없는 작은 호수였다. 모두 실소를 터뜨렸다. 방금 가족사진까지 실컷 남겼건만, 끝까지 여기가 오하라 호수인 줄 알고 그냥 집으로 돌아갔다면 얼마나 허무했을까.
결국 큰 도로가로 다시 나온 우리는, 얼마 안 가 진짜 오하라 호수 입구를 발견했다. 길목에는 표지판 하나가 얼굴을 내밀었다. 마치 짝퉁과 진품을 가려내는 옷에 붙어있는 택(tag)처럼 보였다.
자갈이 깔린 길을 따라 걸어가자, 드디어 광활한 오하라 호수가 그 모습을 차분히 드러냈다. 청록빛의 수면이 목가적인 오두막을 비춰내고 있었는데, 기슭에 가까워질수록 청록빛이 연녹빛, 연갈빛으로 변하는 것이 마치 거대한 눈동자를 보는 듯했다. 호수를 에워싼 푸르른 침엽수림은 속눈썹처럼 하늘을 아름답게도 찌르고 있었고, 배경에 우뚝 솟아있는 설산은 호수를 내려다보며 장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 풍경을 글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호숫가를 따라 걷는 내내 답을 내리지 못했다.
오하라 호수의 특별한 점이 있다면 호숫가를 따라 조금만 걸어가도 물빛이 계속 변한다는 것이다.
저기 보이는 울창한 숲보다도 깊은 초록빛을 내던 호수는,
이렇게 하늘을 담은 유리빛 물결을 보여내기도 하고
바람이 불면 호수에 주름이 지며 물빛이 조금 탁해지기도 하며
숲을 헤집고 깊이 들어가보면 푸른빛이 조금 더 깊어지기도 했다.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에 나는 발걸음을 뗄 수가 없었다. 출발 전, 이만하면 캐나다의 호수는 충분히 봤다며 오만을 떨던 내 모습은 어디 갔는지, 아무리 쿨하게 눈으로 담아보려고 해도 손은 어느새 카메라를 들어보이고 있었다. 자연의 아름다움은 끝이 없다. 눈앞에 펼쳐진 지금 이 풍경이 영원했으면.
호숫가 한 구석에서 나무 그루터기를 발견했다. 누가 봐도 포토스팟이었기에, 그루터기를 밟고 올라가 사진을 찍지 않을 수 없었다. 한 명씩 차례대로 그루터기에 올라서면, 나머지 세 명은 열렬한 포토그래퍼가 되어 소위 '인생사진'을 건져내기 시작한다. 레이크 루이스에서는 사람이 바글바글해서 사진을 찍기조차 힘들었는데, 여기는 아주 한산하다.
우리는 캐나다 서부에서의 마지막 가족사진을 찍었다. 그루터기 앞에서 셀카봉을 하늘 높이 들고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며 다 같이 웃음을 터뜨리자, 지나가던 외국인들이 신기하다는 듯이 우리를 쳐다보았다.
호수 입구로 되돌아오는 길, 나무판자 위에는 부유해 보이는 외국인들이 일광욕을 하고 있었다. 호수의 광활함에 비해 인간의 밀도가 현저히 낮아서 그런지, 그들이 프라이빗 풀을 통째로 빌려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호수 앞에는 작은 카페가 하나 있었는데, 안으로 들어가자 젊은 청년이 주문을 받고 있었다. 우리는 그 청년으로부터 잘하면 오하라 셔틀을 탈 수도 있다는 희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상행은 몰라도 하행은 자리가 나면 셔틀을 타고 내려갈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날씨가 좋아서 오하라 호수에 더 머물다 가는 사람이 많을 것 같아요, 카페 앞 정류장에서 기다리면 버스가 올 거예요."
주로 비가 오면 버스에 자리가 안 나고, 날씨가 맑으면 버스에 자리가 난다고 한다. 우리는 카페 앞에서 버스를 기다려 보기로 하고, 카페에서 음료 네 잔을 주문했다.
카페 한쪽 벽에는 커다란 포스터와 작은 엽서가 걸려 있었는데, 보자마자 저건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 같아서는 커다란 포스터 하나를 사고 싶었지만, 캐리어에 넣으면 구겨질 게 분명했다. 나는 4달러짜리 엽서 한 장을 구매했다.
정류장에는 우리처럼 빈자리를 노리는 사람들이 열 명 정도 대기하고 있었다. 곧이어 하얀색 셔틀버스 두 대가 조용히 들어오고, 아까 입구에서 봤던 직원이 우리에게 걸어왔다. 사람들 사이에 긴장감이 맴돌았다, 과연 우리는 탈 수 있을까.
직원은 티켓이 없는 사람들의 머릿수를 세어보더니, 기다리던 사람들 모두를 버스 안으로 안내했다. 예약을 안 한 사람들은 현금 15불을 별도로 지불해야 했는데, 우리는 넷이 합쳐 60불을 지불했다.
셔틀버스는 구불구불하고 울퉁불퉁한 길을 생각보다 빠르게 달렸다. 때문에 버스가 격렬하게 덜컹거리며 사람들을 이리저리 휘청이게 만들었는데, 안전벨트가 없었다면 좌석에서 고꾸라져버릴 정도였다. 숲길에 들어서자 창 밖으로 나뭇가지들이 버스 유리창을 빗질하기 시작했다. 아까 걸어오며 봤던 나무 기둥에 붙은 킬로미터 표지판은 허무하리만치 빨리 지나갔다. 기껏 힘들게 걸어온 길이 차로 20분도 안 걸리다니.
오후 5시 반, 캘거리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갓 구워낸 하와이안 피자로 간단히 저녁을 먹었다. 사실 저녁을 먹고 집에서 조금 쉴 계획이었지만, 캐나다 서부에서의 마지막 저녁이라 시간이 아까웠다. 그래서 나는 혼자 트램을 타고 캘거리 시내로 향했다. 엄마는 내게 체력도 좋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칠칠맞게 트램을 또 반대로 탔다. 시내로 가야 하는데 시외로 가버린 것. 그래도 낯선 역에서 트램을 기다리며 사진 정리도 했다.
캘거리에 도착하자 어김없이 랜드마크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몇 번 봤다고 캘거리 타워가 그렇게 반갑다. 오른쪽에 보이는 활처럼 휘어진 고층빌딩 '더 보우(The Bow)'도 캘거리의 대표적인 랜드마크 중 하나다. 저런 건물은 유리 외벽을 어떻게 닦는 건지 의문이다.
캘거리 시내를 정처 없이 걷다가, 문득 듣던 노래가 여행을 방해하는 것 같아 이어폰을 뺐다. 걷다 보면 어느새 도시에 집중을 하지 못하고 그 노래에 얽힌 기억만 떠올리고 있다.
귓가에 음악이 사라지자, 그제서야 도시의 소음이 선명히 들려왔고, 그제서야 도시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무뎌진 현재의 감각들이 다시 날카로워지고 새로운 모습들이 하나둘 보였다. 방금까지 생각 없이 지나쳤던, 시청 앞에 놓인 인형 무더기는 그냥 인형 무더기가 아니었다. 사고로 실종되거나 사망한 어린아이들을 추모하기 위한 슬픈 흔적이었다.
걷다 보니 주차장에 놓인 연필 모양의 볼라드(차량 진입 방지용 기둥)가 눈에 들어왔다. 아이디어가 너무 귀여웠다. 이런 사소한 것들이 도시의 개성을 만들어내는 것 아닐까.
처음에는 경찰차가 참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 'POLICE' OFFICER가 아니라 'PEACE' OFFICER였다. 경찰이랑은 조금 다르다고 한다. 주로 단속이나 규제 이런 것들을 담당하는 것 같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사실 캘거리 시내보다 집 근처 마을이 더 예쁜 것 같다. 마을은 더없이 아름답고, 더없이 평화롭다. 이보다 더 평화로울 수 있을까?
오후의 햇살이 차분히 내려앉은 마을은
세상 걱정 없는 얼굴만 비추며 몇 마디 말도 없다.
내일이면 이곳을 떠나 캐나다 동부로 향한다.
내가 이곳을 다시 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