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와는 딴판이다
캘거리에서 토론토까지 비행시간은 네 시간이었지만, 시차로 두 시간을 더 손해 봤다. 분명 오전 비행기를 탔는데 도착해놓고 보니 늦은 오후였다.
토론토 공항 앞, 캐리어에 걸터앉아 호텔 셔틀버스를 기다렸다. 우리가 묵을 호텔은 힐튼 호텔이었는데, 힐튼 계열사의 호텔이 너무 많아 어떤 셔틀버스가 우리 호텔로 향하는지 일일이 다 물어봐야 했다.
셔틀을 타고 호텔에 도착하니 저녁이었다. 토론토 시내까지는 거리가 꽤 있었어서 오늘은 숙소에서 쉴 수밖에 없었다.
저녁으로 A&W에서 햄버거 세트를 나눠먹고, 호텔 내부를 이곳저곳 돌아다녔다. 힐튼 호텔의 수영장은 시설은 깔끔했지만, 물이 깨끗하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샤워도 안 하고 물에 들어간다.
수영장 아래층에는 스쿼시 코트와 농구 코트가 있었는데, 텅 비어있는 게 상당히 외로워 보였다.
아무도 찾지 않는 고독한 농구장에는, 찌그러진 농구공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아침 비행기를 탔지만, 오늘 하루는 이게 전부다. 나는 헬스장에서 러닝이나 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아침 일찍 우버를 타고 토론토 시내로 향했다. 토론토는 밴쿠버나 캘거리와는 딴판이었다. 서부는 도시가 깔끔하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토론토는 그런 느낌의 도시가 아니었다. 길바닥이 더러웠다. 또한 길거리에는 비교적 마약 중독자들이 많이 보였는데, 몇몇 사람들이 비틀비틀거리며 이상하게 걸어 다녔다.
우리는 토론토의 유명한 카페 (Dineen Coffee Co.)에서 브런치를 즐겼다. 여기는 당근머핀이 맛있었다. 아빠의 당근머핀을 뺏어 먹다가 너무 맛있어서 하나를 더 주문했다.
토론토는 거의 미국이나 다름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미국의 뉴욕과 다른 점이 있다면 저 멀리 보이는 CN 타워 정도였다.
토론토의 차이나타운을 지나갈 때 즈음, 트램 하나가 도로 위로 미끄러지고 있었다. 캘거리의 트램과 비교해 보면 얼마나 전선이 지저분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거미줄처럼 가공 전차선이 하늘에 얼기설기 얽혀있다.
스투시 토론토 매장에 들러 후드티 하나를 샀다. 어느 나라 스투시 매장을 가도 한국인이 대부분인 것 같다. 평소에는 그렇게 안 보이던 한국인들이 왜 여기 다 모여있는 건지.
파타고니아 매장에도 잠시 들렀는데, 캘거리에서 샀던 똑같은 후리스가 40% 할인을 하고 있었다. 분명 캘거리가 제일 싸다고 들었는데...
시간이 남아 온타리오 미술관에 왔다. 사진 상으로는 체감을 못하겠지만 캐나다에서 가장 큰 미술관이다. 전 세계적으로도 최대 규모의 미술관 중 하나로 손꼽힌다고 한다.
미술관으로 들어가는 길, 포스터 하나가 기둥에 걸려있다. 아마도 메인 전시가 저건가 보다. 조이스 윌랜드(Joyce Wieland). 이때만 해도 그냥 전시 제목인 줄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캐나다 화가의 이름이었다.
티켓은 30불이었다. 학생할인을 기대하고 데스크로 향했지만, 캐나다에 있는 대학을 다녀야 할인을 받을 수 있다며 거절당했다. 아, 물론 정중한 거절이었다.
전시장에 들어서자, 입구에 서있던 직원이 조그마한 박스에 내 배낭을 넣어보라며 나를 멈춰 세웠다. 당연히 배낭은 박스 안에 들어갈 크기가 아니었고, 짐을 따로 맡겨야 입장이 가능했다. 그런데 짐 맡기는 비용이 만만치가 않았다.
그래서 일단 밥을 먹었다(?). 메뉴는 해물 순두부찌개. 내가 해외에서 먹어본 순두부찌개 중에 제일 맛있었다. 내가 갑자기 식당으로 간 이유는 사실 엄마에게 짐을 맡기기 위함이었다. 밥도 먹고, 짐도 맡기고 여러모로 일석이조.
다시 온타리오 미술관이다. 워낙 건물이 넓어서 메인 전시 위주로 관람할 수밖에 없었다. 모더니즘 전시에는 다양한 스타일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작품들의 의미를 파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위 모더니즘 작품들은 기존 회화와는 다르게, 뭔가를 재현하는 도구에서 벗어나 색과 여백 그 자체만의 경험을 가져다준다. 왜 하필 저 색깔을 칠했을까, 경계를 흐리게 만든 이유는 뭘까, 그림에 여백을 둔 이유는 뭘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답을 내리지 못하더라도 특별한 사유의 경험을 하게 된다.
이 커다란 작품을 처음 마주했을 때, 도대체 이건 뭔가 싶었다. 흑백의 정사각형들이 불규칙적으로 배열되어 있어서 역시 추상은 어렵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멀리서 바라보면 아예 다른 그림이었다. 거리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경험을 가져다준다는 점이 아주 흥미로웠는데, 우리가 대중매체를 통해 접하는 현실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결국 매체에 비추어진 모습들은 픽셀의 조합으로 조작된 이미지라는 점과, 또 굳이 담배를 소재로 한 건 대중매체의 소비적이고 중독적인 특성을 빗대기 위함이 아닐까.
뒤샹의 「샘」을 연상케 하는 작품이다. 캔버스 위에다 실제 세면대를 오브제로 박아 넣었다. 이런 걸 레디메이드(ready-made) 작품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미 만들어진 기성품을 예술 작품으로 재조명하는.
앤디 워홀의 「Elvis I and II」라는 작품이다. 그랜빌 아일랜드에서 봤던 캠벨 수프가 떠오르기도 했다, 일종의 복선처럼. 앤디워홀은 마릴린 먼로나 엘비스 프레슬리와 같은 대중문화의 아이콘들을 소재로 활용해, 이들의 이미지를 새롭게 복제함으로써 대중문화가 소비되는 방식을 보여준다.
위 그림은 '사람으로서 엘비스'(흑백)와 '스타로서의 엘비스'(컬러)를 대비하여 대중문화가 어떻게 소비되는지 보여주는 그림이다.
이제 위층으로 걸어가 보자.
아까 포스터에서 봤던 조이스 윌랜드(Joyce Wieland)의 전시다. 조이스 윌랜드는 캐나다의 여성 아티스트로, 작품들을 보면 대표적으로 퀼트(Quilt), 입술, 캐나다 국기 등을 통해 자신을 드러낸다. 윌랜드가 왜 이런 소재들을 사용했는지 전시된 그림들을 보면서 찬찬히 알아보도록 하자.
퀼트
전시장에 있던 여자아이들이 제일 좋아했던 작품이다. 그런데 왜 하필 퀼트를 사용했을까? 퀼트의 의미는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데, 먼저 여성(가사 노동)의 상징으로서 의미가 있다.
당시 미술계는 회화나 조각 등의 남성 중심의 미술품만 예술로 인정하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윌랜드가 이런 위계를 깨뜨리고자 퀼트 작품을 제시해 여성의 바느질도 예술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동시에 퀼트는 캐나다를 상징하기도 하는데, 퀼트와 캐나다 사이의 유사성에 대해 생각해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조각들이 모여 하나의 퀼트가 만들어지듯이, 캐나다도 다양한 문화가 모여 이루어진 다문화 공동체라는 점에서 그 상징성을 유추해 볼 수 있겠다.
입술
입술 자국을 많이도 찍어놨다. 하지만 작품의 제목이 「O Canada」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그 의미를 짐작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윌랜드 작품을 둘러보면서 느껴지는 뚜렷한 두 가지 특성이 있다. 하나는 여성성, 다른 하나는 애국주의.
저 입술자국들은 캐나다 국가를 노래하는 입술의 모양을 시간 순으로 찍어놓은 것이다. 여성성을 의미하는 입술자국과, 국가를 부르는 애국주의를 표현해 놓은 데에서 윌랜드의 정체성을 파악할 수 있다. 작품을 들여다보면 윌랜드 개인에서 여성으로, 여성에서 국가로 계속해서 확장되는 특성을 보인다.
첫 번째 작품은 퀼트와 입술을 결합했다. 앞서 설명했듯이 여성성과 관련한 작품이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퀼트 배경이 메이플 무늬임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는 또다시 애국주의와 연결된다.
두 번째 작품은 「The Kiss」라는 유화 작품이다. 유화 물감으로 입술 자국을 만들었는데, 입술에 유화 물감을 묻히고 직접 찍은 것 같다. 자신의 입술을 붓처럼 도구로 사용한 건데, 일종의 행위 예술로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캐나다 국기
우리가 알고 있는 캐나다 국기가 채택된 것은 1965년으로, 그전까지는 단풍잎이 아닌 영국 국기 기반의 Red Ensign을 사용했다. 아래 그림을 보자, 캐나다가 사용했던 국기이다.
따라서 윌랜드는 새롭게 채택한 캐나다 국기를 작품에 끌어와, 영국에서 벗어난 캐나다만의 정체성을 강조했다. 위의 캐나다 국기 작품을 보면 수공예로 직접 만든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앞서 설명했던 퀼트와 같은 맥락이다. 그렇다, 또 여성성과 애국주의인 것이다.
윌랜드는 이 밖에도 캐나다의 정체성을 북극(Arctic)에 초점을 맞춰 강조하기도 했고, 가라앉는 배의 모습을 모티프로 차용해 불안정한 국가를 비판하기도 했다.
이를테면, 위와 같이 배를 국가에 비유해 카툰의 형식으로 배가 침몰하는 모습을 작품으로 담아냈다.
이제 쿠사마 야요이 전시로 이동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