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토 첫걸음 II

by 찬희

쿠사마 야요이 전시관에는 대기줄이 아주 길었다. 버스를 타려면 세 시까지는 토론토 시청 앞에서 모여야 했기에, 시간의 촉박함 속에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시간 내에 전시를 다 볼 수 있을까.

쿠사마 야요이 © Public Delivery

쿠사마 야요이는 예술계에서 최상위권의 시장 가치를 보여주는 일본인 화가로, 주로 점이나 호박 등을 주요 모티프로 사용하여 자신의 강박적 경험을 시각화하려는 시도를 지속해왔다. 위 사진 속 인물이 쿠사마 야요이로, 호박을 모티프로 한 자신의 작품 속에 들어가 있다.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에서 점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이유는 그녀의 어린 시절에서 찾아볼 수 있다. 쿠사마는 어릴 적 부모님으로부터 겪은 정신적, 물리적 폭력으로 점이 무한으로 펼쳐지는 환각을 보게 되고, 이를 그림으로 그리기 시작하면서 하나의 시그니처로 자리 잡게 되었다고 한다.


내가 볼 작품은 「Infinity mirrored room」, 직역하면 '무한 거울 방'으로, 역시나 점을 모티프로 사용한 설치미술 작품이다. 거울방에 들어가면 아마도 무수한 점이 펼쳐져 있으리라.

내 차례가 다가오자, 직원은 사람 6명을 한 팀으로 묶어 주의사항을 당부하기 시작했다. 선글라스, 가방, 겉옷은 박스에 넣어놓고 입장해라, 촬영은 안된다, 만지지 마라 등등...


나는 시간이 없었기에 제대로 볼 수나 있으려나 싶었지만, 작품은 단 한 점 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우리에게 주어진 관람 시간은 1분이었다. 좋아해야 할지, 아쉬워해야 할지 모르게 나는 작품 속으로 들어갔다.

쿠사마 야요이의 무한 거울방 © Art Gallery of Ontario

거울로 덮인 방 안에는 거울 구슬이 달려 있어서 반사가 무한히 이루어지고 있었다. 때문에 점이 무한하게 펼쳐지고 있었고, 작은 공간이 무한한 공간으로 확장되어 있었다. '무한의 방'은 쿠사마 야요이가 경험한 환각을 관객에게 체험시켜 주고, 이에 몰입한 관객들이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끝없이 펼쳐진 광경을 마주하며 개인과 공간의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을 경험하게 한다.


거울을 바라봐도, 점을 바라봐도, 모든 공간과 모든 점에 내가 맺혀져 있었다. 요상한 경험이었다. 쿠사마 야요이의 의도가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는 순간이었다.


시간의 흐름도 잊어버렸는지, 1분이 이렇게나 순식간이었나 싶었다. 들어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직원이 우리를 부르며 나오라고 한다. 나는 전시가 끝나자마자 토론토 시청으로 뛰어갔다.

토론토 시청 앞에는 거의 관광객들 밖에 없었다. '나 토론토 왔어!'를 가장 직관적으로 알려주는 장소였다. 우리 가족은 여기서 다시 모여 버스를 타고 CN타워로 향했다.

CN 타워

타워가 워낙 높아 사진에 겨우 담았다. 무릎을 한껏 쪼그리고는 카메라를 수직으로 꺾어 올리면 된다. 꼭대기까지 올라가려면 거의 5만원을 지불해야 했는데, 어차피 내일 나이아가라 전망대를 갈 거라서 굳이 올라가 보지는 않았다. 캘거리 타워와 마찬가지로 사실 특별할만한 것은 없었다.

라운드하우스 파크

차라리 옆에 딸린 철도 박물관을 추천한다. 박물관에 들어가보진 않았지만, 적어도 CN 타워보다는 박물관 앞 라운드하우스 공원을 구경하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공원에는 원형의 레일과 여러 증기 기관차들이 놓여져 있다.

우리의 다음 여정지는 이름이 아주 길다. 더 디스틸러리 히스토릭 디스트릭트(The Distillery Historic District), 예전에 양조장이 있던 공간이 문화지구로 재탄생했다.

벽돌로 지어진 Spirit Of York 건물을 지나면

거리 한 구석에서 공연을 하고 있어 드럼 소리가 바닥을 꿍꿍 울려내기도 했다.

평화를 상징하는 피스(Peace)기호의 조형물도 골목길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다.

여기는 토론토의 성수동이 아닐까. 눈앞에 보이는 벽돌건물이 성수동의 대림창고 같다.


우리는 이곳을 떠나 마지막으로 한 곳을 더 들렀다.

고풍스러운 건물 외관을 보면 중세의 어느 멋진 성 같기도 하지만, 사실 토론토 대학 건물이다. 나는 캠퍼스에 학생들만큼이나 관광객들이 거닐고 있는 이유를 한번에 납득했다. 이런 대학 건물이라면 나도 개강날 설렐 수 있지 않을까.

잔디밭에 누워 있는 토론토 대학교 학생은 보란 듯이 내 대학 로망(이었던 것)을 실현하고 있었다. 꽤나 여유로워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

나도 잔디밭에 풀썩 앉아보았다. 낮은 시선으로 대학 건물을 바라보자 기분이 묘했다. 여기서 강의를 듣고, 여기서 시험을 본다니, 아무리 봐도 영화 세트장 같은데.


나는 잔디밭에 앉아있었지만 누구도 나를 토론토대 학생으로 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느 대학생이 캠퍼스에 선글라스를 쓰고 신기하다는 듯이 입을 벌리고 있나.


나는 누가 봐도 관광객이다. 내일 나이아가라 폭포를 기대하며,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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