퀘벡의 여름은

아저씨 사랑해요

by 찬희

드라마 「도깨비」의 도시, 퀘벡이다.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퀘벡까지는 버스를 타고 한참을 달려야 했다. 오후에 출발한 버스가 퀘벡에 도착해 내려면 자정을 넘길 수밖에 없었기에, 우리는 따로 몬트리올에서 1박을 해야 했다.

© Google Map

나이아가라에서 토론토를 지나, 먼저 세인트 로렌스 호에서 크루즈를 타고 천섬(Thousand Islands) 사이를 누볐다. 숲이 우거진 군도 사이로 수상[水上]의 볼트 성(Boldt Castle)을 볼 수 있었는데, 마치 몽트뢰에서 봤던 시옹 성의 축소판을 보는 듯했다.


오타와의 연방의회, 몬트리올의 노트르담을 지나, 우리는 다음날 퀘벡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고풍스러운 샤토 프롱트낙(Château Frontenac) 호텔이 모습을 드러냈다. 도깨비에서 봤던 그 호텔이었다.

한국인 관광객들을 겨냥이라도 한 듯, 어디선가 도깨비 OST를 연주하는 색소폰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를 보고 있던 거리의 악사가 내는 소리였다.

드라마 속에 들어온 기분까지는 아니었지만, 8년이 지난 드라마가 아직도 회자되고 있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우리는 호텔 앞 광장을 지나 어여쁜 골목 속으로 발을 들였다.

옅고 짙은 벽돌로 만들어진 건물 사이를 따라 걷는다. 건물 외벽엔 붉은 꽃이 가득 담긴 화병이 걸려있고, 머리 위로는 작은 전구가 줄지어 지나간다. 아름다운 퀘벡의 거리에는 주말 오후의 산만함으로 가득하다.

일요일 오후,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다. 우리는 이 많은 인파를 뚫고 「도깨비」에 나왔던 빨간문을 찾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빨간문 앞에는 안그래도 좁은 골목에 사람이 미어터지고 있었다. 한국인들만 여기서 사진을 찍는다더니, 외국인들 뿐이었다.

빨간문, 사실 특별한 건 없지만 막상 사진을 찍고 나면 색감이 아주 예쁘게 나온다. 문 앞에 서서 포즈를 취하고 있으면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시선을 한가득 느낄 수 있다.

나는 거리의 번잡함을 뚫고 한적한 골목으로 빠져나왔다. 골목은 더 좁아졌지만, 사람이 없어서 훨씬 넓게 느껴졌다. 내가 생각했던 퀘벡의 여유는 이런 느낌이었는데.

골목 안으로 걸어들어가면 모래색 문 하나가 나온다. 아까 봤던 빨간문 못지않게 예쁘다. 공유가 이 문으로 나왔다면 여기가 핫플이 되었을텐데.

Cochon dingue

저녁을 먹으러 퀘벡의 유명한 식당, Cochon Dingue에 왔다. 프랑스어로 Cochon은 돼지, Dingue는 미친이라는 뜻으로, 한마디로 '미친 돼지'를 뜻한다. 이름에 걸맞게 식당 입구에는 돼지 동상이 놓여져 있었다.


우리는 메이플 립 세 개와 해산물 파스타 하나를 시켰다. 실망을 내비치던 몇몇 리뷰와는 다르게, 요리가 정말 맛있었다. 파스타는 내가 먹어본 파스타 중에 거의 손에 꼽을 정도로 최고의 맛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어김없이 팁을 건네고 식당을 나왔다. 나는 근처 팝콘 가게에 들러 후식으로 커다란 하늘색 솜사탕도 하나 사먹었다. 하지만 손가락이 끈적거려 한동안 쇼핑 중에 뭘 만지지를 못했다.


엄마는 주변 기념품샵을 돌아다니며 마그넷을 찾기 시작했다. 마그넷은 여행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엄마의 유일한 수집품이다. 그래서 본가에 내려갈 때면 현관에 각국의 마그넷들이 벽 하나를 가득 메우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엄마는 퀘벡스러운 파란색 마그넷 하나를 골랐다. 더이상 붙일 자리가 남아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도깨비 속 퀘백 © tvN DRAMA

우리는 「도깨비」에 나왔던 언덕으로 향했다. 드라마에서 봤던 언덕엔 묘비들이 있었는데, 직접 가보니 아무것도 없었다. 몰랐는데 묘비는 CG라고 한다. 묘비에 김신의 얼굴이라도 남아있나 싶었는데.

그 넓은 언덕엔 관광객들 뿐이었다. 언덕에 걸터앉아 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들, 어디선가 들려오는 "아저씨 사랑해요." 소리들.

샤토 프랑트낙 호텔에 들러 지은탁이 편지를 넣었던 금빛 우체통도 봤다. 호텔 내부는 드라마와 그대로였는데, 세트장이 아니라 실제로 운영 중인 호텔이라 안에는 투숙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사실 투숙객인지 관광객인지 정확히 구별은 안가지만 여하튼 사람은 많았다.

직접 촬영 / © tvN DRAMA

마지막으로 크리스마스 상점 La Boutique de Noel에도 들렀다. 여름에 크리스마스라니, 하지만 상점에 발을 들이자마자 캐롤이 흘러나오며 분위기가 급변했다.

The Christmas Song © Nat King Cole

일층에는 티백이나 코코아, 커피가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예쁘게 포장되어 있었고, 반짝이는 전구와 트리, 그리고 트리를 꾸미는데 필요한 갖가지 장식들도 한가득 팔고 있었다. 크리스마스로 만들어낼 수 있는 굿즈란 굿즈는 다 있었다.

계단을 타고 이층으로 올라가자 산타모자를 쓴 루돌프 동상도 볼 수 있었다. 이층에는 주로 LEMAX 사의 크리스마스 장난감들을 팔고 있었는데, 아기자기한게 하나같이 다 예뻤다.

나는 이걸 골랐다. 캐나다스러운 모자와 목도리를 착용한 자전거 타는 소녀.

우리는 퀘벡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고 다음날 토론토 공항으로 향했다. 차가 막힌 탓에 장장 13시간이 넘게 걸렸다. 버스에서 한참을 졸다 문득 창밖을 바라보니 어느새 도로가에 해가 저물고 있었다.

노을이 번지는 모습이 유화그림보다도 더 붓으로 칠한 것 같다. 저 구름 사이로 저무는 햇빛이 어찌나 붓자국 같던지.

우리는 그렇게 귀국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3주라는 시간이 어떻게 보면 짧지 않은 시간인데, 어느새 다 지나가버렸다. 출국행 비행기에서 잠이 들어 꿈을 꾸다, 귀국행 비행기에서 번뜩 잠이 깬 느낌이다.


한편의 꿈을 꾸듯 시간이 지나면 당장 남아있는 건 없어 보여도, 분명 여행 전과 후가 확연히 다른 느낌을 준다. 내 인생에 색이 더해졌다는 느낌.


집으로 돌아가자, 이제.

잊고 살았던 소중한 일상을 되찾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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