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여행기 『캐나다 여름발자국』은 오스틴 클레온의 『훔쳐라, 아티스트처럼』의 한 구절에서 시작되었다. 내가 읽고 싶은 책을 내가 써보자, 여기서 모든 것이 출발했다.
[작업과정]
1. 일기
먼저 여행을 하면서 매일 밤 일기를 썼다. 그날 일어난 일들을 솔직하고 생생하게 기록해 보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캐나다에서 적은 이 일기를 바탕으로 여행기를 작성해 나가기 시작했다. 나의 모든 글은 이 일기를 베이스로 만들어졌다.
『캐나다 여름발자국』을 연재하기 위해 내 일기를 읽을 때마다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게 튀어 올랐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일기가 너무 재밌었다. 오스카 와일드가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책은 내 일기다."라고 말한 이유를 알겠다. 글을 읽어주신 독자님들은 어땠을지 몰라도, 이 여행기가 나에겐 정말 재밌다.
2. 개요 작성
연재를 시작하기 전, 간단한 개요를 작성해 보았다. 원래는 캐나다 서부만 글을 쓰려고 했으나, 쓰다 보니 계속 늘어서 결국 20부작으로 개요가 수정되었다. 특히나 글을 쓰면서 분량을 조절하기가 힘들었는데, 한 화의 분량이 꽤 많아서 재스퍼와 토론토에서의 에피소드는 두 개로 나눌 수밖에 없었다.
반면, 모레인 호수와 오하라 호수 에피소드는 분량이 더 많은데도 불구하고, 흐름이 중간에 끊기면 몰입에 방해가 될 것 같아 나누지 않았다. 특히 13화와 14화는 각별히 애정하는 에피소드인 만큼 그때의 기억을 몰입감 있게 온전히 담아내고 싶었다.
틈날 때마다 개요를 보면서 에피소드별로 생각나는 아이디어도 군데군데 적어두었다. 대학에서 배운 글쓰기 수업을 실제로 적용하고 있는 나를 보면서 신기하기도 했다. 그때는 개요 작성하는 게 그냥 과제에 불과했는데 말이다.
3.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것들
여행기를 본격적으로 작성하기 위해서는 여행의 기억들을 생생하게 끄집어낼 수 있는 것들이 필요하다. 너무나도 빨리 휘발되어버리는 여행의 기억을 붙잡아두기 위해서 나는 다음과 같은 도구들을 이용했다.
3.1 사진
기억을 직접적으로 불러일으키는 데에는 사진만 한 게 없다. 글을 쓰면서 1순위로 참고하는 게 사진인만큼, 카메라는 내게 제2의 일기장이었다.
3.2 소리
여행지에서 소리도 담아보았다. 밴쿠버의 시버스 안에서, 베일마운트에서 들었던 기차 경적소리, 캘거리에서 트램 움직이는 소리, 모레인 호수 트레킹에서 우박 떨어지는 소리 등등...
동영상과는 느낌이 다르다. 온전히 소리만 듣고 있으면 그때의 시공간이 내게 입혀지는 것 같다. 눈을 감고 녹음파일들을 쭉 듣고 있으면 기분이 아주 묘하다.
3.3 여행 다이어리
여행을 아날로그하게 담아보고 싶어 여행 다이어리도 썼다. 다이어리 안에는 인화한 사진들과 각종 영수증, 티켓, 그리고 조금 끄적거린 글도 몇 개 있다.
글을 쓰면서 여행 다이어리도 가끔 펼쳐봤다.
3.4 음악
음악은 기억을 담는다. 기억을 감정과 함께 불러일으키는 것은 음악이 유일하다. 여행할 때 한창 들었던 음악들을 다시 들어보면 무뎌진 그때의 기억과 감정들이 잊혀짐을 뚫고 생생하게 밀려온다.
4. 브런치북만의 특성을 활용했는가
또한 나는 종이책이 아닌 '브런치북'을 연재했기에, 플랫폼의 특성을 적절히 활용할 수 있어야 했다.
1) 종이책에는 없는 영상
2) 종이책에는 없는 소리
3) 종이책에는 없는 음악
화질을 높이기 위해 유튜브 채널도 따로 개설해 영상을 업로드했다. 그 밖에도 나는 녹음한 소리를 덧붙여 두기도 하고, 여행하면서 들었던 음악을 깔아두기도 했다. 이 모든 과정이 글에 입체감을 더해주었다.
5. 초고
이제 글을 써보자. 일기를 찬찬히 읽어보고 사진도 넘겨보면서 기억을 환기시킨다. 새로운 글을 쓸 때마다 드는 고민은 '첫 문장'이다. 첫 문장이 그렇게도 안 떠오른다.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할까.
첫 문장을 썼다 지우며 겨우 문장 하나를 완성하면, 관성에 의해 새까만 문장들이 새하얀 바탕 위를 달려나간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키보드에서 손이 멈춘다.
글이 안 써진다.
아웃풋이 안 나온다는 것은 인풋이 부족하다는 것 아닐까. 나는 묘사의 한계를 느낄 때면 고전을 들여다봤다.
캐나다의 그 많은 호수들을 내가 다 표현하기에는 묘사의 재능이 한없이 모자랐다. 그럴 때면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 들여다보았다. 소로는 호수를 어떻게 묘사했나, 유려하고 감각적인 표현들이 많아 글을 써 내려가는 데 큰 도움을 받았다.
베일마운트에서 밤하늘의 별을 본 에피소드를 쓸 때는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도 다시 펼쳐 보았다. 칼 세이건은 밤하늘을 어떻게 표현했나, 은하수를 밤하늘의 등뼈라고 묘사했군. 별에서 합성된 물질로 만들어진 우리를 '별의 자녀'들이라 표현했군. 나의 일기 속 '별은 우리를 아이로 돌아가게 했다'라는 문장과 칼 세이건의 '별의 자녀'들이라는 표현이 연결되면서 아이디어가 번뜩 떠오르기도 했다.
나는 그 밖에도 많은 책에서 영감을 받았다.
처음에는 글을 쓰는 과정이 너무 재밌었다. 창작이 주는 희열이 아주 달콤했다. 글의 조회수나 좋아요에 상관없이 그냥 나의 여행을 뻔하지 않게 기록해나가는 과정이, 항상 나만 보던 여행기가 보여지는 글로 바뀌어가는 과정이 너무나도 흥미로웠다.
그런데, 어느 순간 글을 쓰는 일이 재미가 없어졌다. 내가 쓴 글을 다시 읽어보면, 너무나도 못난 글이었다. 나는 글쓰기에 딱히 재능이 없는 것 같았다. 문장 하나도 매끄럽게 쓰지 못하는 나, 문장과 문장 사이가 뚝뚝 끊긴 나의 글. 지나치게 감성적인 표현.
한동안 글쓰기를 멈췄다.
그러다 다시 글이 쓰고 싶어졌다. 김영하 작가의 표현을 빌리면, 글을 쓰지 않는 고통이 글을 쓰는 고통을 넘어설 때, 나는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글이 조금씩 나아지는 듯했으나, 동시에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덜어내야 할지 막막해지기도 했다. 내가 덧붙인 문장들이 글에 필요한 '디테일'인지, 아니면 '너무 사적인 이야기'인지를 한참을 고민하곤 했다. '너무 쓸데없는 이야기를 덧붙이나?' 혹은 '글에 필요한 디테일을 버리고 있나?' 아직도 답을 못 내리겠다.
그럼에도 나는 글을 쓰는 내내 다시 여행하는 기분이었다. 상투적인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다시 여행하는 기분이었다. 일상으로 돌아오면 금세 휘발되어버리는 여행이, 왜인지 곁에 오래 머무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뜻하지 않게도, 여행기를 쓰는 과정에서 많은 것들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상태로 여행을 간 것이 아니라, 반대로 먼저 여행을 통해 경험하고, 이를 글로 쓰는 과정에서 알아가는 것들이 아주 많았다. 그때는 어렴풋이나마 알던 것들이 글을 쓰면서 아주 선명해졌달까. 여행기를 쓰는 일은 단순한 기록의 과정이 아니었다.
6. 퇴고
잘 익은 글을 써내고 싶었는데, 써놓고 보니 덜 익은 글이었다. 쓸 때는 몰랐다, 내 글이 이렇게나 엉망진창인 줄. 사실 퇴고에 대해서는 말하기가 부끄럽다. 퇴고를 한 것 치고는 내 글은 계속 초고의 얼굴을 하고 있다.
초고를 다시 읽어보면 내가 쓴 글인데도 글이 안 읽힌다. 문단 하나를 통째로 갈아끼운다.
퇴고의 과정은 어쩌면 초고보다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울퉁불퉁한 초고를 사포로 깎아내는 일, 어쩌면 초고를 송두리째 깨뜨려버려야 하는 일. 여전히 내 글은 한참을 덜 익어있다.
그래도 써놓고 보니 나쁘지 않은 것 같다. 『훔쳐라, 아티스트처럼』에 나온 '프로젝트의 일생'을 보자. 실제로 나의 브런치북 프로젝트가 그러했다.
여행기를 써놓고 보니 나는 여행만 쓴 게 아니었다. 미술에 대해, 글쓰기에 대해, 독서에 대해, 사진에 대해, 영화에 대해, 달리기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내가 경험한 모든 것들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 있었다. 나도 깜짝 놀랐다. 전혀 의도치 않았는데, 써놓고 보니, 써놓고 보니...
그래도 글을 계속 쓰면서 글을 보는 눈이 조금은 늘었는지, 점점 고칠게 많이 보였다. 심지어 사진이나 영상에 관해서도 그러했다. 사진과 영상을 글에 잘 편집해서 넣는 과정에서, 사진의 구도나 색감, 그리고 영상에서 시선을 옮기는 템포에 대한 감각도 배웠다.
그래서인지 내가 마음에 드는 글은 주로 중후반부에 연재한 글들이다. 하지만 정작 다음과 브런치에 소개된 글은 이와 달랐다.
6.1 마음에 드는 글
6.2 다음과 브런치에 소개된 글
작가의 말
많이 부족한 글이지만, 한 명이라도 나의 글을 보고 여행을 선물 받았다는 느낌이 들었다면 대성공이다. 사실 이미 성공적이다. 다른 사람에게 여행을 선물하려고 했지만, 되려 내가 여행을 선물 받은 느낌이다.
"뭐라도 만들어내면 자기 자신을 알게 될 것이다."라는 오스틴 클레온의 말은 사실이었다.
당신도 써라, 당신이 읽고 싶은 책.